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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 Aug 10. 2021

욕망 아줌마 박사 원서 취소하던 날


우리는 모두 다 어딘가를 향해 달려간다. 모두 다 무엇인가를 숭배한다. 우리가 숭배하는 그것이 곧 종교이다. 교회나 절에 가는 것은 그저 눈에 보이는 종교행위일 뿐, 숨 쉬는 사람은 모두 다 종교 생활을 하고 있다. 돈. 권력. 성취감. 자녀. 과거의 상처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성공에 대한 집착. 무엇보다 "자기애"와 "자기 연민"은 무섭도록 파워풀한 종교가 되기도 한다.  


자기 연민이라는 "종교"가 얼마나 무섭냐면, 모든 것을 다 자기중심적인 피해자의 시선으로 해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형의 이야기를 평생 내 이야기라 믿고 살아왔다. 나만의 왜곡된 렌즈 안에서는 큰 형과 동생 탕자의 이야기가 실제 우리 집 이야기라고 믿고 있었고, '나에게는 살진 송아지는커녕 염소 한 마리도 주지 않았다'는 형의 변론 들을 때마다 '저거 너무 맞는 말 아니냐'며 나도 함께 억울해했다. 살진 송아지를 빼앗긴 형의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내가 유일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분야(엉덩이 붙이고 앉아 공부하기)라도 잘해서 내 입지를 다지고, 스스로 살진 송아지를 잡겠다고 어린 나는 생각했다. 재밌고 유익한 공부가 얼마나 많은데, 단지 인정에 대한 결핍을 해소하고 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30년 넘게 달려온 것만큼 비극은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몰랐을 때 내가 부족하다는 거짓말에 시달려야 했고 그러므로 멈출 수가 없었다.




변화는 2015년 둘째를 낳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애기 봐주실 분을 모셔와 한 달도 안된 신생아를 맡겨 놓고, 퉁퉁 불은 젖에 유선염을 달고 살면서 연구실에 나가고 시험을 보러 다녔다.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그냥. 여기까지 왔으니까. 멈출 줄 모르는 춤을 추는 빨간 구두를 신은 카렌처럼 말이다.


Asian American Women의 정신건강에 대해 연구했던 보스턴대학의 AWARE 연구실을 끝내고 이번에는 석사를 했던 하버드 교육대학원 내 M. Rowe 교수님의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Pointing to Success"라는 제목의 이 연구는 만 3세 이하의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부모의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아이의 언어발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하는 프로젝트였다. 또 이중언어(Bilingual) 연구와 함께 한국어 가정과 Spanish 가정을 비교하며 이중언어 가정 자녀의 뇌 발달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도 함께 할 수 있었다.


몹시나 흥미로운 연구주제임은 분명 하나 나는 내가 연구라는 학문 활동에 맞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분리불안에 시달리며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내 아이는 제쳐놓고 다른 아이들과 놀아주며 테스트를 한다는 자괴감도 물론 한몫을 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괴로움은 이런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이 길을 가고자 하는 내 마음의 중심이 틀림을 매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학문에 뼈를 묻고 싶고 이 일을 해냄으로써 내 소명과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 대가의 지불은 오히려 값진 일이었을 테다. 하지만 내 달음박질의 목적은 오직 인정 중독을 채워줄 '살진 송아지' 갖기였으니. 여기까지 왔으니 박사 다음엔 교수. 그냥 '사짜'를 달고 싶었을 뿐이다.




유선염과 고열에 시달려가며 독하게 따낸 시험 점수와 논문 실적을 허리춤에 꽂고. 다섯 살과 한 살 아이 둘을 두 어깨에 매달고. 그 까다롭다는 교수님 밑에서 박사 지원 pre-interview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들어가고자 하는 연구실에서 이미 일하고 있었으므로 그 어느 때보다 합격할 확률이 높았다. 물론 안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던질 수 있는 베스트 샷을 가진 한 해였다.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 몇 년을 노력했으니까.


