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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킴 Jul 05. 2021

뉴질랜드에서 밥벌이 가르치기



뉴질랜드 전단지 알바


열, 스물… , 스물, 서른… , 


시후가 이번 주 배달을 할 전단지들을 모아 한 묶음으로 접고, 열 묶음을 한 단위로 가방 안에 넣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지난 주부터 시현이와 시후는 전단지 배달 업무 인수인계를 하느라 바쁘다. 지난 2년 동안 시현이가 매주 해오던 일을 동생인 시후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 가방에 들어 있는 전단지 숫자에 새로 접은 전단지 숫자 열을 더하면 지금까지 접은 총 전단지 숫자를 알 수 있을텐데, 이 간단한 것이 시후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모양이다. 열 개를 접어 넣을 때마다 가방안에 있는 것들을 다시 처음부터 헤아린다. 백 육십 묶음의 전단지를 접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 뻔해 지켜보기로서는 답답한 마음이 든다.



이 전단지 배달 일은 뉴질랜드에서 16세 이하의 아이들이 용돈 벌이용으로 주로 하는데, 최저 임금법 적용이 되지 않아 보수도 인색하기 그지없다. 대신 '건 바이 건'으로 그 주에 할당되는 전단지 숫자만큼 또 본인이 할당 받은 배달 구역의 집 숫자만큼 돈을 받는다. 


시현이가 맡았던 구역은 전체 200여 가구이다. 가끔은 집집마다 배달할 전단지가 여러 장의 묶음이 아니라 딱 한 장일 때도 있다. 최악의 경우다. 전단지 숫자만큼 보수가 책정되니, 이럴 때는 일주일에 2불이 채 안 되는 돈을 받는다. 반면, 크리스마스 때처럼 광고 전단지가 많은 '성수기' 때에는 일주일에 20불이 넘어가기도 한다. 한 주에 평균 15불 정도를 버는 셈이다. 한 주에 한 번 할당되는 분량을 끝내는 데에는 전단지를 접는 날, 돌리는 날 등 3일 정도에 걸쳐 총 3시간에서 때로는 5시간이 소요되니, 계산해보면 시간당 3불에서 5불 정도를 버는 것이 된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2천 원에서 4천 원 정도 되겠다.





내 용돈은 내가 벌어볼게요

- 시현이 밥벌이의 역사


비록 적은 돈일지라도 스스로 벌어보는 경험은 어린 아이들로 하여금 일에 대한 책임감,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방법, 그리고 자기 시간 관리법 등을 배우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돈의 가치를 알아가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함은 물론이다.


2년 전, 시현이가 주변 친구들이 이 배달 일을 하는 것을 보고는 본인도 하고 싶다고 나섰다.


왜 하고 싶은지 물어보자, 시현이는 당연한 것을 물어본다는 듯 ‘용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번도 용돈 달라는 말을 한적이 없어서 '아직은 크게 돈이 필요하지 않나 보다' 하고 따로 용돈을 주지 않고 필요한 것들을 내가 직접 사주거나 해결해 주었었는데, 중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시현이도 이제는 서서히 용돈이 필요해진 모양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배달 일은 시현이의 용돈의 원천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방과 후나 주말에 친구들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고, 쇼핑몰을 뒤져서 할인 중인 티셔츠를 사기도 했다. 처음 받은 주급으로 사서 마신 음료수는 진심으로 꿀맛이었다고 한다. 그 적은 돈을 조금씩 모아서 동생 음료수도 사주고, 엄마 생일에 작은 선물을 하기도 했다. 옷이 필요하면 사주겠다는 엄마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번 용돈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언젠가 시현이에게,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 너무 적으니 그만두고 싶지 않냐고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시현이는 의외의 대답을 해 주었다. 이 일에는 용돈을 버는 것 말고도 장점이 많아 그만 두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배달을 위해 한시간 삼십 여 분 걷는 동안 주로 혼자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것이 꽤 재밌다고 했다. 생각 속에서 평소 하는 비디오 게임 캐릭터를 가지고 공상의 나래도 펼치는데, 자신의 생각속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온갖 상황을 만들어 볼 수 있어 흥미롭다고 했다. 또한 서두른 일 없이 천천히 걷다가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했다. 노을 지는 하늘의 환상적인 모습. 밤이 일찍 오는 겨울, 듬성 듬성 흩어져 있는 가로등과 휘영청 하늘에 걸린 달의 몽환적인 모습들이 시현이 스마트폰 앨범에 담겨 있다.


