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1년 차에 처음으로 통역이라는 것을 했다.
도쿄에서 진행됐던 산업박람회의 통역이었는데 무슨 자신감에서 했던 걸까?
나는 겁도 없이 통역 지원을 했고 한 업체의 부스 통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LED 패널을 홍보하는 한국 업체 부스에서 일본인 바이어와 업체 사장님 간의 대화를 통역했는데, 처음엔 순조로웠... 다고 생각한다.(나만의 생각이었을 수도...)
그런데...
뭔가 불길했다. 통역을 한다고 했는데 일본인 바이어가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자꾸 갸우뚱거리며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하는 거다. 사장님도 반복되는 질문에 의아해하면서도 비슷한 답변을 했는데... 바이어는 결국 난감한 표정을 한 채 부스를 떠났다.
중간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러기엔 나의 통역 경험은 부족했다.
ㅇㅇㅇ씨~
안내 데스크로 와 주십시오~
나? 엥? 왜?
나를 다른 통역가로 교체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까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리던 바이어가 컴플레인을 넣었던 것 같다.(그 후, 나는 행사 관계자의 수행 통역을 맡게 되었다. 쩝) 새로 교체되어 배치된, 통역을 여러 번 해본 것 같은 그녀는 나를 보며 통역 처음해보는 거냐며 안타까워하는 건지 한심하다 생각하는 건지 모를 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던 것 같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에 이르자 처음으로 겪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몹시 부끄럽기도 해서 눈물이 왈칵 나오려고 하길래 화장실로 달려갔다.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어.
괜찮아.
계속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마음을 다잡고 화장실을 나왔다.
바이어가 같은 질문을 계속한다는 것은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얻지 못한 게 그 이유였을 텐데 그저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에만 급급했던 요령 없는 통역을 했던 거다.
첫 통역에서 제대로 쓴맛을 본 나는 그 뒤로 통역과는 담을 쌓았을까?
아니었다. 그 후로도 한두 번 통역 봉사를 하러 갔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 차례 비슷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킬이 조금씩 늘었던 것 같다. 일본인 직원과 같이 근무했던 첫 직장에서도 일본어를 모르는 우리 팀 과장님과 다른 부서 일본인 직원 간의 미팅을 통역하기도 했다.
당연히 처음에는 서툴지
숙련이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거고
그리고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차츰 알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 집 초등학교 4학년 그녀는 머리로는 알아도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그 어느 지점에서 성장 중인 것 같다.
처음으로 자전거 보조 바퀴를 떼고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할 때,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줄넘기 줄에 발이 걸리지 않게 타이밍에 맞춰 적당한 높이로 뛰려고 애쓸 때, 뜻대로 잘 되지 않으면 제 분을 이기지 못해 짜증이 폭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다 그래.
수십 번, 수백 번 연습해야 늘지~
라고 이 엄마는 뻔하디 뻔한 말을 했다. 그렇지만 감정이 격해져 눈물까지 나오려고 하는 그녀에게 그 말들은 전혀 먹히지 않았으니...(사실… 나도 여전히 머리와 행동이 따로 놀 때가 있...)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얼굴이 벌게지며 씩씩대던 지금도 어리지만 더 어렸던 그녀. 그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통역도 줄넘기도 처음은 다 그렇게 마음 같지 않다. ㅎ 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