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도착한 이듬해 드디어 연구생 과정을 마치고 석사 1년 차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수해야 할 과목들이 생기고 본격적으로 강의를 수강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대생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공과대학의 디자인코스 전공자로 제품디자인, 환경디자인, 디자인학, 디자인문화 등 여러 세부 전공 중 디자인심리학이라는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었다. 공과대학 특유의 바이브가 흘러넘치는 캠퍼스였다.
토론 수업이라도 있는 날에는 거의 시나리오를 집필이라도 하듯이 내가 해야 할 말들을 써 보며 머릿속에 집어넣었고, 팀별 프로젝트가 있으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1년 차에 필수 이수 학점을 다 채우고 2년 차에는 석사 논문에 집중을 하는 방식으로 석사과정을 보냈는데, 나 또한 1년 차에 되도록 많은 수업을 이수했다. (아마 2년 차에는 수업 한 두 개 더 들었던 것 같다.)
드라마에서는 타국으로 유학을 간 주인공이 그 나라 학생들과 잘 섞이며 호의적인 현지 학생들의 도움으로 그들과 대등하게 학교 생활을 무난하게 잘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스토리 전개였을텐데, 현실은 역시나 달랐다. 팀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현지 학생들이 주도하고 유학생들은 서포트하는 다소 기울어진 모양새로 흘러갔다.
그렇지만 나름 할 수 있는 걸 찾아 부지런히 내 가능성을 시험해 봤던 시기였다. 학교 수업 이외에도 도쿄에 있는 ‘색채디자인연구소’라는 곳에서 여름방학 동안 인턴십을 했다. 색채 관련 주제로 석사논문을 진행할 계획이었던 나는 연구소에 인턴십을 희망한다고 이메일을 보냈고, 다행히 담당자로부터 긍정적인 회신을 받았다. 참 다시 못해볼 귀중한 외국에서의 인턴십 경험이었다 생각한다. 체험형 인턴으로 단기로 진행되었던 인턴십에 나와 일본인 대학생 1명이 참여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일본인 지원자도 많았을 텐데 유학생인 나를 선택해 경험할 기회를 준 것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어쨌거나...
석사과정 1년 차의 시작과 동시에 컨디션은 극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먹어야 힘이 난다며 밥을 먹으려 해도 왜인지 밥 한 숟가락 소화시키기 힘든 위장 탓에 에너지가 채워지기는커녕 고갈되어 갔고, 동시에 피부가 뒤집어지는 게 일상이 되어 트러블이 일어난 얼굴에 연고를 바르며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가야 하는 날이 늘었다. 약을 먹어도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약간의 호전과 재발이 반복되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버텼을까 싶은 나날들이었다.
그래도 성장한 나를 만나고 싶었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얼른 밥벌이를 하고픈 크나큰 열망이 몸과 마음이 고된 석사과정을 끝까지 완주하게 이끌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직 1년 차에 불과했다는 것. 석사학위자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석사학위 따는 게 나에게는 이렇게 힘든 일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남들도 당연히 우여곡절이 있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건데 그때의 나는 생각이 무척이나 짧았다.
어쨌거나…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으니...
석사논문 심사를 통과해야만 하는 만만치 않은 석사 2년 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ㅎ 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