12월 1일 오후 5시에 마감인 박사 원서를 일주일 전에 이미 완벽에 완벽을 기해 준비해놓고 교회 수련회를 갔다. 자녀교육 세미나를 들으러 갔는데, 시간 공지가 잘못된 바람에 그 세미나에 온 사람은 나와 강연자님 딱 두 명밖에 없었다. 강연자님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만 긴히 하실 말씀이 있으셨던 걸까.


참석자가 나밖에 없으니 자연스레 개인 상담이 시작되었다. 저명한 Mental Health Clinic에서 심리치료사로 일하시던 강연자님은 당신의 내담자 중에 많은 분들이 능력 있는 CEO, 의사, 변호사, 교수들, 기업의 임원들이라고 하셨다. 그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지만, 자기의 정체성과 직업이 혼연일체가 되어 살아오다가 그 직업에 문제가 생긴 순간 (사업이 망했다던지,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자신의 정체성마저 파괴되어버리고 우울증, 정신분열, 자살충동을 느껴 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직업이 곧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교수가 되고 싶은 게 뭐 어때서. 의사가 되고 싶은 게 뭐가 잘못됐어?'라고 반문할 수 도 있다. 가르치는 일, 사람을 살리는 일등이 주는 소명 자체에 초점이 맞으면 좋겠지만, 명함을 위해. 사회적 인정을 위해. 막연한 성공을 위해. 자신의 결핍을 상쇄하기 위해 달려가는 일이라면, 그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아가 산산이 부서지는 결말은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다. "일을 그만두면 죽을 거 같아" "쉬면 큰일 날 거 같아"라는 불안과 두려움이야말로 바로 내 정체성과 직업이 동일시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거다.


나 또한 그 덫에 빠져 있었다.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상실감과 불만족, 그리고 그에 따른 죄책감과 인정 중독에서 오는 '탕자 형 컴플렉스'는 나로 하여금 사회적 인정을 받는 학벌과 직업에서 그 돌파구를 찾게끔 했다.


그때 강연자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난 후에는 무슨 직업을 가지던 그 도구를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지어가면 되는데, 오히려 그 직업 자체가 내 정체성이 돼버리면 결국은 mental breakdown 이 올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순서와 내 순서는 다르거든요. 지금 내 힘과 노력으로 이것을 하면 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은 결국 더 멀리 돌아가는 일이 되어 버려요."


평생을 수도 없이 들어온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수박 겉핥기 식의 구호가 아니라, 정말 내 안에 심기고 뿌리내려져서 그 어떤 폭풍에도 떠내려가지 않는 닻이 된다는 것이야말로 내가 놓치고 있었던 굿뉴스. 기쁜 소식이었다. 두려워서 놓지 못하는 것. 결핍을 내 방식대로 채우려던 것. 쉽게 동요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내 마음의 병을 고쳐주시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한 번만 놓아보고 내 손을 잡아보지 않을래. 너는 이미 살진 송아지를 받았어. 그게 바로 나란다.'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원서 마감일인 12/1 아침이 밝았다. 온라인 원서의 "Submit" 버튼만 클릭하면 모든  끝나게끔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였다. '하나님, 정말 말씀해주세요. 말씀만 해주시면 순종할게요'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그날 아침 QT 말씀을 폈다. 마침 역대하 35장의 말씀이었다. 본문에서는 애굽  느고가 요시야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왔으니 싸우러 나가지 말라고 강권한다. 하지만 요시야 왕은  말을 듣고도 자기 계획과 반대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싫어서 일반병사처럼 "변장을 하고" 싸우러 나갔는데 결국 어이없이 화살에 맞아 죽게 된다.  또한 박사를 하고자 하는  마음의 동기와 중심에 대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으로 받고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의 평판을 의식하며 이제까지 일궈온  입지가 좁아지는  두렵고  계획이 틀어지는  싫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몰래 하버드의 Rowe 교수님 연구실에만 지원을 해봐야겠다는 "변장된 마음" 갖고 있음을 역대하 말씀을 통해 여실히 들어내신 순간이었다.  심각한 것은, 그렇게 전쟁에서 죽은 요시야 대신 그의 뒤를 위어 왕이  그의 아들은 3개월 만에 폐위되고 애굽의 포로로 잡혀 간다. 사회적 인정과 학력으로 흔들리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결핍을 채우려 동분서주하는 엄마와 한결같이 바쁜 아빠.   같이 돌봐줄 아무 식구들도 없이 오로지 사회 시스템에 맡겨져 방치되어 자라날  아이들을  , 애굽의 잡혀간 요시야의 아들처럼 우리 아이들 또한 세상의 포로로 잡혀갈  있다는 경고의 말씀으로도 들렸다.


