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져서일까? 아니면 그게 새로운 결심이 되어서일까. 이듬해 여름 로마를 다시 방문하여 연주를 하게 되었다. 10년 동안의 땀방울을 다 흘렸을 것만 같은 여름 이후, 모든 일정을 끝내고 마침 파리를 경유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 김에 그토록 오고팠던 이 도시에서 일주일 정도를 보내기로 했다.
로마에서 여러 가지 일들로 많이 고무되기도 했지만, 많이 지쳤고, 나에겐 분명 휴식이 필요했다. 단지 육체적인 문제만이 아니었다. 나의 모든 것을 그곳에 부어놓고 온 듯한 느낌이었기에. 8월 초에 파리는 뜨겁다 못해 녹아내린 내 마음을 아는지 어두운 구름 낀 하늘에서 비를 추적추적 내려 주며 살짝 춥기까지 하다. 믿을 수 없는 기온 변화에 약간 당황하며 눈앞에 보이는 상점에 들어가 가벼운 숄을 한 장 사서 어깨에 덮었다.
도착한 날은 마침 일요일이므로, 나는 이 여행을 노트르담 대성당에서의 주일 미사를 참석함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사실 방문하기 전엔 내밀한 신앙적 만남보다는 건물의 웅장함에 압도되는 나를 먼저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당 앞에 도착하자 내가 압도된 것은 그 규모가 아닌 섬세함이었다. 정문부터 세심하게 조각된 열두 사도와 그 중심의 예수님이 나를 반겼다. 그것이 성인들의 비호를 받으며 이곳으로 함께 빨려 들어가고 있는, 세속의 시간을 잠시 내려놓고 온 세계 사람들 역시 느낀 첫 감동이리라.
이미 여러 타지에서 주일 미사를 드렸지만, 이곳 파리 노트르담에서의 기억을 가장 사랑하게 된 것 같다. 고딕 양식임에도 뾰족한 고고함이 느껴지기보다는, 그 이름처럼 모성애가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둘러싸여 차분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뜨거웠던 로마에서의 일정을 무사히 잘 마무리하게 해 주심과, 너무나 필요한 쉼과 충전의 시간을 허락하신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또, 이곳에서 한 인간이자 예술인으로서 많은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도록 청원하는 기도가 절로 나오던 바로 그때.
부드럽게 흘러나오던 신부님의 불어로 된 기도가 어찌나 아름답게 들리는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느껴지는, 아니 말은 다 달라도 세계에서 똑같이 이루어지는 전례 의식으로 인하여 그 깊은 뜻이 온전히 내 마음속에 다다르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날 미사는 그레고리오 성가인 천사 미사곡으로 올리는 게 아닌가? 주보에 악보가 실려 있긴 하지만 일반인들이 처음 보는 악보를 이렇듯 빨리 읽기는 어려울 터. 여기 모인 세계의 신자들은 이 전통의 멜로디를 많이들 아시는 거다. 얼굴도, 국적도 다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로 기도를 드리고 있다. 마치 바벨탑을 쌓아 올리기 이전 그 어느 날처럼.
또한 간간이 울려 퍼지던 그곳의 오르간 소리는 평생 잊을 수 없으리라. 수많은 파이프들이 이 큰 공간을 그것도 섬세함을 잃지 않는 울림으로 꽉 채우는데, 그 누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우연히 이 성당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면, 아마도 엄마에게 떼를 써 저 위대한 마법의 악기에 손을 한 번 올려 보는 것이 소원이니 오르간을 배우게 해 달라고 졸랐을 게 틀림없다. 물론 어떤 오르간이든 어떤 연주든 소중하지만, 이 순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연주자의 겸허한 기도가 더해진 저 울림은 정말이지 신이 너무나 사랑하실 기도이리라.
이렇듯 평안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파리에서의 여정은 쉼과 예술, 그리고 만남으로 충만한 감동적인 시간으로 남았다. 낮에는 하루 한 곳 다른 미술관을 찾아 차고 넘치는 걸작 중 나의 마음과 겹치는 작품을 고르기 바빴다. 특히 파리의 예술은, 지금도 그 주인이 내 옆에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생동감으로 걸어 들어왔다. 고흐, 르느와르, 드가, 모네 등의 작품을 미국에서 접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곳에서의 만남은 그들의 프레임 속에 내가 걸어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현재진행형이다. 이끼 낀듯한 그들의 공기는 너무도 엄청난, 세상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전류다. 길게는 몇백 년, 짧게는 몇십 년의 세월이 있었을 텐데도 그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나 보다. 대단한 생명력을 가진 사람들...
파리는 루브르, 오르세 말고도 멋진 미술관들이 너무나 많은 도시다. 특히 로댕 박물관은 작품도 작품이거니와, 그가 살았던 장소로서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매력이 있다. 로댕의 작품으로 가득 차 있는 조각공원 같은 그의 정원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은 내가 영원히 그리워할 작가와의 찐한 데이트의 기억이다.
이런 마음을 나 혼자 간직하기가 너무 아까운 나머지, 시내를 활보하며 들르는 곳마다 그 장소의 사진이 담긴 엽서를 구입해서 한국과 미국의 지인들에게 틈틈이 엽서를 썼다. 그래서 센 강도, 몽마르트르 언덕도, 샹젤리제 거리 위 어느 카페도, 내겐 누군가와 마음을 나눈 소중한 장소이다.