적은 보수임에도 그 과정을 즐기며 2년 여의 기간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꾸준히 전단지 배달 일을 해 온 시현이. 덥고 춥고 비 오는 날에도 불평 없이 배달 가방을 메고 일해온 아이가 새삼 대견하고 기특하다.





엄마 일이 두 배가 되는 아들 독립 프로젝트


이제는 시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과제도 많아지고, 기타 방과 후 활동도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시후에게 형의 전단지 배달 일을 이어서 해보겠냐고 물어보았다. 시현이가 배달 일로 일주일에 버는 돈을 시후가 좋아하는 젤리와 음료수의 개수로 환산해주자, 시후는 신난 표정으로 바로 하겠다고 답을 했다. 이렇게 하여, 형제의 배달 업무 인수 인계가 시작된 것이다.


시현이는 딱 3주 동안만 시후에게 인수인계 작업을 해주겠다고 못을 박았다. 자신도 처음에 이 일을 배워나가면서 온전히 혼자 책임지고 해낼 때까지 6개월 이상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3주는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당연히 나의 시간과 도움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시후는 벌써부터 엄마가 도와줄 것을 당당히 요구해 온다. 한동안 좀 편해졌나 싶었는데, 다시 또 고달픈 전단지 배달 매니저(?)의 역할로 돌아왔다. 시후에게도 혼자 온전히 이 일을 맡을 수 있기까지 꽤 오랜 기간이 걸리겠거니 하고 각오를 다진다.


시후에게 숫자 세기를 포함, 구역마다 빠짐없이 전단지를 넣는 것 등을 가르치면서, 처음 시현이에게 이 일을 잘 하도록 가르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무리 간단한 일이라도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요령이 필요한 법이다. 또한 각자의 성격과 장단점에 따라 배울 범위가 다른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무슨 일에나 느긋하기만 한 시현이에게는 마감 시간에 맞춰 일을 끝마치도록 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었다. 전단지를 접기 전 미리 가방을 가져다 놓는 것, 그리고 모든 전단지들을 크기대로 정렬하는 것부터 가르쳐야 했다. 이 간단한 것을 몸으로 습득할 때까지 계속 상기시켜 주어야 했다. 또한 기분에 따라 배달하는 날을 정하기 보다는 일기 예보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 또 자신의 방과 후 활동도 염두에 두고 전체적으로 시간 안배를 해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야 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몇 묶음 더 넉넉히 접으라고 몇 번 주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딱 맞게 접어도 된다며 고집을 부리다가, 바람이 심하게 불어 전단지들이 하늘로 흩어져 버려서 다시 집으로 걸어와야 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고생스런 경험 후에야 비로소 요령을 익히고 만약의 경우도 대비할 줄 알게 되었다.






벌써 2주 동안 전단지 돌리기를 형과 함께 하고 있는 시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시현이와는 확실히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시후는 일단 숫자 세기부터 배워야 한다. 160까지 세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너무 요원해 보여, 일단은 전단지 200개 묶음에서 40개를 먼저 빼놓고 접게 한다. 그 전단지가 다 떨어지면 접기는 끝난다. 꼼꼼한 성격이라 삐죽삐죽하게 접지는 않지만 대신 시간이 꽤 걸린다. 시후는 전단지를 우체통에 넣을 때도 시현이의 배 이상의 시간을 들인다. 일 분, 한 시간의 길이를 거의 가늠하지 못하는 시후에게는 시간 안에 일을 끝마치도록 시간 개념도 가르쳐야 한다.


낮이 짧은 요즘엔 화요일과 수요일에 배달을 하고 나면 친구들과 놀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일의 절반 정도는 시후가 학교에 있는 사이에 내가 미리 끝내 놓아야 한다. 그래야 시후가 해지기 전에 배달도 하고 친구들과 잠깐이라도 놀 수 있다. 조금씩 감당할 수 있는 양을 늘려 가면서, 시후도 이 일에서 나름대로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내게 과제로 주어졌다.




이 배달 일은 나에게도 큰 배움을 선물한다. 시현이가 자신만의 방식대로 일을 터득해 가도록 지켜보는 일은 그야말로 내 인내에 대한 테스트였다. 내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방식을 고집하다가 시간이 배로 들고 몸도 더 힘들게 되는 상황을 겪는 시현이를 지켜보며, 그것이 배움의 터가 되도록 격려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는 일이기도 했다.


시간의 개념과 돈의 가치를 모르는 시후에게 이 일을 가르치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일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무척 예민하고 까칠한 시후가 이 일을 재밌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나의 목표를 세워본다. 한 번의 경험이 있었으니, 나도 좀 나아졌으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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