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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 May 29. 2021

당신의 르네상스는 언제인가요?

삶의 어느 한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저마다의 르네상스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영어로는 '부활'(rebirth)를 뜻하는 르네상스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한 시대의 문화, 예술, 학문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하지만 개인의 삶에도 르네상스는 존재한다. 어둠의 시대 (Dark Age)라 불리던 중세시대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도래했듯이, 혼돈으로 가득했던 내 삶에도 마음이 깨어나고 몸이 살아나던 부활의 시기가 있었다. 이십 대 초반이던 2006년 봄의 일이다.




2005년 가을학기는 아이비리그에 다니는 학생이라는 명찰로는 더 이상 상쇄할 수 없는 방황과 혼돈이 최고치에 다다랐던 대학교 3학년의 겨울이었다.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둘째 치고, 나는 누구인지도 모를 시절. 열여섯에 미국 백인동네로 이민 와 어떻게든 주류에 동화되고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나의 활은 대학에 와서 느슨해지다 못해 끊어져버렸다.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잘한다 잘한다 해도 늘 못한다고 느꼈던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치킨너겟과 파스타, 샐러드, 오믈렛으로 가득 찬 기숙사 밥 말고, 찌개가 있는 집밥이 먹고 싶고 분식점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늘 친구들과 왁자지껄 어울려 다니기는 했지만 손바닥만 한 기숙사 방 안으로 들어오면 시체처럼 누워있기 일수였다. 문지방을 넘을 힘이 없었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99년에 미국에 와 6년째 틀어막고 있던 무언가가 역류해 넘쳐흐르는데, 닦아낼 기력이 없어서 그냥 거기 잠식될 때까지 누워있다가 빠져 죽을까 싶었다. 그리움, 연민, 외로움, 무기력. 그 모든 것들이 쓰디쓴 타르처럼 엉겨 붙어 나를 바닥으로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이민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던 내가 휴학을 결정한  그때의 나로서는  우주에 대항하는 몸부림이었다. 쉬면  되는   알았으니까. 휴학은 인생에 자신 없는 사람들이 하는   알았으니까. (도대체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어디서 굴러 들어온 걸까? 지금 되돌아보면 정신 차리라고 한대 쥐어박아야 할지, 와락 끌어안고 같이 울어줘야 할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 이후로 처음 한국에 돌아와 성인이 되어 맞는 2006년 봄의 온도는 온통 꽃, 바람, 노래, 그리고 사랑이었다. 태어나서 거의 처음 느껴보는 듯한 해방감에 나는 한밤에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매일매일 빙글빙글 날아다녔다. 그 와중에도 마냥 쉬지는 못하는 천성이라 한 학기 동안이라도 서울대에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오가며 정서가 풀어지는 나날을 보내는 동안, 늘 뻣뻣히 긴장해있던 내 모든 세포들은 길게도 참아왔던 숨을 한 번에 몰아 내쉬곤 했다. 내 집에 왔다는 안정감, 익숙한 문화에 대한 편안함, 실수해도 괜찮다는 안도감은 나를 조금은 더 밝고 흐트러진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아,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면 이런 거구나'하며 울타리를 벗어난 토끼처럼 봄날의 관악에서 대학로의 연건, 광화문에서 이태원까지 뛰고 또 뛰어다녔다.


사실 르네상스의 봄날을 한껏 더 부풀어 오르게 해 준 것은 오로지 서울대 YWAM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 덕분이었다. 오리엔테이션 날부터 처음 본 나에게 옆자리를 내어주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눠준 예은이. 호주에서 교환학생으로 와서 나와는 쌍둥이처럼 지낸 보슬이. 날카로운 열정과 깊은 속내로 친구지만 존경스러운 인우. 고뇌하는 예술학도란 이런 사람들이구나를 알게 해 준 연경이와 난희. 말로만 듣던 천재란 이런 사람이구나를 알게 해 준 실버벨과 정박사, 그리고 외계 소년 용준이. 마음을 열어줬던 착하고 여린 진호와 재민이. 훗날 내 결혼식 부케를 받아준 소연 언니와 브라운으로 스카우트 해온 원회. 강인하고 아름다운 한울과 영예.


이름만 나열해도 코끝이 찡해지는 이 친구들은 내가 진흙탕에서 나뒹굴고 쓰러진다 한들 아무도 날 이상하게 볼 것 같지 않았다. 이들은 영혼의 문둥병자 같던 나에게 손을 대고 기도해주었고, 함께 울어주었다. 선풍기 하나 없이 찌는 듯한 동아리방에서 함께 기타 치며 찬양했던 그 초여름의 밤들과, 저 멀리 캠퍼스 워십을 찾아가 함께 뛰며 예배 드린 후 동전까지 긁어 모아 함께 사 먹었던 즉석 짜장 떡볶이...  무더운 여름이 되어 떠난 전도여행과 밤새워했던 그 많은 얘기들. 매일 너무 웃어 배가 찢어질 거 같았고, 매일 너무 울어 눈코가 얼얼하던. 가장 날 것의 그날들.