파리에서 만난 것은 옛사람들만이 아니다. 그런 예술가들의 공간에서 만난 현대의 이방인들도 많다. 전혀 다른 삶의 프레임 밖으로 튀어나온 그들 역시 자신들의 세계를 잠시 접고 각자 조금씩 다른 기대를 안고 새로운 공기를 탐미하러 온 것이다. 내가 머물던 숙소에는 어린 학생들보다는 이미 자기 길을 찾아 걸어가고 있는 직장인들이나 예술인들이 많았다. 낮에는 주로 홀로 시간을 보내다, 저녁 시간에는 이들과 밖에서 만나 함께 야경을 구경하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귀가해서는 두런두런 살아가는 이야기보따리를 풀기도 했다.
이 민박집에는 상주하며 일을 봐주는 청년이 하나 있었는데, 알고 보니 파리 여행 중 지갑과 여권을 잃어버려 한국에 당장 귀국을 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을 겪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민박집 사장님께서 그를 임시 고용해 준 것이었다. 나는 이 친구와 함께 하루를 잡아 근교 베르사유 궁전을 다녀왔다. 궁전 둘레를 다 돌면 40km가 넘는다는 압도적 크기와, 경쟁상대가 없을 것 같은 건물 내외의 극치의 화려함과, 이곳의 첫 주인 루이 14세의 위세를 느낄 수 있는 정원과 분수가 찬탄을 일으키면서도 한편 숨 막히게 한다. 살아있는 이가 신이 되고자 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그대로 보여준 장소가 바로 이곳이리라. 마리 앙투아네트도 이런 갑갑함을 느꼈을까? 그의 별궁이었던 프티 트리아농에서 오히려 숨을 돌리는 나 자신을 보며, 비극적 결말을 잘 아는 그의 삶에 어떤 연민이 느껴진다. 그리고는 정원 중앙 호수로 나와 시대의 꼭두각시 귀족들이 그랬듯 우리도 조각배를 빌려 어색하게 노를 저어 보았다. 우리에게는 이게 그저 재미고 휴식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기억에 남은 또 다른 친구들이 있다. 한 명은 패션 잡지의 에디터이고, 다른 한 명은 의상디자인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라고. 그들은 모두 삶의 또 다른 방향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다소 무거운 고민을 안고 있었는데, 예술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공통점이 많아 나름 깊은 교감을 나누게 되었다. 우리는 어느 날 저녁 콩코르드 광장에서 만나 근처 인도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주변을 배회한 후 해 질 녘 센 강에서 유람선을 타게 되었다. 마침 그날 그들 중 한 명이 한국에서 좋은 소식을 듣고 현재의 고민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며칠 동안 처음 본 사이가 아닌 듯 나누던 이야기의 한 자락이 해결되었다는 소식에 나 역시 마음이 가뿐해지고 행복이 전파되었다. 이날 센 강을 따라 흐르던 배는 파리의 역사적 건물들의 빛나는 모습을 소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시원한 바람과 함께 우리 삶의 새 방향을 선물해 주었다. 에펠탑의 화려한 축하는 덤이었다.
파리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돌파한 민주주의의 일등공신이자 수많은 예술가들을 탄생시킨 도시이기에, 그만큼 이들의 묘지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들의 유해가 모셔진 장소 중 내가 방문한 곳은 팡테옹 사원과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다. 팡테옹은 내가 좋아하는 소르본 대학가와 가까워 먼저 들렀다. 원래 파리의 수호성인인 성 주느비에브 성당으로 지어진 곳이기에 탁 트인 위층은 주느비에브 및 다양한 성인을 묘사한 벽화로 가득하지만, 지금은 국가에 기여한 이들을 모신 국립묘지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 명사들의 무덤으로 가득한 이곳 아래층에서 정말 반가웠던 건, 루소나 위고, 퀴리 부처의 묘소보다도, 그 위에 빽빽하게 붙어 있는, 이곳을 들른 방문객들의 쪽지다. 시차를 두고 살아가는 우리지만, 여전히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페르 라셰즈 묘지는 조금 더 다양한 인물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진정한 공동묘지다. 파리 20구, 즉 예전에는 시 외곽이었던 곳이기에 지금도 조용히 산책하기 참 좋은 장소다. 여행을 하며 공동묘지를 찾아가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떠난 사람들의 삶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사색의 계기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처럼 아름답게 조성되어있기까지 하면 더욱 그렇다. 굉장한 규모이기에 지도를 보며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을 찾아본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 화가 모딜리아니, 음악가 쇼팽, 그리고 록 가수 짐 모리슨까지, 이들의 묘비를 지켜보자면 한 사람의 생애를 이토록 절묘하게 표현한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방문한 사람들의 반응도. 특히 짐 모리슨의 묘 앞에는 일반적으로 놓여 있는 꽃과 초뿐만 아니라, 여성 속옷 및 담뱃갑도 놓여 있어 큰 웃음을 주었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숙소 사람들과 맛있는 바비큐 파티를 하고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나와 야경을 바라보며 산책을 했다. 제대 위 두 팔 벌린 예수님의 벽화처럼, 이곳의 중심 사크레 쾨르(예수 성심) 성당은 이곳을 들른 모든 이들을 품어주는 포근한 장소다. 나는 여기에서 촛불을 켜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언덕 계단에 앉아 드넓은 파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저 수많은 지붕 아래 수많은 이들의 시간을 거쳐 내가 여기 앉아 있을 수 있구나.
서늘했던 8월의 파리의 안락한 포용을 느끼며, 이들은 영원히 세상 사람들을 이렇듯 강하게 끌어 이 자리에 앉혀 놓을 수 있으리란 걸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 파리의 사람들처럼 녹록하게 오래오래 숨 쉬고 싶다는 열망과, 예술의 힘, 예술의 자존심, 그 열정과 그 고통과 그 사랑을 한 아름 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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