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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 Mar 18. 2021

그래서, 아이비리그는 어떻게 갔을까?

아이비리그행을 위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 α


사실은 좀 낯 뜨거운 제목, <하버드 나온 전업주부>라는 매거진 간판을 달아놓고, 그래서 막상 그 학교를 어떻게 갔다는 건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나누지 못했다. 제목만 보고서 클릭하시는 열혈 부모님들은 이제껏 좀 '낚였다' 싶으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한번 각 잡고 아이비리그 행을 위해 실제로 도움이 되었던 팁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한 가지 disclaimer, 유의사항을 걸고 시작할 것은, 이 글은 온전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이비리그 학부와 대학원을 다니며 '나는 정말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많다. 머리가 좋은 것도 모자라, 자기가 탁월한 분야에 누구보다 진정성을 가지고 온 맘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리고 그 재능과 열정을 사회와 인류를 위해 공헌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천재들이 존재한다. 그 다양한 사람들이 다 저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이곳까지 도달했으므로, 어느 개인의 한 방식이 절대적인 공식이 될 수 없을 테다. 오늘 내가 나눌 이야기들은, 같은 길을 걸어온 선후배님들과 동기님들의 여정과도 중요한 부분들이 겹치기는 하나, 이것은 오로지 나의 경험담과 인사이트 일뿐, 정답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다른 한 가지는, 이 글을 올리는 조심스러운 마음을 독자님들께서 알아주셨으면 하는 거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즌은 가정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나름의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여러 가지 기회들을 내려놓고 지금은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지지고 볶으며 풀타임 엄마이자 아내로 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나보다 더 치열하게 사시는 분들도 많은데, 무슨 업적 늘어놓듯이 합격 노하우를 쓴다는 것이 못내 송구스럽다. 그러나, 나의 목차 중 이 글을 포함하기로 한 이유는 첫째로, 나와 같은 학부모의 입장에서 혹시 미국 고등교육에 대해서 궁금하시거나 아이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어쩌면 나의 이야기가 작게나마 방향성 제시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둘째로, 이것은 나의 찬란한 지난날의 기록이 아니라, 꼭 기억하고픈 나의 방황과 회복의 서막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수재들이 모인 곳에 얹혀 있으면서 내가 도대체 어쩌다 여길 오게 되었는지, 왜 오게 되었는지, 오긴 왔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엄청난 고민과 방황을 하며 20대를 보냈다.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실패와 실수가 연속인 시간들이었다. 그곳에서의 나의 시간을 통해, 간판만을 보고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교육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아무리 좋은 학벌을 가져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어디서든 헤맬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이 글을 통해 나의 어떠함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고민과 방황 속에 깨달아진 열매들을 함께 거둘 수 있는 worthwhile reading 이 되었으면 좋겠다.  





Google Image from shsthelegend.com



Ivy League 라 함은 미국 북동부에 위치한 8개 사립대학의 모임이며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브라운, 컬럼비아, 펜실베이니아(유펜), 코넬, 다트머스 대학교를 지칭한다.


