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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리터리맘 Mar 01. 2021

6살 딸아이 몸무게가 무려 38kg

( 분유를 잘 못 먹여 토하는 줄도 몰랐던 무식한 엄마 )

한 가정의 첫째 아이로 태어나는 것은 분명한 축복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기다림 속에 찾아온 첫 아이는 모든 가족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을 만한 충분조건이 된다. 우리 집 첫째 아이, 딸(태명 기쁨이)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계획한 임신이 아니어서 당황도 했었지만 나의 분신 1호를 만나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너무나 소중하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지상의 고통 중 가장 크다는 산고의 고통을 잊을 만큼 말이다. 임신 도중 유산의 위험이 있어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면서 지켜온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웬만큼 클 때까지 땅바닥에 누워있거나 혼자 본인의 발로 서 있을 시간조차 없을 만큼 사랑을 독차지했다. 첫 손주를 보신 시부모님도, 첫 조카를 둔 고모나 삼촌도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안아주겠다고 쟁탈전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모든 가족들이 번갈아가며 항상 안고 업고 다니며 땅에 내려놓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18개월이 넘어서야 겨우 제 발로 일어서서 걸을 수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극성맞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혹여나 말을 못 하는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 걱정되어 5살이 될 때까지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직장맘인 저 때문에 양육을 도와주시던 시부모님께서는 주인에게 시중드는 머슴처럼 첫 손주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물이 먹고 싶다는 시늉만 해도 물을 먹여주고, 배 고프다는 말을 할 찰나도 없이 먹을 것을 주었다. 나 또한 함께 있는 동안에는 눈을 띄지 않았고, 놀이터를 가도 키즈카페를 가도 피곤한 몸에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헌신적으로 놀아주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자녀는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과 사회성도 좋고 훌륭한 사람으로 커갈 것이라는 막연함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애정을 쏟았다.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나만큼 희생적으로 눈높이를 맞추어 자녀와 놀아주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말도 할 줄 알고 걷고 뛰고를 자유롭게 할 때쯤 기쁨이를 유치원에 보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걱정거리가 찾아왔다. 그렇게 애정을 쏟은 아이가 친구나 선생님께 자기 의사표현을 잘하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함께 노는 방법도 모르는 듯했다. '온 가족이 그렇게 애정을 쏟았는데, 아이가 왜 이러지?'라는 의문이 생겼지만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아이가 너무 소극적이고, 심지어는 적응력이 떨어져 보였다. 저러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거나 폭력을 당하는 건 아닌지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고민 끝에 내가 직접 친구를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고, 집을 방문한 아이에게 몰래 용돈까지 주어가며 기쁨이와 친하게 지내 달라고 부탁했다. 억지로라도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성격이 다소 남자 같은 친구를 찾아 같이 놀게도 하면서 조금은 당찬 성격으로 변해가기를 바랐다.


그래도 큰 우려와는 달리 기쁨 이의 순하고 착한 성격을 친구들이 좋아해 주었다. 물론 기쁨 이가 여러 친구보다는 단짝 친구 몇몇을 유난히 좋아하는 성향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잘 적응하는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내 성격도 만만하지 않고, 아빠도 마찬가지인데 소심해 보이는 성격을 가진 아이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고 화가 나기도 했었다. 물론 첫째 아이의 이러한 성격으로 인한 고민은 우리 집 만의 것은 아니었다. 주변 많은 집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하나같이 별난 동생한테 치이는 형, 누나라며 성토를 하고 있었다.