하나님은 내 피땀으로 쌓아 올린 세상의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트리길 원하셨다. 그리고 '그 성, 내가 쌓아줄게. 그 Submit 버튼 내가 눌러줄게.'라고 하셨다. 어쩌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딸, 있는 그대로 충분한 사람이 되는 데 있어서 박사나 교수라는 타이틀은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시간낭비, 관계 낭비, 재정낭비. 무엇보다 마음의 중심이 과녁에서 가장 멀리 벗어난 상태일 테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이삭을 준비하셨고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나는 마음이 급해 내 뜻과 방식대로 이스마엘을 먼저 낳아버리는 심정이었다. 기다리지 못해서. 믿지 못해서. 불안해서. 그래서 낳아버리는 이스마엘은 작게는 한 가정으로부터 크게는 한 역사의 분란의 시초가 되는 것은 이미 자명한 일이니까.

 


원서 마감은 오후 5시. 오후 3시가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에세이 리뷰를 부탁했던 연구실 선배에게 문자가 왔다. '너무 좋은 에세이야. 이번에는 정말 잘 될 거 같아. 내 코멘트를 넣었으니 이메일 열어봐.' 끝끝내 날 흔드는 그 연락을 받고는 마음이 또 요동쳤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아, 하나님. 한 번만 더 말씀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이메일을 열었는데, 놀랍게도 선배의 이메일에는 첨부된 파일이 없었다. 실수로 첨부가 빠진 거였지만, 기도로 이메일을 열었던 나에게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음성으로 상황이 판단되었다.


오후 4시. 미련의 아이콘인 나는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딱 한 군데만 넣어볼까?" 나의 박사 지원을 이제까지 온 힘을 다해 서포트하던 남편은 웬일인지 이렇게 말했다. "너 말씀 떨어졌다며. 너.. 요시야 될 거야? 네 원서가 좋고 나쁘고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야. 너 이 원서 왜 넣고 싶니? 나한테 중요한 건 네가 유능해지고,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스펙이 높아지는 게 아니야. 나한테 중요한 건 네가 무엇을 하던 행복한 거야." 남편의 말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다.


합격을 한다면 인간적인 욕심으로 안 갈 자신이 없었다. 불합격이 돼서 못 간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순종일 뿐이지, 내 의지를 내어드린 순종은 아니었다. 내 의지적 순종의 길은 완성된 원서를 폐기 처분하는 길 뿐이었다.


오후 4시 55분. 원서를 빼버렸다.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제 공든 탑을 제 손으로 무너트립니다.

하나님이 쌓아주세요.

제가 쌓았던 제 왕국. 피땀 흘려 이룩한 내 나라.

가인이 동생을 죽이고 도망가 쌓았던,

그 휘황찬란한 놋 성과 똑같습니다.

동생과의 관계를 죽여놓고,

하나님이 날 부르시는 음성을 등져놓고

내 힘과 열심으로 똑똑해졌고,

부유해지고자 노력했고,

문명의 첫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그 놋성. 제 손으로 무너트립니다.