2006년의 서울은 무엇보다 내 삶의 예배가 회복되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많은 것들이 "처음" 이루어진 첫사랑의 장소였다. 처음 캠퍼스 워십에 참여한 날, 이전까지는 느낌으로만 알던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처음 생생히 들었다. "윤승아, 내가 널 얼마나 기뻐하는지 아니?" 그 한마디에 나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들린다면 산신령의 목소리처럼 메아리치거나, 아니면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의 목소리처럼 우렁차게 울릴 거라고 상상했던 하나님의 음성은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 무엇보다 고요하지만 정확하고, 수술용 메스처럼 날카롭게 스며들지만 온전히 치유하는 목소리였다. 상처 난 부위에 정확하게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백합화의 꿀 같다고 설명하면 될까? Piercing, yet healing.


'그때 왜 절 혼자 두셨어요?'

'과거와 미래를 다 아시는 분이라면서, 그럼 그렇게 될걸 알면서도 왜 내버려 두셨어요?'

'자유의지? 선악과? 존재의 목적? 애초에 그런 건 왜 만드셨어요?'

오랜 이민생활에서 오는 외로움과 자기 의, 또 맹목적인 믿음으로 일그러트린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의심, 원망과 질문들을 처음으로 대놓고 쏟아내기 시작했다.


신실한 척, 다 아는 척. 나의 척척 가면을 벗어놓고 대들고, 악쓰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자 드디어 하나님과 나는 (설령 그것이 벌건 얼굴을 한 갓난아기의 고래고래 울음소리일지언정) 일종의 "대화"라는 것이 가능해졌다.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하나님은 처음으로 나에게 장면들을 보여주기 시작하셨다. 손바닥만 한 브라운 대학 기숙사 방에서 불을 다 끄고 방에 아무도 없는 척을 하며 혼자 소리 죽여 울고 있을 때. 이 커다란 어둠 속에서 나라는 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들었을 때.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했던 그때. 침대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던 내 옆에서 함께 앉아 울고 계신 그분의 모습이 보였다.


'난 쓸모없어.' '아니야, 그렇지 않아.'

'앞으로 뭐가 되겠어.' '너에겐 미래가 있어.'

'난 실패작이야.' '넌 내 최고의 걸작품이야.'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난 널 살리려고 내 목숨을 내놨어.'

'............' '내가 여기 있어.'



그때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건, 혼자라고 여겼으나 절대 혼자가 아니었던 그분의 존재와 임재 덕분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보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어둠의 끝에서 빛을 보았을 때. 다크 에이지가 끝나고 불이 탁 켜졌을 때. 오해가 걷히고 화해가 찾아왔을 때 오는 그 르네상스. 그 rebirth의 시간은 지금까지도 내 삶을 놓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내 삶의 부활, 그 르네상스에 대한 기록을 쓰고 있던 이번 주는 사실 르네상스와는 거리가 아주 먼 힘겨운 나날들이었다. 이전엔 없던 꽃가루 알레르기가 생기더니,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숨도 쉬기 힘들고, 눈알은 흰자가 동태 알처럼 부풀어 올라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고, 알레르기 약을 먹고 밤에 잠에 들면 수면효과가 얼마나 독한지 새벽 글쓰기는커녕 침대 밖으로 나오기만도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실패감이 들었다. 안 그래도 바짝 예민해져서 글의 서사를 떠올려야 하고, 마음을 쏟아붓고, 나만의 우물에서 길어내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몽롱하고, 간지럽고, 쓰라리고, 텁텁해서 글은커녕 가만히 앉아 생각이란 걸 할 수 없었다. 긁고 비비고 쥐어짜며 짜증이나 내고 있는 내 모습이 괴로웠다. 하지만 글쓰기만큼은 놓고 싶지 않았다. 이것을 놓으면 다 놓는 것이니까.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 목 놓아 부르짖었다. 내가 부를 수 있는 그 이름과, 내가 할 수 있는 그 찬양으로. 집안 곳곳을 미친 여자처럼 헤집고 다니며 찬양하고, 기도하고, 축복했다. 온 벽이 진동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그 벽이 무너지는 것이 현실이 될 때까지.


Lord,

You don't have to come

But you always do.

You show up in splendor

And change the whole room.


You walk though all of my walls,

Conquered my shame,

Stepped into my past,

Fill my world with grace.

You didn't have to come

But you wanted to.


I say Thank You.*


그리고 하나님은 나에게 다시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신다.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 내가 가진 것으로는 쓸 수 없는 글.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사랑.


르네상스는 어느 한 시대의 일이 아니다. 오늘 당장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삶 속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르네상스는 돌아보며 곱씹고 추억하는 지난날의 영광이 아니구나. 르네상스는 지금이구나. 2006년 서울에서 날 만나주신 하나님은, 2021년 보스턴에서도 날 만나고 계시는구나. 제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때. 제일 한심스럽고 바닥을 칠 때. 그때가 바로 그 만날 만한 때라는, 르네상스인가 보다.




• Soli Deo Gloria •


*<Thank You> by Jonathan David Hel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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