기쁨이 아래로 남동생 둘이 생기고 세 자녀를 함께 키우면서 깨달았다. 기쁨이의 이러한 성격이 모두 준비가 미흡하고 무지한 엄마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것을.. 물론 기쁨이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성격도 있고, 군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잦은 전학도 이유라면 이유이겠지만 그것보다 아이를 양육하는 방법을 제대로 몰랐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집안의 첫째 아이가 가진 특권일지 모를 과하다 싶은 사랑을 받으면서 굳이 말로 하는 수고로움이 없어도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외삼촌 등 수많은 어른들이 알아서 다 해주다 보니 후천적으로 생긴 성격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첫째 아이는 미숙한 엄마, 아빠의 온갖 실수를 받아내면서 성장한다. 분유량 비율을 틀려 점성이 높아진 분유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잘 먹여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아이가 소화할 수 없는 양의 음식을 먹여 자주 토하는 아이를 보면서도 '이유를 찾으려는 노력은커녕, 원래 잘 토하는 아이인가 보다' 하며 토하고 나면 또 배가 고플 것 같아 다시 먹이기를 반복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통통해져 갔다. 옛날 어르신 말씀처럼 엄마 젖이 좋아서 그런가 하기도 하고, 토실토실한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걸 내 마음대로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자고로 아이는 잘 먹고 통통하게 커야 한다며 수시로 먹을 것을 주었다. 아이는 많이 먹어 토하면서도 어른들이 주는 음식을 모두 먹으려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자신의 잘 먹는 모습을 좋아하는 어른들을 의식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유치원을 가게 되면서 그제야 또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쁨이는 심한 과체중이었다. 여자 아이지만 또래 남자아이보다 체격이 크고 체중이 많이 나갔고, 그러다 보니 발표회 등에서 무거운 악기(북 등)를 도맡아 들고 연주를 했다. 그냥 잘 크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우리 아이는 그냥 비만도 아닌 고도비만이 되어 있었다. 


6살 딸아이 몸무게가 38Kg, 또래 아이들보다 두배나 많이 나가는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더 살이 찌면 조숙증이 오고 성장이 멈출 수도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왜 한 번도 문제의식 있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무서운 생각에 눈물이 났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무조건 체중을 줄여야 한다. 적게 먹고, 운동하고.. 너무 쉬운 공식인데 6살 아이에게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위장 때문에 배는 계속 고플 테고, 아이에게 무조건 먹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라고 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딸아이도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고, 할 수 있겠냐는 나의 질문에 할 수 있다고 했다. 본인도 친구들에 비해 큰 몸집의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살을 빼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는 듯했다. 그날부터 밥의 양을 반으로 줄이고, 하루 2시간 이상씩 자전거를 타게 하고 달리기를 하며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시부모님이, 주말에는 내가 맡았다. 기쁨이와 바로 밑 동생은 스스로 자전거를 타지만 어린 막내는 어른이 끌어주는 자전거를 태워야 했기에 나는 호루라기로 자전거 탄 아이들을 통제하며 계속 뛰다시피 하면서 막내를 끌고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군인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이다 보니 대다수가 아는 사람들이어서 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억척스럽게 세 아이 운동시키는 엄마로... 일반 여성들에 비해 체력이 좋은 군인이다 보니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이후로도 산책, 달리기, 축구, 태권도 등 온갖 종류의 것들로 몸을 움직이게 했다. 그렇게 최근까지 함께 운동하기를 이어왔고, 지금은 등산을 좋아하시는 친정엄마에게 양육을 받고 있다 보니 할머니 손에 이끌려 산에 오른다. 물론 지금도 먹는 것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이지만 표준체중이고 내 눈엔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이다. 


아찔한 순간들을 때때로 겪어온 내가 내린 결론은 자녀의 모습은 부모 행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라는 과업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도 해야 하고, 아이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냥 바쁜 일상에서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살아가더라도 시간은 흘러가고 아이는 자라난다. 하지만 홀로서기가 가능한 완전한 성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아이를 양육하면서 겪은 실패와 부족함을 교훈 삼아 둘째, 셋째는 나름대로 원칙을 가지고 양육을 하고 있다.


양육에 있어 정답은 없지만,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준비가 필요하다. 즉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를 할 시간과 여력도 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주변을 둘러보기라도 하면서 귀와 눈을 열어 듣고 보고 배워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라는 것이 주변과 잘하고 못하고를 비교하라는 것이 아니라, 비추어 보면서 반성하고 배우고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나와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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