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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사 Mar 23. 2022

칭찬 감옥도 감옥이다.

주간 오공사 #13

착하고 다정한 선생님보다 호랑이 같은 선생님과 수업을 해야 능률이 오르는 사람. 나는 분명 그런 쪽에 속한다. 어느덧 군인 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던 초등학생은 밥벌이를 하는 직장인이 되었고, 욕을 먹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종종 칭찬 감옥에  가두곤 했다. '오늘 예쁘게 입었네요’ 같은 일상적인 문장부터 '역시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하네요’ 등의 일적인 부분까지. 어른이 될수록 작게 자주 혼나던 일이 회개라도 하듯 작게 칭찬받는 일로 변하고 있었다.


칭찬이라는 건 분명 호의적이고 고래도 춤추게   있는 힘이 있는 말이라는데 나는 왜 이렇게  칭찬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오글거린다는 표현도 십분 맞지만, 뭔가 입에 발린 말을 듣는 기분이 자주 들곤 했다. 나는 오늘 일상적으로 입었는데 왜 괜찮다고 해주는 거지? 혹은 모두가 이 정도의 일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왜 잘한다고 하는 거지? 등의 생각. 어쩌면 나는 자기 객관화가 잘되는 사람 혹은 스스로를 저평가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칭찬에 늪에 빠져도 기분이 마냥 좋지많은 않았다.


어느 날은 그런 날이 있다. 모임의 모두가 나를 주제로 삼는 일이 생기는 날. 이목이 자주 집중되는 신기한 날. 그런 날이면 대게 칭찬 감옥에 갇히곤 했다. 나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들에게는 몸에 밴 겸손을 떠는 아이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런 날은 가끔 잘못 걸렸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어색한 웃음으로 모임에서 아니에요- 만 남발하다 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새로운 인연을 이어갈 때에도 나를 편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좋았다. 굳이 내 장점을 보려 애쓰지 않아서, 그 사람이 보고 말해주는 장점에 신빙성이 생기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건넨 칭찬은 나로 하여금 나를 좋아지게 만드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졸업 후 따로 만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친구 A가 그랬다. 사실 A와 베스트 프랜드냐고 물어보면 내 대답은 무조건  no 였다. 접점이 많지 않았고, 그 아이는 공부를 나는 실기를 준비했기 때문에 같은 반이었지만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다만 그 아이는 내가 본 아이중 가장 한결같은 아이였다. 모든 면에서 밝고 긍정적인 아이도 아니었다. 본인의 기준이 확실하게 있고, 옳고 그름을 잘 구분하는 아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누구에게든 말할 수 있는 아이였다. 다만 기준이 확실하게 있고 거침이 없다고 해서 남들에게 막말은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절대. 


그 아이에 대한 일화를 생각하면 아직도 선명한 일화는 체육대회 준비를 할 때이다. A와 나를 더불어 반 아이들은 모두 반티를 정하고 있었다. 참 신기하게 우리 학교는 모든 학년의 모든 반이 축구복으로 반티를 정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아니, 훨씬 이전부터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반티의 등부분에 별명을 적어서 주문제작을 맡기곤 했는데, 이 별명을 작성하는 일이 굉장히 피곤한 일이었다. 등에 대문짝만 하게 별명을 적히나, 그 별명은 본인이 원하는 것으로 하기보다는 반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성하게 되었다. 


그때에 반에 아주 귀엽고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별명은 그에 관련되게 지어보겠다고, 나를 포함해 모든 아이들이 몇 반 공주, 이쁜이부터 시작해서 의견을 내고 있었다. 다만 그때 그 아이는 그 별명이 상당히 부담스러워 계속 괜찮다고 했고 그때 A는 그만하라는 말이 아닌  '그럼 우리 영어 별명 하자'라는 의견을 냈다. 우리가 우리만의 웃긴 영어 별명을 만들자는 이야기. 서로의 외모적 특징, 보이는 이미지 등을 담는 것이 아닌 유명인의 이름을 조금 웃기게 우리 맘대로 각색해서 별명을 만들자라는 이야기. 예를 대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크리스티나 아들내미로, 엠마 왓슨을 엄마 왓슨으로. 사실 이 아이디어 자체가 너무 대단했다기보다는, 그 아이가 부담스러워하는 A와 다른 친구들을 챙겨주는 무심한 마음이 좋았다. 칭찬도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성숙함이 고마웠다.


나는 A처럼 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는 칭찬을 덜어내고 솔직하고, 담백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대하고 있는가. 호의라는 틀 안에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던가. 의미 없는 칭찬,  입 발린 말이 주는 불편한 달짝지근함에서 벗어나 무향무취의 물로 목을 축일 수 있는 사람인가. 내 입에선 아직도 단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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