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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 Jul 24. 2021

하버드에서 공부한 것 들

진주 목걸이를 꿰어내는 은혜


고운 빛깔을 지녔지만 울퉁불퉁한 진주와 산호가 제멋대로 바닥을 굴러 다닌다. 하나씩 들어다 보면 저마다 귀하고 특별한데, 하나의 보석으로 꿰어 내려니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것들을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걸작품으로 꿰어내는 데는 장인의 손길 말고는 구제할 길이 없다. 그것이 은혜다.


때때로, 실은 아주 자주. 내 삶의 맥락이 없다고 느껴졌다. 조개가 온 힘을 다해 진주를 품어 내듯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고통스럽게 잉태한 모든 알갱이들은 하나로 관통되는 서사 없이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그마저 무의미하고 쓸모없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 씁쓸한 실패의 기준은 오로지 나에게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 걸작품을 꿰어내는 장인의 눈에는 그 모두 나무랄 데 없고 버릴 데 없는 훌륭한 재료 들일지도 모른다.




요즘 무척이나 각광받는다는 "N 잡러". 또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낸다는 다동력(多動力)이라는 단어를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그런 것도 능력이구나! 그런 게 좋을 수도 있는 거구나! 몹시나 위로가 되는 단어들이다. 그전까지는 사람은 자고로 한 우물을 파야 뭐가 돼도 된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내가 가진 여러 종류의 호기심과 흥미들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그토록 신봉해 마지않던 "한 우물"의 정의에 의하면, 난 여러 우물을 기웃거리며 삽질만 해대는 정신없는 실패자였다. 학부 때 국제 관계학(International Relations)으로 브라운에 들어가서는 치대에 가겠다고 의예과 트랙 (Pre-Med track)을 울며불며 공부하며 밤마다 스트레스 푼답시고 스튜디오에서 그렇게 그림을 그려대더니, 결국 시각 예술(Visual Arts) 전공자로 졸업한 일관성 없는 학생. 그러다 대학원은 한 번도 공부해본 적 없는 뜬금없는 교육정책학이라니. 진작부터 외길 인생을 가고 싶었으나.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 같은 것과, 해봄직한 것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던 1인. 그 와중에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또 다른 종류의 풀타임 잡을 소화해내야 하는 나는, 왜 이렇게 뭐든 하나를 정하지를 못하는 거냐며 스스로를 질책하곤 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데, 나는 무엇을 꿰어 내야 하는 걸까. 마흔을 목전에 두고 내가 가진 구슬과 진주와 산호로 하나의, 아니 '나만의' 맥락과 서사를 엮어 내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 소망이 실상이 되기 위해서다. 굴러다니다 하염없이 멈춰있는 진주알들을 가만히 품어본다. 그리고 나만의 목걸이를 꿰어보려는 떨리는 첫 손짓이다.




국제관계학-의예과 트랙-시각예술전공으로 널뛰기하듯 뛰어다닌 학부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번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교육학으로 대학원에 가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첫째를 임신한 와중에 어플라이 했던 학교였는데, 덜컥 미국의 반대쪽 보스턴(케임브리지)에 학교가 된 바람에 남편은 나를 위해 동부에서 일하기 위한 라이센스를 새로 따야 할 지경이었다. Harvard 교육대학원에서  국제교육정책학 (International Education Policy)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각 나라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가 그들의 교육 정책과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비교하고 공부한다. 한 예로, 공교육 측면에서 우월한 나라들 (가장 많이 예로 들어진 나라가 핀란드, 싱가폴, 그리고 한국)과 내전 등으로 교육이 힘든 나라들 사이의 차이점을 공부하며 그 갭을 정책적으로 줄이고자 하는 연구를 한다. 앞에서 말했듯 학부 때는 전혀 이와는 상관없는 분야를 공부했었는데 어떻게 이 분야로 하버드까지 왔나 되돌아보면, 대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쌓았던 경험 덕분이었다.


