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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텐 Jul 09. 2021

고흐의 영원한 시간, 오베르 쉬르 우아즈


파리에서 일주일 정도 머무는 동안 하루 한 곳의 미술관을 방문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걸작 그림들을 바라보며 압도되는 감정도 좋지만, 무엇보다 프랑스에 직접 와서 이곳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그들이 머물던 자리와 삶을 조금 더 가까이 떠올릴 수 있는 게 너무 좋았다. 그러니 파리에만 머물지 말고 하루 정도 근교로 나가 이 그림들을 남긴 작가의 삶과 그림의 모델을 찾는 여행을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외곽으로 나가기로 한 그날 아침에 일어나니 역시나 날이 잔뜩 흐렸다. 8월, 아직 여름임에도 파리에 머무는 동안 화창한 날을 찾기가 쉽지 않다. 빗방울마저 약간 떨어질 것 같은 이 날, 나는 전날 골라 놓은 두 개의 선택지, 즉 모네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와 고흐가 자신의 마지막 70일가량을 불꽃같이 살았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 중 이 날씨와 어울릴 법한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이곳에 가는 여정을 함께 하기 위해 극단 사람 두 분을 섭외했다. 프랑스 남부의 어느 페스티벌에서 무대를 올린 후 귀국길에 파리에 들러 여행 중인 내 옆 방 이웃들이다. 로마에서 오페라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 더 마음이 통했던 이들 중 한 분은 나와 동갑인 배우, 다른 한 분은 조명 디자이너이다. 기차를 타고 가는 한 시간여의 시간 동안 두 분과 함께 연극에 대해서, 음악에 대해서, 또 사는 이야기까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눴다. 다른 듯 닮은 사람들과의 행복한 소통이 이이역만리에서 이어진 것이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우아즈 강 위의 오베르) 기차역에 내려 주변을 살폈다. 아, 정말 시골이다. 정신없는 파리에서 갓 빠져나와서인지 너무나 조용하고 적막하고, 작은 마을인 것이 당연하면서도 새삼스럽다. 우선 우리는 근처 빵집에 들러 나중에 먹을 오늘의 양식을 먼저 챙겼다. 내 팔 만큼 긴 바게트 빵에 내용물을 꽉 채워 만든 샌드위치 하나가 3유로 정도밖에 되지 않아 놀랍다. 세 사람이 나눠먹어도 족한 크기인데 말이다. 파리의 살인적인 물가와 정말 큰 차이다.


큰길에 나가 동네를 살피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발견한 건 이 도시의 시청 건물. 바로 엊그제 오르세 미술관에서 이곳을 그린 그림을 만나고 온 지라 반갑기 그지없다. 시청 앞에는 푯말이 하나 서 있는데, 이곳을 그린 고흐의 그림을 사진으로 붙여 놓고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 놓아, 방문한 사람들이 그의 그림과 그 배경이 된 실제 장소를 잘 비교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나중에 보니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한 장소는 모두 이렇게 되어 있었다. 과연 고흐가 살던 동네가 맞구나.




고흐가 그의 마지막 70일을 살다 떠난 작은 여인숙은 현재 그의 이름으로 된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가 살던 방에 올라가 보니 지금 보아도 참 초라하고 쓸쓸하다. 빛이 드물게 드는 방에는 고흐가 살던 때의 최소한의 가구가 놓여 있는 가운데, 한쪽에 있는 의자에 잠시 앉아 그 외로움과 고통에 공감하고 있자니 동행이 마치 고흐의 피사체인 양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 주신다.




이곳에 사는 동안 하루에 하나 꼴로 작품을 완성했을 정도로 엄청난 창작욕을 불태웠던 고흐는 스스로 이성이 반쯤 망가질 정도로 그림에 생명을 걸었노라고 했었다. 그런 그의 그림이 한동안 이곳 닭장막이용으로 사용될 정도였다니, 후세에 수억의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칭송할지언정, 그의 열정적 삶은 참 쓸쓸하기 짝이 없다. 왠지 나의 사랑이 미안하기까지 한.


아래층으로 내려가서는 이곳에서의 고흐의 마지막 삶을 정리한 짧은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어두운 공간에 자리 잡고 앉아 그 영상을 보는데,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 영상의 배경 음악은 마침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말년의 작품 <네 개의 마지막 노래(Vier Letzte Lieder)>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잠자리에 들 때(Beim Schlafengehen)”. 이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인데, 여기서 잠은 죽음을 빗대어 쓴 표현이라 더 각별하게 와닿는다.


https://youtu.be/bguGiPx9_8c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잠자리에 들 때(Beim Schlafengehen)>


이제 낮은 날 지치게 하니,
내 간절한 열망은 마치
지친 어린아이처럼
별밤에 다정히 품어져야 하리.

손들아, 모든 하던 일 멈춰라,
머리야, 네 모든 생각 잊어라.
내 모든 감각은 이제
잠으로 침잠할 것이니.

그러면 지키는 이 없는 내 영혼은
자유로운 날개로 날아다니리니,
밤의 마법의 궤도 안에서
깊은 억겁의 삶 살아내기 위해.
(헤르만 헤세, 미르텐 역)


앞으로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고흐를 떠올릴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아련한 마음을 안고 박물관을 나섰다. 다시 오르셰에서 만난 그림 중 인상 깊었던 작품 속 작은 교회에 들러 보기도 하고, 너른 들판을 거닐기도 하면서 고흐가 마지막으로 가졌을 생각을 떠올린다. 이날 내 머리 위를 떠도는 구름이 그렇게 무겁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그보다는 고흐의 마음이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랄지.




고흐는 이곳에서 그린 밀밭 그림에 대해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혼란스러운 하늘 아래 펼쳐진 거대한 밀밭 그림이다. 극한의 외로움과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길에서 벗어날 필요는 없겠지. 너도   그림들을   있기를 바란다. 가능한  빨리  그림을 너에게 가져갔으면 한다.  그림들이야 말로 말로   없는  감정을 네게 전해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1890 7)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오래지 않아 이 지상에서의 자신의 길을 벗어나버리고 말았구나. 이제 그 마지막 길을 순례하기 위해 그의 무덤을 찾기로 했다. 파리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대가들의 화려한 묘에 비교하면, 이 작은 마을에 묻힌 고흐의 흔적은 역시나 왜소하다. 너무 작은 비석에는 ‘빈센트 반 고흐 여기서 잠들다’라는 아주 상투적인 문구만 적혀 있을 뿐. 그렇지만 나에게는 어느 누구의 화려한 무덤보다도 가장 큰 감동을 주었다. 그를 죽을 때까지 응원하고 후원하고 사랑한 동생 테오와 함께 묻혀 있으므로. 그것도 어디서부터 형의 무덤이고 어디까지가 동생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이불 덮듯 담쟁이덩굴로 같이 엮어져 있다. 형 빈센트와 다르게 가족이 있었고, 또 파리에서 사망한 테오가 이곳으로 옮겨져서 함께 묻히게 된 건, 아마 고흐 형제를 사랑한 사람들이 그들만의 특별한 형제애를 이해하고 지켜준 것 아니었을까.



비극의 삶에 한 떨기 위로가 되었을까. 두 형제가 나눈 편지가 마음속에 하나둘씩 떠올랐다. 이런 마음으로 파리로 돌아갈 기차를 기다리며 동행과 함께 우아즈 강변에 앉아 이곳을 마음속에 정리하듯 새겨 두었다. 오베르는 삶의 허무를 떠올리게 하는 숙연한 마음을 선사하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예술은 영원하다는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소박하고도 찬란한 마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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