위의 학교들 중 브라운 대학교에서 학부를, 하버드 대학교에서 대학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학생으로서의 나의 경험과, 대학원 졸업 후 교육 컨설팅회사 컨설턴트로써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아이비리그 학교들이 지원자들을 평가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자신만의 Spike 이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spike" 이란, 무언가 하나를 아주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들 중 하나가, 좋은 학교 (특히 아이비리그)를 가려면, 무엇이든 골고루 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부도 잘해야 하고, 운동도 잘해야 하고, 악기도 잘해야 하고, 봉사도 많이 해야 하고, 리더십도 있어야 하고, 등등.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이런 퀄리티를 "well-rounded"라고 얘기하는데, 동그란 공처럼 무엇이든 동글동글하게 모난 곳 없이 잘 개발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특히 한국 교육문화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예체능을 하는 학생이 아닌 이상, 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점수의 "평균"점수를 따지는 시스템 안에서는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아이비리그를 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학점과 시험 점수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지원자들 대부분 높은 수준의 점수를 베이스로 깔고 시작하기 때문에, 그들과 구별될 수 있는 본인만의 특화된 점을 잘 어필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교는 well-rounded 한 지원자를 뽑는 것이 아닌, 특정한 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장점을 최대치로 개발하고 그 특화된 능력을 검증받은, spike (한쪽이 뾰족한) 있는 학생을 훨씬 선호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이비리그 학교들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을 뽑는 것이 아닌, "세상을 변화시킬 인재"를 뽑는 곳이라 천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뭐든지 두루두루 잘하는 학생은 에너지가 분산되므로 최고가 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평균 또는 평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에서 변화를 창출하고 다수를 이끌어 가려면, 한 방향을 향한 엄청난 drive 가 필요하고 그것을 결과로 보여줘야만 한다. 예를 들면, GPA와 SAT 점수 모두 perfect score를 가지고 액티비티를 이것저것 10개를 한 학생보다, 시험 점수도 완벽하지는 않고 다른 교내외 활동도 별로 없지만 물방울 입자에 관한 연구를 초등학교 때부터 깊이 해오며 고등학교에 가서는 그 분야의 전국 경시대회를 휩쓸고 대학 수준의 논문을 발표한 학생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나의 예를 들자면, 사실은 운이 굉장히 좋은 케이스였다. 9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 와서 1-2년 정도는 영어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지만, 11학년 때부터는 학교 신문사 편집장 등 문과 계통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는데, 나만의 spike를 발현하게 된 계기가 있다. 코네티컷 시골에 있던 내가 다닌 공립고등학교는 매년 "We the People" Bicentennial of the U.S. Constitution Competition이라는 미국 헌법 토론 경합 대회 (debate competition)에 출전했다. 일 년 내내 State-level (주 경합)을 해서 주 대표로 뽑히면, 워싱턴 디씨의 미국 의회당으로 초청되어 각 주 대표 50개 학교들을 만날 수 있었다. 2박 3일 동안 미국 국회의사당 안에서, 미국 의회원들 앞에서 주어진 토론 경합을 하고 나면, 마지막 날 50개의 주중에 top 10을 뽑게 된다. 이 대회에서 우리 팀은 코네티컷 주 대표로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것이 왜 굉장히 운이 좋았냐면 나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다 같이 잘하는 "팀"에 들어가니 훨씬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 팀에 들어가는 것도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실제 팀 안에서도 나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똘똘 뭉쳐 일 년 내내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준비했고, 그 안에서 teamwork을 배웠던 시간들은 내 고등학교 시절의 하이라이트로 남아 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워싱턴 디씨에서의 경합에서도 우리 토론팀은 미국 50개 주 내에서 4위를 하는 쾌거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9학년 때 미국에 와서 영어가 가장 힘들었던 이민자로서, 12학년 때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헌법 토론대회에서 미국 전체 고등학교의 4위를 했다는 것은, 대학교 지원자 측면에서 봤을 때 꽤나 드라마틱한 spike을 보여준 케이스였다.


결론은, spike을 증명해 낸다는 건 결국 national 또는 international 레벨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것인데, 김연아 선수처럼 개인종목에 굉장히 특출 나지 않은 이상은, 적어도 State (주) 혹은 national level에서 뛰고 있는 팀에 들어가는 게 제일 효율적이다. 그것이 스포츠팀이건, 오케스트라이건, 공부에 관련된 팀이건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골고루 모든 것을 다 잘하도록 종용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만의 spike를 가질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유심히 지켜보고 적절한 시기에 캐치해주는 것이다. 언어 쪽에 재능이 있는 아이에게 수학도 언어만큼 잘해야 한다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나도 아직은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늘 나의 욕심과 세상의 잣대, 그리고 아이의 달란트 사이에서 좌충우돌 고민하며 여러 가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크면 클수록 더 명료해지는 것은, 아이는 분명히 자신만의 고유한 재능이 있고, 그것을 최대치로 발전시켜주는 것이 부모 된 나의 임무라는 것이다.



2.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이 있는가?

원서를 쓸 때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personal statement, 에세이 쓰기이다. 점수와 숫자, 활동 내역으로 대변되던 학생이 드디어 한 개인으로써의 캐릭터를 가장 여실히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다. 이 에세이를 쓸 때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은 인터뷰 때도 가장 자주 회자되기도 한다. "What have you overcome in your life?" 네 인생에서 어떤 어려움들을 극복해 왔냐는 질문이다.


이미 80을 가진 학생 A가 100까지 도달하는 것보다, 20에서 시작한 학생 B가 90까지 달려온 것이 더 대단한 일임을 입학사정관들은 눈여겨본다. B가 A보다 지금 당장은 10이 모자라도, B는 이제까지 달려온 저력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충분히 뻗어나갈 인재가 되리라고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만일 B라면, 그 부분을 강하게 어필하는 게 중요하다.