집 나간 동생을 찾지 않았고

살진 송아지만을 아까워하던 큰 형이

바로 저였습니다.

아벨을 죽이고,

이제는 내 손으로 내 성을 쌓겠다고 열심을 내던

가인이 바로 저였습니다.


하나님,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듯

저도 제가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던

제 욕심과 계획을 바칩니다.


하나님,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고 나서야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다고 하셨듯

저도 하나님을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도,

제 자신의 가장 큰 꿈보다도 사랑합니다.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어주셨듯

이제는 저의 하나님이 되어주세요.


당신이 제 삶에 주인이 되신다는 고백을

제 인생 처음으로. 진심으로. 진정으로.

행동함으로 고백합니다.


저를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주시는 아버지.

이제는 제가 잠잠히 있어

제 삶의 주인 되시는

당신의 자리를 돌려 드리고,

당신이 일하시는 것을 보며 찬양하겠습니다."




돌풍 같았던 12월 1일이 지난 후 연구실로 돌아가서 Rowe 교수님께 나의 결정을 말씀드렸을 때, 교수님은 싸늘히 한마디 하셨다. "Are you kidding me?" 약간의 경멸이 섞인 그녀의 눈빛은 '너만 엄마니? 나도 애가 셋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교수님의 눈에 나는 "또 애 때문에 자기 커리어 포기하는 어리석은 여자"의 모습이었을 테다. 교수님의 한숨 어린 눈빛에 잠깐 민망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녀가 짐작하는 이유와 나의 진짜 이유와는 너무 다른 것이었으니 금세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애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하는 과정"이 아닌, 진짜 나를 찾아가고 내가 쌓아온 나라를 온전히 surrender 하는 과정이므로.


연구실을 빠져나오며 일말의 아쉬움도 없었다. 가슴을 짓누르던 맷돌이 통째로 들어내지고, 숨이 쉬어졌다. 그 길로 둘째를 데리고 어린이 도서관의 스토리타임에 들어갔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책을 읽고 이제 아장아장 걷는 그 아이의 그 보드라운 손을 잡고 집까지 걸어왔다. 분리불안으로 흔들리던 아이의 눈동자에는 이제 오롯이 나로 가득 차게 되었고, 나의 마음의 주름도 함께 펴졌다.




그 후로부터 4년이 지났다. 나의 지난 결정에 대해서는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었음이 감사하다. 후회는커녕, "그때 그냥 갔으면 아이고오, 어쩔뻔했냐!!"며 잘하고 잘한 결정이라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평생 사업을 하시며 "김 사장님"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친정엄마는 나의 박사"포기"에 대해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냐며, 나중에 로스쿨"이라도" 가라며, 브런치 작가만 할 거는 아니지 않냐며 가슴 아파하셨다. 엄마에게는 아까운 큰딸의 도무지 이해 안 가는 결정이었을 테다. 한 번도 엄마에게 이 결정에 대해 이렇듯 상세히 털어놓은 적은 없으나 이 글을 통해서라도 설명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이대로 있지 않을 거라 믿는다. 지금 이대로 무엇이 아쉽다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대로 하나님의 자녀로. 사랑받는 자로. 충분한 사람으로. 먼저 온전히 채워지고 만족함을 배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과한 후 새로운 일을 시키신다면, 이전과는 분명 180도 다른 마음과 자세로 그 일에 터보 엔진을 단 슈퍼카처럼 매진할 것이고, 예전의 나로서는 꿈꿔 볼 수 없던 열매를 맺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의 주제는 '아이가 어리면 엄마가 커리어를 포기해야 한다'는 물론 아니고, '두려움에 결국은 주저앉는 경력단절녀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이 글은 진정 나를 찾는 여정. 나의 창조자 안에서 나를 발견해나가는 몸부림. 그리고 내 안의 감추어진 진심을 드러내 수술을 받는 과정. 그리고 이제야 건강해진 몸과 마음을 가지고 새롭게 호흡하는, 나의 창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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