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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 Sep 19. 2021

유지니아 - 온다 리쿠

모순적 진술들이 드러내는 진실

이 소설은 아예 처음부터 유력한 용의자 H를 이야기의 전면에 드러낸다. 때론 1인칭 시점의 인터뷰 형식을 빌어 때론 3인칭 시점에서 재현한 기억의 형식을 빌어, 고정된 화자 없이 긴박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H의 범행 동기, 수단, 그리고 개입의 정도에 대한 진실을 추적하게 되지만 사람들의 증언이 미묘하게 서로 모순되며 어딘가 딱 들어맞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애초에 이 책의 첫장과 마지막장의 존재부터가 서로 모순이다. **와 이야기를 나눈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외에도 몇 가지 모순점들이 존재한다. ***가 왜 떨어져 있었단 말인가(시간상 모순) 등등 또한 수많은 '쓰레기' 정보도 제공된다. 그것이 쓰레기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지만. 


와세다 교육학부를 나왔다는 온다 리쿠는 머리가 좋은 것 같다. 그녀는 H의 개입 정도와 관련된 진실을 스펙트럼의 형태로 제시하며 그 어떤 지점도 진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소설을 읽다보면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는데 이것이 정확히 온다 리쿠가 의도한 바다. 그것을 위해 그녀는 사건에 대한 증언들을 미묘하게 비틀어 놓는 것이다. 그 결과 독자들은 '진상'에 매몰되지 않고 작품 내 등장하는 개성적인 인물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여유를 지닐 수 있게 된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검은 불안, 하얀 노스탤지어, 푸른 절망, 이 모두는 바다로부터 온 것들이다. 파도가 멎는 고요의 순간, 세상이 사라지고 천사가 내려온다.    



이하 심각한 스포일러


















이 작품은 자기지시적 알레고리로 가득하다. 마키코의 둘째 오빠를 자살로 몰아넣은 사건, 보이지 않는 사람, 꿈이 찾아드는 길, 두 개의 강과 한 개의 언덕... 이 모두가 H와 남자의 관계, 그리고 살인사건의 가장 비극적인 '진상'에 대한 우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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