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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 Aug 28. 2021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불확실성에 맞서는 살아가는 법

지적이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소설이다. 결말은 예상과 전혀 달랐지만 마음에 들었고, 마음에 든 만큼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다. 조미료가 너무 들어간 "과일케이크 fruitcake" 소설들을 많이 봐서 그런가? 굳이 이 작품 자체에 아쉬움에 대한 책임을 묻자면, 경쾌하고 세련된 플롯에 대한 강박으로 인해 등장인물에 대한 입체적 접근이 일부 희생된 게 아닌지? 그래도 뭐 이정도면 수작이지.  


고교시절의 단짝 친구 에이드리언이 자살한다. 촉망받는 수재이자 진중한 철학자였던 그의 죽음 이후에도 주인공 앤서니는 자신의 평탄한 삶을 이어나간다. 먼 훗날, 불완전한 문서와 불확실한 기억 사이에서 피어오른 의혹들이 새로운 확신으로 승화되어 고통스러운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과거 또한 미래만큼이나 불확실한 것이다. 적어도 두 층위에서 그러하다. 사실의 층위와 의미의 층위. 모두 해석의 문제다. 아, 각 층위 요소간 관계의 복잡성으로 인해 과거는 미래보다 더 불확실하고 오히려 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여 인지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래에 대해서는 운명의 지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과거에 대해 "팩트"의 지위를 인정하듯. 사실 나도 그런 축에 속한다. 다만 강한 운명론자와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나는 운명이 팩트만큼 무겁다고 생각한다기보다는 팩트가 운명만큼은 가볍다고 생각하여 둘 사이의 무게를 맞추는 입장이란 것이지.  


이 작품에서 앤서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미래보다는 과거의 불확실성에 휘둘리며 불안에 떨어야하는 존재이리라. 미래 어느 순간 당신의 작은 선택이 과거의 모든 사적 "팩트"를 갱신하여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당신의 작은 선택이 미래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꿔놓듯이. 기독교적 구원 또한 어쩌면 이런 인간 조건에 대한 알레고리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순간 회개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죽음 직전의 득도. 다 같은 이야기겠지. 나아가 진정한 회개는 사실 마지막 순간에나 가능한 법.  


그러니 난 아직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에 휘둘릴 때다. 회개따윈 나중에 하자구. 기껏해야 미래의 내가 과거를 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긍정할 수 있을 만한 조건들을 갖추어 나가기에 유리한 선택들을 지금부터 쌓아나가는 정도가 가능하겠지. 근데 누적이 되긴 하는 걸까? 미래의 내가 회한에 빠질지, 아니면 나른한 행복감에 빠져 생을 마감하게 될지 지금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계속 이야기한 바지만 무려 세 개의 난관이 있다고. 우선 미래의 운명을 알 수 없고, 미래 시점에서 내가 인지하는 과거의 팩트를 알 수 없고, 그에 따라 내가 내 과거의 삶 전반에 대해 갖게 될 감상 또한 알 수 없으니.  


결국 내가   있는 일은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하지만 진지하게 살아가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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