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땅노린재의 시시포스
좋아하는 국밥집에서 친구와 저녁을 해결하고 있었다. 맛있는 국밥과 마음 잘 맞는 친구와 있으니 너무나 행복했다. 근데 문뜩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를 보며 엄마가 떠올랐다. 나의 행복은 어머니의 땀과 고통으로부터 나오고 있지 않을까 하고 눈시울이 빨개졌다. 밥 잘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울면 친구가 어색해 할까봐 눈이 뻑뻑해서 충혈됐다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식당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순간 감정이 울컥했다.
충동적이고 쾌락적 유흥을 사는 나를 되돌아보았다. 의식적으로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갑자기 모든 게 죄송해서 되돌아보게 됐다. 되돌아보니 행복과 옳음을 제대로 구별하지 않았다. 마치 당장 행복을 위해 사탕을 왕창 먹고는 이게 행복이라 생각하는 행위와 같았다. 실제로 보면 옳지 않을뿐더러 충동적인 행동일 뿐인데 말이다.
어머니께서 용돈을 주시면 사고 싶은 옷을 사고는 했다. 하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도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니 항상 좋은 물건을 살 수는 없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어릴 때는 돈이 최고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했다.
“다른 애들은 다 나이키 사던데, 나만 없어.”
“친구들 부모님은 컴퓨터 바꿔주던데 엄마는 왜 안 해줘”
지금 생각하면 과거에 나 자신에게 돌아가서 몇 대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효에 충실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정신을 차린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군대에 갓 입대했을 때인 훈련병 시절이었다. 훈련병 시절에는 편지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산다. 군대 내의 소식도 편지로 전하고, 사회의 소식도 편지로 전해 받는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니께 내 소식을 전하고자 주기적으로 편지를 썼었다. 그 중 한 번은 훈련소 내에서 동기끼리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적었다.
“엄마. 잘 지내지. 내 걱정하지 말아. 밥도 잘 나오고, 살도 빠지고 있어. 동기하고도 친해져서 서로 잘 지내 ··· 내 옆에 ○○이는 부모님이 ○○사단 장성하고 친해서 거기 운전병으로 간대. 나도 편한 부대 갔으면 좋겠다 ···”
나는 그렇게 군대를 가서 사람이 돼서 돌아온다고 약속했는데, 무의식 속에 대못을 박았다. 훗날 재건이와 술을 먹다가 이 얘기를 하니까 왜 그랬느냐고 나무랄 정도로 못된 짓이었다. 나는 단순히 대화의 구성을 편지로 옮겼을 뿐이지만 어머니는 밤새 편히 잠을 못 주무셨을 거다. 어머니는 그런 능력이 없어 해주지 못했고, 당신 자신도 그러지 못 해주셨음에 괴로워하셨을 게 분명하다.
효도하기도 어렵지만 불효를 피하기도 어렵구나라고 느꼈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고 어머니께 소식을 전하는 행복을 추구했지만, 실제로는 옳지 않은 행동이었다. 순간순간 행복과 충동적 쾌락을 좇느라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인터넷을 하던 중 내 눈길을 끈 문장이 있다.
“부모님이 재벌이 아니라서, 부모님이 노력을 안 해서 재벌 자식이 되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는 초코우유를 좋아했다. 그래서 가끔 어머니께 초코우유 회사 사장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적은 있었다. 저 문장에서 초코우유 사장님 얘기는 장난에 불과했다.
본인이 재벌이 되려는 게 아니라 부모님의 탓으로 되돌리는 건 비겁하다. 불평불만 한다고 바뀌지는 않는다. 순식간에 재벌이 되는 것도 아니다. 행동해야 바뀐다. 불평등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자신에게 과장되지 않았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학교에서 지원하는 무료급식을 먹는 게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 또한 부끄럽게 생각했고. 가정통신문에 부모님 직업을 적을 때 거짓으로 적은 적도 있고, 이혼한 가정이었지만 이혼하지 않았다고 한 적도 있다. IMF 이후로 이혼이 급증해서 소수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돈이 뭔가 싶었다. 10~20만 원이 뭐기에 이렇게 부끄럽게 살아야 하나. 왜 낙인이 찍힌 거처럼 소심하고 죄인처럼 살아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돈이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마치 유토피아에 살게 될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일확천금에 기대를 걸고 싶지도 않고, 그에 기대며 살고 싶지도 않다. 내 노력과 결실이 정당하게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나도 돈 때문에 비참한 유년,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세상이 불공평하고 불합리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고. 세상은 원래 그러니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그래서 나아가는 과정에서 투쟁과 타협, 노력과 의미가 필요하다고. 당신의 부모님께서 모든 어려운 일 헤쳐감에 있어서, 투쟁과 타협을 하셨고, 온전히 나를 위해 의미를 두고 노력하셨음을 잊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그렇게 나에게 삶의 지식과 철학을 가르치셨음을 알아야 한다. 이기주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시적 허용이라는 변명 하에 써낸 나의 시를 보여주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엄마는 착한 거지다.
내 옷을 뒤지지만 물건을 돌려준다.
엄마는 개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직장에서 돌아오면 현관문으로 마중 나온다.
밝게 웃으며 나의 피로와 짜증을 녹여준다.
이런 엄마를 보다 보면 나도 모든 게 죄송해서
내가 너무 못 나고 이룬 것도 없고
코피가 날 정도로 치열하게 하지 않아서
엄마에게 엄격한 잣대로 모든 걸 탓했기에
단지 세상만을 탓하고 싶어서
엄마 품에 안겨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가장 안정 받고 인정받는 사람 품에
안겨 있을 수 있으니까.
붉은땅노린재는 시시포스처럼 죽을 때까지 일한다. 자식들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몇 시간이나 먹이를 엄선해 갖다 준다. 하지만 자식들은 허기가 졌는데도 먹이를 갖다 주지 않으면 다른 노린재에게 가서 기존의 어미를 버리고 새로운 어미로 선택한다. 새로운 어미는 자식이 늘어 더 열심히 일하다 ‘과로’로 죽는다. 어미의 시체마저도 새끼들에게 먹이가 된다. 이는 부모와 자식 관계에 있어서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던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