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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 Sep 10. 2021

오버로드 Overlord (약스포 포함)

이세계 먼치킨물의 한계를 돌파하는 법


이세계 먼치킨물이다. 즉, 현실세계와 다른 세계로 전이된 주인공이 초월적인 힘을 얻게 된다는 설정으로부터 시작하는 환타지물. 케이블TV 애니 월정액 가입한 뒤 재미있게 본 작품들 중 상당수가 이세계 먼치킨물이었다. 나름 유행인 건가?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이하, '전생슬')>,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이하, '리제로')>,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이하 '부기팝')>, 그리고 오늘 논할 작품 < 오버로드>까지.


이세계 먼치킨물이 직면하는 두 가지 큰 난점이 있다.


1. 주인공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기 어렵다.

2. 부족한 게 없는 주인공에게 그럴싸한 동기를 부여하기 어렵다.


1번은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이세계 먼치킨물에서는 대개 주인공이 1화부터 만렙을 찍고 시작하기 때문에, 적들이 "어 좆밥인 줄 알았는데 엄청난 놈이었구나"라고 놀라거나 혹은 반대로 주인공이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지롱"하고 숨겨진 힘을 드러내며 상식을 초월한 일들을 행하는 걸 바라보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힘을 갈무리하고 있던 절대 고수의 위엄, 뭐 그런 클리셰.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대적할 자가 없는 주인공은 위기 상황에 빠지기 어렵기 때문에 이야기가 지루해지기 쉽다. 2번은 더 심각한 문제다. 딱히 아쉬운 게 없는 주인공은 강렬한 욕망을 품기도 어렵다. 만약 어떤 욕망이 생긴다면 그냥 그걸 실현하면 되니까. 이래서야 스토리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무소불위의 주인공에게 어떻게 위기(=외적 결여)와 욕망(=내적 결여)을 만들어줄 것인가, 그것이 핵심이다.


즉, 1번과 2번은 사실 동일한 문제의 두 측면일 수 있다. 어떻게 무소불위한 주인공에게 '결여'를 부여할 것인가?


물론 이러한 난점은 이야기 초반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딴은 '이세계'니까 아무리 강한 주인공이라도 상황을 파악하고 바뀐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 얻은 자신의 강력한 힘에도 적응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앞서 말한 근본 문제의 발현이 어느 정도 유예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준비운동만 할 순 없는 거잖아? 결국 어떻게든 노선을 정해야 한다. 몇 가지 전형적인 전략이 있다.


1-A. 주인공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만들어준다.

1-B. 주인공에게 힘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1-C. 다른 먼치킨을 적으로 등장시킨다.


2-A. 주인공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하게 만든다.

2-B. 사랑을 하게 만든다. (=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게 만든다)

2-C. 중요 정보를 제한한다.


1-A는 쉽지만 너무 뻔하다. 그리고 엄밀한 의미에서 먼치킨이 아니게 되어 절대적 힘을 휘두르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감소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도 적당한 타협점이긴 하다. 고전적인 예로 아킬레우스를 들 수 있겠다. 파트로클레스의 죽음을 구실로 시간을 끌어봤지만 결국 작가는 아킬레우스를 전장에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놈이 다 썰고 다녀서 재미가 없을 테니, 치명적인 약점, 아킬레스 건을 설정해둔 거지.


약점을 설정해두면 동료 확보의 당위성도 생긴다. 하지만 법사 전사 도적 사제, 뭐 이런 식으로 파티 짜서 돌아다녀야 한다면 역시 먼치킨 플레이의 맛이 나지 않는다. 원맨아미가 진정한 먼치킨 아니겠는가? 즉 1-A 전략을 선택하면 극적 긴장감을 위해 먼치킨의 정체성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전생슬>의 주인공은 사실상 무적이지만 마력을 많이 소모하면 잠이 든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주변에 늘 잠든 주인공을 안아줄 젖 큰 미녀들이 대기중. 근데 이건 치명적 약점이라기보다는 그냥 예의상 약점도 하나 넣어준 느낌이랄까.


