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가는 날

by 나르는꿈

2025년 4월 23일 수요일

새벽에 창 너머 하현달을 보고 감탄 한 날

남편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요양원으로 향했다

5월의 빼곡한 일정들을 앞두고 일 없는 날이면 건강보험공단과 지역보건소 치매안심센터를 다니며 서류를 만들어 5등급이던 치매등급을 년수가 되어 4등급으로 전환시켰다고 했다

주위에서 소개받은 요양원들을 방문해 보고 상담도 받아보고는 강화에 있는 시이모님이 계신 요양원이 제일 나은 거 같아 결정했다고 했다

시어머니의 셋째 여동생인 시이모님은 육십 중반 즈음의 이른 나이에 요양원에 입원했었다

벌써 몇 해가 지났는데 처음 뵈러 갔을 때는 너무 안타까워 눈물이 났었다 시어머니의 형제 중 키도 크고 제일 이쁜 멋쟁이였는데 멀쩡해 보이는데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아직 젊고 이쁜데 어떡하나 긴 세월 어떡하나 아득하게 여겨졌었다


요양원을 결정하고 나니 시어머니가 어떻게 적응할지가 남편은 걱정이었다 이모님이 계셔서 낫지 않겠냐는 희망도 품었다

나는 그것은 걱정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런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성격상 오래전 본 기억도 가물한 여동생이 있다고 특별히 도움 될 것 같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공주과다 자신을 받들어주고 불편함 없이 돌봐주면 빠르게 적응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몸을 끔찍이 위하는 시어머니는 눈치가 빠르다

그만큼 적응도 빠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원 측에서 기본 속옷과 두어 벌의 일상복을 준비하란다 요양원을 알아보고 결정하는 데에 나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ㅡ생각해 보면 이 집에서 나의 의견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ㅡ

지금은 나의 의지로 그럴 마음이 조금도 나지 않았다

패키지 백에 옷가지를 챙기는데 자꾸만 손끝이 오그라들었다 머뭇거려졌다

이게 맞는 건가? 내손으로 이런 거 하기 싫었다

신나고 좋은 건 다 지들이 하고 왜 나는 이런 담당일까 싶다


치매기가 있으면서 시어머니는 바깥나들이를 극도로 꺼렸다 남편과 함께 하지 않으면 꿈쩍도 안 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남편은 요양원에 두고 혼자 나올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같이 간다고 떼를 쓰면 어떡하나 이런저런 걱정들을 하는데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시어머니는ㅡ

병원에 링거 영양제 맞으러 가자는 말에 시어머니는 잊지 않고 애기소리로 한번 뺀다

ㅡ내가 이제 그런 거 맞아 뭐 해ᆢㅡ

몸은 옷을 챙겨 입고 지팡이를 짚고 나선다

나는 동행하지 않았다

그즈음 나는 치매의 시어머니보다 남편의 형제들에 대한 분노를 감당하고 있었다

치매는 나 보고만 잘하라고 하고 내가 간병을 한다고 괜찮아지는 병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내가 더 잘할 마음도 없고 힘도 없다 하기 싫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만하자고 이혼이라는 단어를 또렷이 발음했다

처음 이혼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에는 무거운 돌덩이 같았는데 처음이 어렵지 뱉어내고 나니 후련했다

시집식구들 보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


요양원이 있는 강화는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다

늦은 아침을 함께 하고 시어머니와 나간 남편은 늦은 오후 혼자 돌아왔다

조금 허탈한 표정이었다

요양원서 같이 앉아 이야기하다가 요양원의 상담사가

자연스레 화장실 가듯 하라고 해서 화장실 다녀올게 하고 나왔다고 했다

혹시 떼를 쓸까 봐 대문 밖에서 삼십여분 대기하다 왔단다 전화가 올까 봐 긴장하며 기다리다 늦은 저녁

요양원으로 전화를 했더니 시이모님과 이인실에서 조용히 잘 계신다고 식사도 다 드셨다면서 걱정 없다고 식사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전송해 주었다

남편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소주잔을 들었다


껄끄럽고 어렵고 불편하게만 여겨지던 요양원 입원이 이렇게 간결하게 수월(?)하게 진행되다니

결론이 이게 아닌데

무거웠던 사십 년의 수발이 이렇게 마무리되다니

사십 년의 인생이 이렇게 엎어 지다니


진작에 엎어져야 할 뒤웅박이 안이 곪아져 쪽박이 되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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