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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Mar 03. 2021

지혜로운 아내가 될 수 있을까요?

선생님 저 더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요.”          


“네~지금은 그럼 혼자 이신 건가요?”

     

아니요, 정말 보기 싫은 남편과 살고 있어요. 저는 사랑받아야 할 여자인데 남편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아요.”          


5년 전 상담을 오신 여성분이 있었다. 남편 말고 새로운 남자를 만날 운이 있을지 궁금해하셨기에 꽤나 난처한 기억이 또렷하다. 지금은 새로운 남자의 운이 없어 보인다고 말씀드리니 자신을 좋게 보는 사람이 많다고 되물었다. 좋게 보시는 것뿐이지 여자로 느끼는 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상담을 하다 보니 남편분도 많이 힘들어하는 것이 보였다.           


“남편분 말씀인데요. 본인도 나름 힘든데 아내의 이해를 못 받고 있다 느끼실 수 있어 보이네요.”


남편은 일하느라 많이 바빠요. 바쁘다는 이유로 육아며 살림이며 모른 척하는 꼴을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녀는 남편이 일 끝나고 집에 오면 아이들을 씻기고 집안 정리를 도와줄뿐더러 주말에는 어디로든 나들이를 나가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몸소 배워왔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남편분께서는 퇴근 후 바로 집으로 오시는 거네요?”          


네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힘든데 안 오면 되겠어요?”          


남편은 아내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상담을 하다 보면 나도 여자 인지라 남편보다는 아내의 마음을 더 헤아려 주려고 노력하는데 이상하게 이번 상담만큼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불만을 다 말해 보시라 했다.          


1. 육아 분담이 적다.  

2. 집안일에 적극적이지 않다.  

3. 주말에 바람 쐬러 나가지 않는다.

4. 사랑받아야 할 나이인데 나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다.  

5. 집에서 하는 게 없는 것 같다.


이유는 더 많았는데 생각나는 것은 5가지라 하며, 이유가 있으니 이혼을 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남자와 연애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는 말을 되풀이했다.          


“맞아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서로에 대한 감정 표현이 참 적어지는 같아요. 육아 분담도 당연히 중요하죠. 아내분 힘드시니 집안일도 당연 도와주셔야 해요. 답답하니 드라이브라도 가주셔야 하는 게 맞죠. 이 모든 것을 남편분이 하나도 하지 않으니 화가 나시는 거겠죠.”


아니요, 해요. 하는데 매일 안 한다는 게 문제죠, 본인만 힘드나요? 저도 매일 힘들다는 걸 알면 나에게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뭐 그냥 다 맘에 안 든다는 말이에요.”  


남편분의 귀가를 물어보니 10시에 집에 도착한다고 한다. 나는 되물었다.


우리 아내분은 퇴근하시는 남편분을 위해 무엇을 해주시나요?”          


제가 왜 해줘야 하죠? 결혼해 줬고 아이도 낳아 줬으면 책임을 져야지 제게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사랑받으면 살고 싶어요. 엄마도 아내도 좋지만 저를 사랑해 주는 남자랑 살고 싶다고요          


아내는 많이 지쳐있었고, 그 보상을 관심으로 받고 싶은 것이다. 아내를 진정시키고 이런 말을 해드렸다.          

“제주 돌담이 매일 바닷바람에 시달리다 돌이 하나 빠졌어요. 그 빠진 돌구멍은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고 그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와 내 손과 발을 차갑게 했죠. 바람을 막으려 큰 돌과 작은 돌로 막았지만 큰 돌은 맞지 않았고, 작은 돌은 빠져 버렸어요. 결국 같은 크기의 돌을 끼우니 바람이 막아졌지요.”     


아내분은 갸우뚱했다.           


"그 돌구멍을 남편의 자리라 생각해 보세요. 지금 돌을 버리고 새로운 돌을 만나려 한들 그 구멍의 크기는 변하지 않아요. 큰 돌을 만나기엔 내 자리가 작고, 작은 돌을 만나기엔 내 성에 안 차니 결국 같은 돌을 가져다 메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내 외로움을 채우려 말고 아내분을 그리 생각하는 남편과 앞으로 좋은 미래를 계획해 보세요."