브라운을 졸업하고 한국에 있을 때는 탈북자들을 위한 대안학교에서 영어 커리큘럼을 만들었고, 결혼을 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신혼생활을 할 때는 Claire Lilienthal이라는 시내 공립학교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 일했다. 또 미술을 전공했던 경험을 살려 샌프란시스코 시내 아트센터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미술 선생님으로도 일할 수 있었다. 학부 때 교육학에 관련한 백그라운드는 전무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늘 관심 있었던 난민 교육과 사각지대로 여겨지는 도심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일한 경험, 그리고 나 또한 이민자로서 한국과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둘 다 겪어보고 비교해볼 수 있는데서 오는 인사이트가 하버드 입장에서는 나를 흥미로운 applicant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하버드에 와서 여러 나라들의 정책 분석학과 비교 경제학, 이민정책, 이중 언어학, 다문화와 다양성 등을 공부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수업은 한국에서도 유명하신 조세핀 김(Josephine Kim) 교수님의 'Issues of Diversity in Cross-Cultural Counseling and Adovcacy'라는 과목이었다. 매주 3시간씩 세미나로 진행되던 수업이었는데, 그 수업을 들으며 내 속 깊은 곳에 죽은 듯이 가라앉아 있던 이민자로서의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쓴 글 https://brunch.co.kr/@glolee/19)

내 속의 숨겨진 상처와 감정들을 수업시간에 동료 앞에서 오픈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는 것.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함께 고민한다는 것.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대화들이 실제로 새로운 정책과 시스템의 첫 발걸음이 될 수도 있다는 이 모든 과정의 자체가 나에게는 치유의 시간들이었다.


Dr. Jo라고 불렀던 조세핀 김 교수님과는 여러 공통점들이 있었다. 어렸을 때 미국에 온 이민자, 크리스천, 동갑내기 아이들을 키우며 공부하는 엄마라는 교집합들은 우리 사이에 학교 울타리를 넘어선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게 했다. 대학원 어드미션을 받아 놓고, 이곳에서의 공부도 공부지만 한 명의 진정한 친구와 한 명의 진정한 멘토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소망했던 멘토를 만나게 된 게 감사했다.


졸업을 앞두고는 Dr. Jo가 디렉터로 계시는 Mustard Seed Generation (MSG)이라는 non-profit organization 컨퍼런스의 패널리스트로 동참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Mustard Seed Generation 은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특별히 한인사회의 정신건강 (Mental Health)의 초점을 맞춘 비영리 단체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총기사건 중 하나로 논해지는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피의자로 한인 학생 조승희 씨가 지목되었다)으로 인해 그동안 한인사회 안에 함구되어 오고 금기시되어오던 정신질환/정신건강에 대한 이슈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카운슬러로 일하시던 조세핀 김 교수님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한인 가정 내의 소통의 부제, 문화 차이와 언어장벽으로 인한 괴리감, 우울증과 정체성의 문제들을 위해 일하실 것을 소명으로 여기시고 비영리 단체를 설립하셨고 그것이 MSG라는 단체로 지금까지 여러 지역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컨퍼런스에 함께 가서 교수님이 한인 부모님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시는 동안, 나와 동료들은 한인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를 진행했다. 대부분의 고민들은 이민가정의 자녀로 살며 부모님들과 문화, 정서, 감정적으로 단절된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기대치를 만족시키며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압박. 하지만 진짜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 모르는데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귀결되었다. 나 또한 이민가정의 자녀로 살며 겪었던 부모님과의 관계적 어려움, 인종적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 "Model Minority"라는 아시안으로 살면서 사회의 잣대에 부응해야 하는 압박 등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대학만 잘 가면 부모님께 보답하는 건 줄로만 알았던 내 십 대의 삶이 나중에 얼마나 곯아 터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과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정체성 찾기의 여정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 패널리스트로써의 가장 큰 소득이었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노래 노래를 부르던 "하버드"에서 배우게 된 건, 결국 이름뿐인 간판이 아닌 "나를 찾아서 남에게 흘려보내는 일"임을 배운 것이 제일 큰 소득 아니었을까.




