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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실업 4개월차 단상 - 희망과 걱정 그 사이

by 월인도령

이번 주말 처가 식구들과 여행을 함께하면서 동갑내기 형님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형님은 소매 유통 쪽에서 일하다가 요즘엔 온라인 리셀 사업까지 겸하고 있는, 말 그대로 ‘N잡’의 유통맨으로 부부가 전력투구를 다해서 함께 뛰는 모습이 내 입장에서는 늘 존경스럽기만 한 가정이다. 최근에 매출이 많이 흔들려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는 걸 보면, 온라인 소매유통을 일찍 시작한 게 참 큰 자산이 되었구나 싶었다.


형님과의 대화의 시작은 이랬다.


“이제 친구들 중에 공무원이랑 대기업 다니는 애들 빼고는 회사 다니는 애들 거의 없어.”


(사실 내가 매달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들 8명을 봐도 기술직 1명, 교육직 공무원 1명, 노조가 있는 대기업 현장직 1명, 사업 1명, 그리고 대기업 건설직 나와서 자영업 하는 친구 1명, 부모님 병간호 하면서 주식 트레디잉 하는 친구 1명 그리고 중소기업 다니는 친구와 나.. 그러고보면 세상기준에 괜찮은 직장을 다니는 친구는 1명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랬다. 형님 결혼전 함을 전달하기 위해 왔던 친한 친구중 하나도 중소 제약회사에 다니다가 작년에 회사를 나왔는데, 퇴직금도 못 받은 채 1년째 쉬고 있다고 했다. 실업급여도 이제 끝나가는 터라서, 얼마 전 구직박람회에 갔다고 하는데. 돌아온 얘기가 씁쓸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기술이 없으면 월급은 200부터 시작”이라고 말하더라는거. 그 말이 뼈에 박혀 그냥 돌아섰다고.


물론, 이 말은 처음이 아니다. 6-7년전 소령으로 군대를 전역한 내 친구도 한참을 구직활동을 하는데, 업체는 각각 다른데 거기 사장들은 똑같은 같은 말을 했다고 했다 ' 월급은 200' . 그래서 친구는 대리기사, 알바, 컴퓨터 설치 기사 등을 하면서 결국에는 설치기사를 하고 있다. 그나마 설치기사는 자기 차량이 있어야 하는 조건이지만, 그래도 350-400은 가능하다는 것이 친구 설명이었다.

그 얘기를 듣는데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돌아보면 나 역시, 지시만 하는 ‘빨간펜 선생님’ 같은 역할을 하고 싶진 않았다. 남이 해 놓은 틀 안에서 수명만 연장하는 기분. 그게 전부가 되긴 싫었다. 문제는, 나도 막상 할 줄 아는 게 마땅치 않다는 거였다. 결국 버틸 수 있는 자금이 줄어들고, 나이까지 먹게 되면, 출구는 점점 좁아질 것 같다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힌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말은 참 많이 들었지만, 그 ‘뭐라도’가 무엇인지가 도통 보이질 않는다.


물론 , 아직 구체화되지 않지만 대안이 있기는 하다. 얼마전 상가집에서 미국 대학 한국 법인을 맡게된 큰형님이 마케팅 쪽을 맡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고, 건물 관리소장을 하는 친구도 이직하면 관리실 자리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둘 다 당장 실현 가능한 건 아니라서.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하고, 마음은 오락가락하기만 하다.


얼마 전엔 사업체 하는 지인이 (나이는 나보다 세살 위) “아직도 도서관 다니냐?”며 다짜고짜 조언을 건넸다.


내용은 “아쉬운 놈이 달라고 해야 뭐라도 주는 법”이라며, 도서관보단 사람을 만나라고. 하루에도 한 명씩은 만나서 부딪쳐보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누굴 만나서 똑같은 얘기 듣는 것도 망설여진다. 안해본 것도 아니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도 어느정도 예상이 되는 터라 그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말도 사람이 잘난 사람과 만나고 싶은거지. 그렇지 못하면 안만는 것이 낫다는 말이 지금 내게는 더 와닿은 말이다.

그래도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시기인데, 그게 더 어렵다.


그래서 요즘은 새벽마다 교회를 간다. 그곳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고민도 하고, 기도도 해본다.


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결국 가진 것도, 배경도 없는 사람들이 선택하게 되는 마지막 길이 쿠팡 물류 알바 같은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씁쓸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래, 그것도 노동이고, 땀 흘리는 일 아닌가’ 싶은 마음도 생긴다.


물론, 실업 4개월차에 희망을 버린 건 아니다. 지금 중장년층이 대거 퇴직하고 있는 상황이라, 어디든 경쟁이 치열한 건 사실이지만, 굳이 높은 연봉을 바라기보다는 너무 열악하지 않은 곳에서 땀 흘리며 일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또 기회가 올 수도 있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일이다.


중요한 건 결국 ‘마음가짐’이고 ‘태도’라는 걸 안다. 하지만 지금 내게 부족한 건, 그 ‘행동’인 것 같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답이 보이기보단 마음에 구름만 더 짙게 끼는 것 같다. 불안은 커지고, 조급함도 자라난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마음을 정리해본다.


복잡한 상념 속에서 글로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는다. 어디든 한 발, 내디딜 수 있게 되기를. 이 먹먹한 시간에도 언젠가는, 해가 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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