나의 경우에도 그 부분을 시사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미국 고등학교에는 학년마다 레벨이 있다. 내가 다닌 공립학교에는 200 level (평균 이하반), 300 level (평균반), 400 level (honor, 우등반), 그리고 11학년부터는 AP level (대학 수준)이 있었다. 처음 미국에 간 9학년 때는 영어가 도통되지 않아서 ESL을 포함한 모든 과목을 200 반에 배정받았다. 약간 비약을 하자면 90년대 미셸 파이퍼가 나왔던 영화 <위험한 아이들, Dangerous Minds> 같은 느낌의 학급이라고 보면 되는데, 수업시간에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선생님을 놀리느라고 수업 진행이 안될 정도였다. 한 학기를 꾸역꾸역 보내고, 빨리 다음 레벨로 올라가고 싶다는 열망에 무작정 학교 카운슬러를 찾아갔다.


"저 300에서도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안 되는 영어로 떠듬떠듬 얘기했는데, 처음에는 카운슬러 선생님이 잘 못 알아들으시는 거 같았다.

"300이 어려울 거 같다고?"

"아니요, 저는 300에 가야 한다고요."

말은 어수룩하지만 확신에 찬 눈빛이 먹혔던지, 2학기부터는 300 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9학년 2학기가 끝나고 10학년에 들어갈 때는 400(honor) 반에 들어가려면 해당 과목 선생님의 추천이 있어야 했는데, 또다시 선생님을 찾아갔다.


"저 400에서도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음, 일단 300에서 시작해보고 옮기는 건 어때?"

"일단 넣어주시면 어떻게든 따라가 볼게요."(이글이글)


내 평생에 쓸 당돌함은 그때 다 쓴 거 같다. 날 위해 대신 나서 줄 부모님도, 그 누구도 날 대변해줄 사람이 없다는 위기감이 있어서 그랬는지, 항상 먼저 나서서 스스로를 promote 했다. 선생님들도 그 주도적인 부분을 좋게 봐주셨는지, 나중에 원서 쓸 때도 먼저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하신 분들은 다 나를 move up 해주신 분들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성적증명서에 200 레벨의 클래스가 있어서 오점이 된 것이 아니라, 200에서 AP까지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모습이 있다는 게 큰 플러스가 되었던 것 같다.


아이비리그는 올백을 찾지 않는다.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을 찾는다. 그러므로 자기 주도성과 리더십을 어필하는 게 중요하다. 언어장벽과 문화장벽을 뛰어넘는 몸부림의 에피소드였던 학생회장 출마기는 나중에 에세이를 쓸 때 내가 무엇을 극복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스토리가 되었다.


https://brunch.co.kr/@glolee/25


여기서 중요한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어느 정도 결핍을 경험하며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핍이 없으면 온 힘을 내서 극복할 것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무엇이든 가장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써는 아이에게 결핍을 준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이민자로서 받았던 아픔들을 최대한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상처 받을 만한 상황은 피하게 해주고 싶고, 되도록이면 고생을 덜하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결핍들로부터 오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고, 거기서 발생하는 작은 성공들이 축적될 때, 아이의 마음 근육이 자란다고 믿는다.


그와 더불어, 아이와 함께 결핍을 마주하면서 내가 할 일은 기도뿐임을 다시 배운다. 사십 대 중반을 훌쩍 넘어 이민 온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언어와 문화도 다르고 사회적 연줄도 없으셨고, 그래서 내 학교를 쫓아와줄 수도, 대신 선생님들을 만나줄 수도 없는 우리 부모님이셨다. 하지만, 오로지 엄마, 아빠의 끊임없는 기도 덕분에 나는 어딜 가든 배짱을 부릴 수 있었고, 쌓아놓은 기도의 잔고로 무엇이든 시도해 볼 용기가 있었다. 언어 장벽도, 넉넉지 못한 생활도, 기러기 가정이라는 관계의 아픔도 우리 가족에게는 모두 결핍이었지만, 그 결핍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 안에서 일하실 수 있는 여지를 내어드릴 수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핍의 자리를 기도로 메꾸고, 그 안에서 "극복"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그것만 한 유산이 없을 것이다.



Now, 플러스알파:

뛰어난 성적과 특출 난 장점 (spike), 그리고 고유한 스토리텔링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본인이 누구보다 간절히 원해야 한다. 부모랑 쓰앵님이 아무리 판을 깔아줘도, 본인 스스로가 갈망하지 않으면 벌써 얼굴과 원서에서 티가 나기 때문이다.