내 졸업과 함께 만 두 살이 된 첫째를 품에 안고 하버드 석사를 끝마치며 박사 준비에 들어갔다. 리서치와 논문 준비를 하며 두 군데의 연구실에서 일했는데, 그중의 하나는 보스턴대학 (Boston University)의 School of Social Work and Public Health 내 Asian Women's Action for Resilience and Empowerment (AWARE) Lab이었다. 이곳에서 했던 연구는 주로 미국에 사는 18세 이상의 성인 아시안 여성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을 주제로 한 Cognitive-Behavioral Intervention (인지적 행동 중재 프로그램), 카운슬링과 테라피를 진행하며, 인터뷰와 quantitative/qualitive data analysis를 기초로 논문을 쓰는 것이었다.


동양인이라는 인종 자체가 흑인이나 라틴계열에 비해 현저히 visiblity 가 적기도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동양 여자"라는 서브그룹은 순종적이고 조용하며 약하고 가정 내 불화를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잘못된 사회적 이미지 때문에, 다른 인종 그룹보다도 (통계적으로 볼 때) 훨씬 높은 우울, 자살, 자기혐오, 정체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함묵을 미덕으로 삼아왔던 동양 정서상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게 현실이다. 나 또한 "동양 여자"이고 이민자로서 이 사회 일원으로 살면서 충분히 체감하는 이슈들이었다. 이런 현상들을 분석만 하고 실험만 하는 곳이 아닌, 실제로 참여자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효력 있는 intervention program을 진행하며 호전되는 상황들을 기록하고 다음 스텝을 기획하는 연구소 일이 의미 있었다. (특히 올해 애틀랜타의 한인 여성들 총기사건 관련해 급증하고 있는 미국 내 동양인 혐오 반대운동으로 AWARE 연구실의 연구들이 많은 각광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둘째를 임신해 남산만 한 배로 일하며 열 달을 꽉 차우고 진통이 오던 날 아침. 둘째 출산이라 자궁이 빨리 열렸는지 엄청난 진통을 느끼며 병원까지 달려가는 차 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안전벨트를 쥐어짜고 있는데, 근 일 년을 쏟아부은 우리 논문이 드디어 통과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타이밍까지 이리 상징적일 일이냔 말이다. 정말 논문 출판의 과정도 출산과 다를 바가 없음을 느끼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둘째를 낳으러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이 둘째의 출산은 나의 커리어를 또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데..... 그 얘기는 다음 편에).




이 모든 여정을 관통하는 나만의 서사는 무엇일까? 나는 정말 정신없고 맥락 없는 인생이라고 허탈해하며 살았는데, 쓰면서 돌아보니 수면 위로 무언가 떠오르는 게 보이는 것도 같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 모든 발걸음은 결국 나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어린 시절 이민생활을 하며 잊고 싶고 숨기고 싶었던 상처들은 Mustard Seed Generation을 통해 나와 같은 고등학생들을 마주하고 도와주며 치유될 수 있었고, 사회적 약자인 유색인종 여자로서 겪어야 했던 고충과 아픔들은 AWARE Lab을 통해 그녀들의 서사를 들어주고 함께 상처를 보듬으며 우리의 내일을 빚어가는 시간들이었다. 결국, 자아를 찾아가다 타인에게까지 가서 닿는 여정이다.


흠 많고 볼품없다 여겨진 진주알들이었지만, 꿰어놓고 전에 없던 애정으로 바라보니... 보배롭다.


 보배를 이제 어떻게 써야 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난   동안, 나와 같은 보배들을 꿰어내고 계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홀로 있으면 쓸려버려 폐기 처분될지도 모르는 알갱이들이지만, 서사와 서사가 맞닿 길이 되고, 마음과 마음이 닿아 울림이 되기도 하는 것을 목도한다. 이전까지는  머리에 화관을 쓰고,  목에 두를 보물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화관을 벗어던지고  마음으로 이제야 꿰어진 나의 진주 목걸이는, 어느  누군가의 허전한 삶에 둘리어 위로가 되고 자랑이 되는 진정한 보배가 되기를 꿈꿔본다.


• Soli Deo Glo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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