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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 Aug 28. 2021

[모든 것이 F가 된다] 스토리 해석

유추적 등가교환과 객체화가 낳은 비극

모든 것이 F가 된다.

흥미진진한 괴작이다. 공돌이를 위한 미스터리라기에 손색이 없다. 하룻밤 새 다 읽어치웠네.

결말은 꽤나 충격적이다. 트릭은 사실 복잡할 게 없는데 전산학 기초를 알면 좀 더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다. 허나 공대 지식이 없어서 이해가 안 된다는 놈들은 이해가 안 된다.

작가는 어느 정도 일부러 의도한 듯하지만, 가장 의아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살인동기이리라. 허나 범인의 심리를 찬찬히 헤아려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해석을 시도해보자. 





경고!!! 이하 심각한 스포일러














시키 박사는 천재다. 동시에 부모를 '살해했다는'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2차 살인의 원초적 동기는 자기징벌이지만 박사의 천재적 두뇌는 세 가지 무의식적 전략을 통해 이를 은폐한다. 첫째, 다중인격이다. 사실 부모의 진정한 살해자는 시키 자신의 삼촌이자 연인인 신도 소장이다. 시키는 조종당했다고도 볼 수 있고 수동적 공범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키는 외부의 인격을 내투사하는 습관을 통해 자신을 객체화하고 의식적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난다. 둘째, 삶의 가치 부정. 이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된다. 살인을 심각한 악행으로 여기고 싶지 않아하는 욕망의 발현이다. 마지막으로 이게 가장 중요한데, 바로 등가교환을 윤리적 법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살인이 정당화된다.


시키의 딸이 시키와 신도를 살해하고 탈출하는 시나리오에서는 객관적 시점에서 등가교환이 일어난다. 부모를 살해한 딸 부부가 다시 자신들의 딸에 의해 살해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깔끔하다. 하지만 이런 미친 계획을 15살 먹은 딸이 수용할 리가 없다. 때문에 이 시나리오는 배제된다.


관점을 좀 더 주관적으로 설정하면 다음 시나리오가 나온다. 과거 근친상간에 의해 맺어진 연인과, 뱃속의 딸을 지키기 위해 부모를 살해했다. 그렇다면 부모와 인연을 맺은 기간만큼 시간이 지난 뒤 살인의 원인이 되었던 연인과 딸을 다시 살해하는 것은 역시 등가교환이다. 시키는 이 차선책을 실행한다. 다만 이는 덜 직접적이고 보다 유추적인 등가교환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를 택함으로써 외로운 것은 시키의 딸이 아니라 시키 본인이 되었다. 십진법의 7이 십육진법에서의 B와 D에게 고독한 정수의 자리를 내어주듯.


결국 어떤 의미에선 더욱 잔혹한 자기징벌이 되었으나 시키의 의식에선 등가교환일 뿐이다. 딸~인형과 동일시되던 미치루가 사라짐으로써 등가교환은 완성된다.


유추적 등가교환과 객체화의 중요성은 소설 서두의 인용문 등을 통해 수차례 암시되고 있다. 이 소설의 범인이 지닌 살해동기는 범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천재 소시오패스가 지닌 정신병적 욕망의 내적 논리를 나름 정교하게 설정하여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탁월함이 엿보인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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