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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따라가는 사람 Jun 29. 2022

[일상] 좌충우돌 텃밭 가꾸기(1)

어떻게 이렇게 자라는 걸까?

사실 나는 추첨운이 참 없는 편이다. 이때까지 경품 추첨에서 작은 선물이라도 받은 경험이 한 손안에 꼽힐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텃밭이 되었다. 아마도 텃밭 꼭 되었으면 한다는 아이들의 염원이 나의 추첨운에 부스터를 달았나 보다.

여하튼, 작년에도 신청했지만 추첨에서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당첨되어 지난 3월부터 아파트에서 1년간 빌려주는 텃밭을 가꾸고 있다. 뭐가 뭔지도 모르니 다이*에서 급하게 텃밭용 꽃삽도 사고 물뿌리개도 샀다. 뭘 심을까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덜컥 잘 자란다고 귓동냥 들었던 상추와 총각무 씨앗을 사 와서 대충대충 심었다. 계속 되뇌었다. 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말고...

그래도 3월 중순이 넘어가니 새싹이 돋고, 4월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깎아내지 않으면 말 그대로 정글이 되어버리는 기적을 목격하였다.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씩 상추와 무청을 비닐봉지 가득 담아올 수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거 어떻게 이렇게 자라는 걸까?" 내가 식물을 키우는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정성을 기울인 것도 아닌데.... 나는 총각무의 잎사귀인 무청이 그렇게 쑥쑥이 인형처럼 자라는 줄 처음 알았고, 상추 잎 색이 짙어지면 쓴맛이 나고 질겨질 수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5월에 접어드니 총각무의 뿌리 부분이 땅 위로 점점 올라온다. 뽑아야 한다는 하늘의 계시다. 지금 안 뽑으면 못쓰게 된다는 텃밭 경험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뽑았다. 뽑고 나서 다시 생각했다. "이거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랐지?" 뭣에 써야 할지는 일단 뽑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과, 평생 처음으로 김치를 담갔다.


무청으로 만든 김치


총각무로 담근 김치

5월을 기점으로 슬슬 옆의 텃밭들이 농작물을 바꾸고 있다. 내 옆칸, 앞칸, 뒷칸 모두 고추와 방울토마토, 가지로 업종을 전환하고 있었다. 고민을 하게 된다. 나도 바꿔야 하나?

아무것도 모르니 아무거나 하게 된다. 상추도 씨 뿌려서 성공했으니 토마토도 되겠지... 다시 한번 다이*에서 씨앗을 사 왔다. 이번에는 방울토마토. 그런데 이번에는 심은지 10일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실패구나.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토마토와 아삭이 고추, 방울토마토 모종까지 구매해서 심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잘 자란다. 잘 자라는 정도가 아니라, 1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니 점점 꽃이 피고, 꽃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다. 또 생각한다. "이거 왜 잘 되지?"


모종을 사다 심은 토마토가 열매를 열심히 키우고 있다.
아삭이 고추도 꽃이 피었다.


여기에 그동안 감감무소식이었던 토마토 씨앗이 갑자기 싹이 텄다. 싹이 트자마자 열심히 크기 시작한다. "이거 왜 갑자기 잘 자라는 거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텃밭 가꾸기라던데, 다행스럽게도 난 왜 잘 되는지 모를 정도로 잘 된다. 씨 뿌리고 모종 심고, 아침 점심에 물 뿌리고, 가끔 천 원짜리 퇴비 사다가 뿌린 것 말고는,  내 공은 크지 않다(... 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꽃 피우고, 잎 올리고, 열매 맺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 말이다.


볼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잘 자란 토마토와 고추를 수확할 생각을 하니 뭔가 설레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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