이미 사이가 나빠졌다며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돌담의 돌은 아직 빠지지 않았다. 한번 못 이기는 척 다가가 보시라 했다. 퇴근 후 따뜻한 밥이 화해의 길이 될 수 있다 말했다. 사실 그게 화해의 길이 될지는 확신이 없었지만 육아 분담, 집안 살림, 드라이브 이런 건 밥부터 먹이고 천천히 시작하면 되겠다는 조언을 했다. 많은 대화가 오갔다. 그 대화로 기분이 나아졌는지.. 마음이 변화했는지 알 수 없이 아내분은 사무실을 나갔다.


몇 개월 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저예요, 소민이 엄마.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시려나? 그날 바로 저녁을 차려 줬어요. 첫날은 당황스러운지 입맛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기분은 좀 상했지만 그다음 날도 저녁을 차려줬어요. 그날부터 맛있게 저녁을 먹더라고요. 피곤해서 못 차려 줄 때도 있었지만 매일 차려주려 노력 중이에요. 남편도 퇴근 후 간식도 사다 주고 퇴근 전에 아이들 목욕시키지 말라고 문자도 주네요. 그날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저는 외로워서 보상받고 싶었어요. 그런데 남편도 많이 외롭겠다는 말을 듣고 조금은 제가 변한 것 같아요."     


나는 점술가로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의 질문에 답을 정해 드릴 수 없다. 그분이 좋은 운을 결정하도록 안내를 하지만 결국 그 운을 만들어 가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는 본인은 참견을 싫어하면서도 나를 구속하려는 남편 때문에 심한 우울증으로 이혼까지 갔던 경험이 있다. 좋은 운은 내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나는 위의 상담자 분처럼 남편을 바꾸어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왜 오빠는 친구 만나면서 나는 못 만나?”

“그런 거 물어보지 마.”

왜 오빠는 나가서 술 먹으면서 나는 못 먹어?”

“그런 거 물어보지 말랬지.”     


'너는 되고 나는 안된다고?'  항상 자신의 주장만 펼치는 단호한 남편의 대답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21살 어린 나이에 나는 신부가 되었고, 곧 부모가 되었던 우리는 매일 같이 서로가 옳다며 싸웠다. 남편은 자신의 감정이 우선시되는 사람이었다. 관섭을 싫어하며 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다해야 직성이 풀렸다. 반대로 아내인 내가 자신의 틀을 벗어나려고 하면 불안해하고 예민해졌다. 한 번은 친구들과 모임에 나갔다가 만난 지 2시간 만에 남편이 나를 데리러 오기도 했다.      


“그 자리에 남자가 없을 거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      


남편은 밖에 나가면 남자들은 다 늑대로 변한다는 이상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남편의 이런 불안증을 과한 사랑의 표현이라 결론짓기까지 십여 년이 걸렸다. 변할 것 같지 않은 남편의 고집 때문에 매일 다투는 것은 답이 아닌 것 같아 나는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남편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남녀 사이는 친구도 없다’는 의견과 ‘남녀 사이도 친구가 된다’는 의견이 엇갈리듯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다툼'은 서로를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의 시간을 갉아먹는다.      


남편의 생각을 이해해 보기로 결심한 이후로 어떤 일이든 남편에게 먼저 의견을 구한다. 외출을 할 때에도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왜'라는 6하 원칙으로 설명을 해준다. 6하 원칙만 있다면 그 사람의 불안을 덜어내줄 수 있다. 귀찮은 일이기도 하고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러고 사느냐", "조선시대도 아니고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아라" 주변에서 말들도 많지만 내가 하로 싶은 대로 살았다면 우린 결국 이혼했을 것이다.      

한 발자국 물러서서 상대를 바라본다면 많은 해결점이 보인다. 그 한 발자국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다.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선택한 삶이 부부이기에 상대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면 내가 먼저 생각을 바꿔보려는 노력도 좋은 해결 방법이 아닐까 한다. 나의 생각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오랜 다툼 끝에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부부 사이에는 한쪽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한치의 양보 없이 자신이 옳다고 싸우는 것은 감정 낭비, 시간 낭비 일뿐이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든 관심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혜원 엄마, 내 친구들이 당신 보고 보살이래, 나보고 와이프 잘 만났다고 부러워하더라고. 나도 불만은 많지만 당신이 더 많이 이해하고 참아주니 내가 넘어가는 거 알지?”          


속으로 '그래, 잘났다'라는 말이 삼키고 있지만, 지금 나의 가족을 지켜주는 좋은 운은 그 순간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는 길을 택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해 본다.

이전 01화 안녕? 까만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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