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금 혹은 노잣돈?

by 나르는꿈

시어머니의 방에 벽장이 있다.

여름이 오면 선풍기를 꺼내고 겨울이면 다시 넣어두기 위해 일 년에 두어 번 시어머니의 방에 들어간다 드물게 시어머니가 아파서 밥상을 따로 차려야 할 때 빼고는 그 방에 들어갈 일이 없었다.

옷장과 서랍장 그리고 TV가 있는 작은방에 보온 매트 위에 앉아 시어머니는 온 계절을 담고 있었다.

네모 반듯이 접은 하얀 걸레는 언제나 먼지와 대기 중이었다 그 방의 문턱은 칠이 벗겨져 나무의 결이 드러나게 닦고 또 닦았다.


여든아홉에 척추협착증 수술을 받고 몸은 안정을 되찾았는데 섬망증인가 했었던 정신은 길을 잃고 치매로 이어지면서 자신의 방은 더욱 굳건하게 지켰었다. 잘 때는 방문을 잠그고 그 앞에 물건들을 쌓아놓았다 잠든 사이 도둑이 들어온다면서,

삼십 년을 지키던 방주인이 떠난 날 편할 수 없는 마음은 한편으로 밀어 넣고 방 정리를 하다가 옷장 위의 오래된 큼직한 박스를 내렸더니 그 밑에 빛바랜 흰 봉투가 있었다. 박스에는 칠순잔치때 해드린 수의가 들어있었다.

빛바랜 봉투 안에는 오래된 큼직한 만 원권이 열 장 있었다.

옷장은 높아서 상자가 천장에 닿아 있었다.

키도 작으신 분이 의자 대고 까치발 하며 저 돈봉투를 두었다, 생각하니 배신감이 먼저 들었다.

족히 이십 년은 넘었다는 거다.

그즈음이면 대학 다니는 나의 두 아들에 나는 연체이자 내지 않기 위해 한 달을 살아내고 있던 때이다.

수의함밑에 빛바랜 돈봉투가 비상금이었다면 칸칸이 서랍도 많은데 누구도 함부로 들어오지 않는 방에 무어 그리 힘들게 높이 숨기셨는지,

노잣돈이라면 당신의 자식들 뒤치다꺼리하느라 바둥거릴 때 당신은 죽어서의 여유까지 걱정이 되셨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돈의 액수가 아니고 마음의 무게에 원망스러웠다.


돈이 무섭게 여겨진 건 처음이었다.

내가 돈을 마다하고 던져버린 적도 처음이었다.


다섯칸의 서랍장에는 당신의 성격대로 반듯이 가지런히 제각기의 품목에 따라 정리정돈 되어있었는데 훔쳐갔다고 몰아 세우던 속옷들이 깊숙히 개켜져 있었다 없어졌다면서도 서랍을 열어보게도 못하게 하여서 그럴때마다 사다드린 속옷이 속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쪽박은 금이가고 그렇게 새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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