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전 유학 관련 시험을 준비하면서부터 달고 살았던 불면증은 유학 기간 내내 이어졌다. 시험을 앞두고는 더 심해진 불면증 탓에 빛에 극도로 예민해지면서 눈 뜨고 무언가를 보는 게 괴로운 시기도 있었다.(안과에도 가봤지만 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어서 안과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한낮에 방에 이불도 깔지 않은 채 눈을 뜨지 못하고 누워있으면 막 대학에 입학해 서울에서 같이 살기 시작한 막내 동생이 다가와 걱정스레 괜찮냐고 물어봤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유학 후, 몸이 본격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한 건 석사 1년 차 하반기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릴 때부터 호전과 재발을 반복했던 만성적인 아토피성 피부염은 타이밍 좋게도 거의 석사과정 2년 내내 극에 치달았고, 없던 햇빛 알레르기가 생겨서는 따가운 여름 햇빛을 쬐기라도 하면 팔 여기저기가 모기에라도 물린 것처럼 부어올랐다. 소화기능도 현저히 떨어지며 밥 한 공기의 반의 반도 소화시킬 수가 없었다.
동네 피부과에서는 약과 연고를 처방받아 임시방편으로 피부를 치료했고, 내과에 가서는 위장조영촬영까지 하며 소화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지 확인했다. 진찰을 했던 의사는 나에게
유학생이세요?
스트레스가 많으셔서 그러신 것 같네요~
라며 소화 기능이 약해진 이유를 두리뭉실하게 설명했다. 특별한 치료약도 없었기에 내 컨디션은 계속 곤두박질쳤다. 피부는 점점 더 악화되어 급기야 눈두덩이가 빨갛게 붓고, 두 뺨과 두피는 군데군데 진물과 딱지들로 뒤덮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는 동안 베개에는 어쩔 수 없이 진물이 묻었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안녕했는지 얼굴부터 확인해야만 하는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악화되는 속도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유학 전 한국에서 다니던 한의원에 가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한국에 도착한 나의 심각한 얼굴 상태를 보자마자 부모님도 한의사도 탄식을 했던 게 생각난다. 어쨌든 이전에는 효과가 있었던 한의원의 연고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받아 들고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떨어진 몸 컨디션을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집 근처 헬스장을 끊었다. 땀도 잘 안나는 체질에다가 수족냉증이 있던 몸인지라 몸의 순환을 위해 6개월은 넘게 꾸준히 운동을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요동치는 몸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몸 상태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해야 했던 나는 잃었던 건강을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되찾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특별한 걸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신기하게도 한국에 돌아오고 두 달 내로 내 몸 상태는 아주 많이 회복되었다.(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갔던 피부과에서 의사가 피부가 완전히 호전되기는 어려울 거라고 호언장담을 해서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그 역시 놀랍게도 좋아졌다.)
얼굴이 여기저기 빨갛게 붓고 진물과 딱지로 가득했던, 수십 장의 셀카 사진들이 나한테는 아직 남아있다.(호전되는 정도를 체크하려고 기록했었다.) 글을 쓰기 전 열어 본 이미지 파일을 보고는 놀랐다. 뒤집어진 얼굴 때문에 꽤나 낙담했을 법도 한데 그 사진 속의 나는 희미하게 희망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어쩌면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때의 나는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견뎌내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토피성 피부염은 싹 사라졌고 불면증 없이 잘 자고 소화기능도 나쁘지 않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생각해 보면 오늘이 행복한 이유는 분명 있다. 단지, 가지지 못한 것 혹은 이런저런 걱정에 온 마음을 빼앗겨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단정 짓는 것일 뿐.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으로 나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
이미 가진 것에 집중하기.
살아있는 오늘에 감사하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기.
몸을 움직이기.(심리학자들은 하나 같이 몸을 움직이라고 합니다. 감정은 마음먹기에 따라 변하는 게 절대로 아니라고요. 운동이든 마실을 나가든 뭐든 활동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마음이 흔들릴 때면 내가 놓친 행복을 다시금 끄집어내어 이만하면 괜찮지 않나라고 나를 다독이며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