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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리터리맘 Jan 26. 2021

이사전쟁,첫째 아이 초등학교 4번 전학

( 왕따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 )

군인가족들의 대표적인 고충 중 하나가 이사가 잦다는 것이다. 남들은 평생 살면서 1~2번 할까 말까 하는 것이 이사인데, 장교들은 통상적으로 1~2년이면 보직을 옮겨야 하고 그럴 때마다 이사를 한다. 나 또한 군 생활 20여 년간 10번 넘게 이사를 한 것 같다. 독신일 때는 이사가 그리 어렵거나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이 생기고 나니 보통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다음 보직이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면 이사를 가기 전 휴가를 내어 해당 지역을 먼저 찾아간다. 사전 검색해 놓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꼼꼼히 살펴보고 장단점을 종합한다. 물론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모든 곳에 지원서를 넣어야 한다. 원서만 넣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선발 투표 결과도 지켜봐야 하고 만약 자리가 없다면 지속적으로 전화를 하면서 도와 달라고 요청을 해야 한다. 


출산율이 낮다는데 왜 항상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자리는 부족한지 의문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 오히려 이사 가면서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주소지를 옮기면 자동적으로 학교 배정이 된다. 하지만 학교 입학 전에는 그나마도 엄마들 사이에 평가가 좋은 유치원을 보내기 위해 정보전쟁을 치르고 입학 원서를 넣기 위해 밤새워 줄을 서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다자녀 모두를 옮겨가야 하다 보니 상황은 더욱 어려웠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모두가 한 곳에 있는 곳을 선택해야 양육을 도와주는 할머니가 덜 복잡하다. 애기들이 다니는 곳이 다르면 등원과 하원 시간이 달라 매일 아침저녁 몇 번씩 나왔다 들어갔다를 해야 하고, 현장학습 등 일정들이 달라 도시락도 몇 번씩 싸야 하고, 무엇보다 엄마 참여 수업 참여를 위해 여러 번 직장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이런 저런 것들을 모두 고려해야 하다 보니 복잡하고 어렵다. 


당시에는 남자 동료들이 부러웠다. 육아와 이사같은 일은 와이프가 알아서 다 해주니 신경 쓸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여군들이 가끔씩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나도 남편 말고 마누라 있으면 좋겠다’고… 엄마인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 직장도 가정도..  


또 한 가지 자녀가 많다 보니 집도 가능한 1층으로 이사를 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애기들이 뛰어서 아랫집에 피해를 주어 얼굴을 붉힐 일이 생길 수 있어서였다. 소음방지 매트를 2~3겹씩 깔고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더라도 애기들이 내는 기본적인 소음이 있다. 그러다 보니 1층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관사가 오래되고 낡아 대다수가 1층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1층에서 사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습하여 벌레도 많이 나오는 환경이 좋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주로 1층에서만 살았다. 


시간이 흘러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갔고 자녀들이 친구를 알아가면서 이사를 꺼려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유로 군인들이 가족들과 별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사와 전학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을 하면  자연스럽게 정착을 하려 하고 군인인 아빠나 엄마가 혼자서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다. 난 애기들과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 무조건 함께 다니자고 했고, 그러다 보니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를 4번 전학하는 상황이 생겼다. 


첫째 아이는 그런 상황에서도 큰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없다. 순하고 착한 성품 때문이라고 생각했었고, 엄마의 직장으로 인한 것이니 당연히 이해하고 있으리라 짐작했었다. 하지만 둘째, 셋째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이사를 하게 되자 ‘친구들이 있어서 가기 싫다’는 것이다. 첫째 아이가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아 항상 가슴 한편에 다행이다 싶었던 말이었는데 드디어 나오고야 말았다.  


나는 자녀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엄마는 군인이고, 군인은 직장을 자주 옮겨야 해서 미안하지만 이사를 해야 해. 너희들이 친구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것은 이해하지만 친구 때문에 엄마와 떨어져 살 수 있어?”라며 협박인지 모를 회유를 해야 했다. 대신 친구들과 자주 연락을 하고 시간이 되면 휴가를 내어서 꼭 보러 오자는 약속을 했다.


약속대로 이사 후 휴가를 내어 아이들의 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다자녀이다 보니 아이 친구들과 일정을 모두 맞추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간신히 시간을 맞추고 자녀 친구들의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집을 찾아다니며 모두 픽업을 한 후 놀이공원 같은 곳으로 데려가 끼리끼리 놀 수 있게 했다. 이것도 보통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를 자주 할 수는 없는 상황을 아는지 아이들도 친구들 보러 가자는 말을 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 생활에 적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아이들에게 “친구 몇 명 사귀었니?”라고 물었는데, 아이들이 “친구들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그리고 또 이사할 텐데 안 사귈래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또래와의 관계 형성도 매우 중요한데 이것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마음속에 아쉬운 마음은 다 있었던 것이다.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성인이 되어 사회성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아이들이 좀 더 크면서 묵직한 얘기들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본인들도 양보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군인이라는 엄마의 직업과 엄마와 함께 있으려면 이사와 전학은 감당해야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10번 남짓한 이사를 하면서 왕따를 당한 적도 있고 외톨이로 지낸 적도 있었지만 잘 적응하고 쑥쑥 커준 아이들에게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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