하버드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education consulting firm에서 멘토와 컨설턴트로 일한 적이 있다. 우리 회사의 클라이언트들 중 대부분은 이미 미국의 내로라하는 유명 사립 고등학교를 재학 중인 학생들이 많았다. 너무나 부족함 없는 환경과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인데, 막상 만나서 케어를 하다 보면 본인이 여기 왜 와있는지 모르는 채,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질질 끌려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물론 야무지게 잘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중 한 아이의 부모님은 유난히 한국에서부터 나에게 연락이 잦으셨는데, 새벽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카톡 전화가 오고는 했다. 아이가 왜 연락이 잘 안 되는 건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무엇을 더 해야 하는 건지, 전화기 너머의 불안함이 고스란히 전해지곤 했다. 프로필 사진과 이름이 낯익어 찾아보니 한국의 유명 연예인이셨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스스로 원하게 만들 수 있을까?

결국은 정체성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는 것. 나 또한 이 사실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로 대학에 입학한 후에 너무나 많은 방황을 했기 때문에 더욱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이 학교는 왜 가야 하는지, 이곳이 나에게 왜 중요한지,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일절의 고민도 없이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혹은 세상이 박수쳐주는 이름만을 막연히 쫓아가다 보면 문제는 언젠가는 반드시 터지게 되어있다.  




그럼 나는 내 아이들을 그렇게 키울 것인가?

물론 아이들이 내게 와서, "어머님, 소인 꼭 아이비리그에 가고 싶사옵니다"라고 하면 막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무조건 '그냥 아이비리그니까'에는 반대한다. 왜 꼭 그곳이어야 하는지, 나와 그곳이 왜 딱 맞는 fit 인지 본인 스스로가 정당한 이유들로 설득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다른 세상이다. 특히 인구감소와 맞물린 포스트 코로나 세대에는 대학들이 얼마만큼 예전의 명성을 이어갈지 모르겠다. 직업을 구할 때 대학을 나왔는지 조차 묻지 않는 혁신적인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건 학벌의 이름이 아니라, 개인의 콘텐츠와 skill set이다. 앞서 말한 나만의 Spike 이 이제는 대학입시를 위해 중요한 것이 아니라 1인 기업, 1인 창업을 위해 더 중요시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더 나아가, 스킬과 콘텐츠보다 더 중요한 건 건강한 자존감과 견고한 정체성이라고 믿는다. (사실 자신만의 콘텐츠 개발도 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아야지만 나올 수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글은, '이렇게 이렇게 하면 아이비리그에 갈 수 있습니다'가 아닌, 학창 시절을 통해 정체성을 고민했던 나의 굽이굽이 한 여정에 대한 기록이다. 처음에는 무작정 "아이비리그니까 가야 해! 엄마 아빠가 나땜에 고생하니까 꼭 가야 해!"로 시작한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그렇게 터보 엔진을 달고 열심히 달려본 기억이 없었다면 난 아마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이토록 치열하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무엇을 하든 온 맘을 다해 응원해주고 싶다. 공부 쪽으로 진로를 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다. 실제로 요리를 좋아하는 우리 집 첫째의 꿈은 7층짜리 건물을 사서(응?) 각 층마다 7개 대륙 (북미,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등)의 음식점을 입점시키고 운영하는 것이다. 실제로 거의 매일 각 대륙의 음식들을 공부하며 메뉴판을 짜고 가격을 정하며 유튜브를 보며 음식을 배우고 있다. 허나, 무엇이든 마음껏 꿈꾸는 대신 자기가 열정이 있는 한 분야를 정해서 될 때까지 파는 훈련만큼은 꼭 시키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는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아이들로 컸으면 좋겠다. 그 안에서 삶을 기뻐하고 만족을 아는 아이들로 자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아는 없다고 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적절한 자유를 주는 만큼 잘 자라고 있다. 염려와 걱정을 거둬 갈수록 더 잘 자란다. 문제는 늘 나다. 내 욕심과 아젠다를 내려놓고 아이 본연의 모습으로 살게 해주는 것. 내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 것. 나의 꿈을 주입시키지 않는 것.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변함없이, 믿어 주는 것. 아직 나에게는 너무나 멀고 먼 길이다. 일단 오늘 하루는 기도하는 엄마로, 한 번이라도 더 꽈악 안아주는 엄마로, 이 시간을 정성껏 살아내야겠다.



• Soli Deo Gloria •


Main Photo Credit: By Caroline Culler (User:Wgreaves) - 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045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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