1-B는 보다 세련된 방법이다. 주인공의 절대적 파워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대신 다른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리제로>는 1-A와 1-B, 2-C를 적절하게 조합하여 잘 짜여진 스토리를 뽑아냈다. (좀 지나치긴 했지만) <리제로>의 주인공은 애초에 먼치킨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죽게 되면 자동으로 이전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가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건 사기에 가까운 능력이다. 죽을수록 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영리하게도 주인공에게 그럴싸한 약점을 부여하여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이전 리뷰 참조)

https://brunch.co.kr/@nova-textus/8



1-C는 사실 추천할 만한 방법이 못 된다. 먼치킨 둘이 싸우면 나머지는 다 들러리가 되거든.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그저 두 배로 늘어난다. 바보가 하나에서 둘로 늘어날 뿐인 게지. 바보가 여럿이 되면 요즘의 <드래곤볼>처럼 되는 거고. 손오공은 점점 강해지지만 언제나 더 강한 놈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아직도 싸우고 있다. 아마 영원히 싸우겠지. 무한상승 파워게임.


2-A부터는 내적 결여, 즉 욕망을 부여하는 전략들이다.


2-A 전략을 취하면 개연성을 잃기 쉽다. 애초에 찐따였던 주인공이 이세계로 넘어와서 절대적 힘을 얻게 되었는데 굳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할 이유가 없잖아? 내가 돌아가면 거지고 여기에 남으면 신인데? 게다가 애초에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는 놈이라면 이세계에 스며들기도 어려울 테니 이야기 전개에 여러 가지로 무리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를 1화로 종료시킬 수는 없을 테니, 집에 가고 싶어하는 놈이 집에 못가는 이유를 계속 만들어내야 할 텐데 어느 정도까지는 2-C 전략으로 버틸 수 있겠지만 결국 한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관객들이 '쟤 사실 엄청 멍청하거나 약한 거 아냐?'라는 의심을 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B는 역시 강력한 전략이다. 어떤 장르든 사랑은 먹힌다! 하지만 자칫 유치해지거나 신파로 흐를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전생슬>은 너무 강한 주인공에게 "모두를 지키고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다"라는 욕망을 부여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결국 동료들이 주인공의 발목을 잡는 존재로 전락해버린 느낌이 있다. <리제로>도 2기 이후 사랑놀음을 플롯의 주요 요소로 포함시키면서 이런 함정에 빠진 듯 보인다.


<부기팝>은 굉장히 독특한 먼치킨물이다. 부기팝은 주인공이지만 관찰자의 위치에 있다. 그에겐 우리 세계가 일종의 이세계다. 세계의 적을 처단하기 위해 나타나지만 자기가 언제 누구를 처단할지는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2-C 중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유형.


https://brunch.co.kr/@nova-textus/13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오버로드>는? 앞서 말한 방법들을 부분적으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전략은 따로 있다.


바로 주인공이 이세계로 전이한 먼치킨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적'이라는 설정이다.


'위그드라실'이라는 가상현실 게임을 플레이하던 주인공이 서버 종료일까지 게임에 남아 있다가 게임 세계와 유사한 이세계로 전이되는데, 혼자 가는 게 아니라 길드 npc들이랑 본거지까지 통째로 넘어간다는 스토리. 동료 길드원들은 이미 게임을 떠난 후였지만 대신 npc들에게 자아가 생겨나 주인공을 돕게 된다. (다른 '지고의 존재'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홀로 남은 '지고의 존재'이자 길드장인 주인공을 숭배 )



피카레스크 로망은 이세계 먼치킨물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가?


아 물론 주인공이 무적의 악당이라고 해서 너무 미친놈처럼 막 나가버리면 이야기는 이렇게 막장으로 흘러가겠지.

주인공의 주먹질 한 방으로...허나 지구도 사라졌다는 게 함정



하지만 <오버로드>에서는 주인공의 '인간성 상실'이 절대적 힘의 대가라는 점에서 개연성이 확보될 뿐 아니라 (인간이 아닌 몬스터이기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강한 것. 물론 만렙 찍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전제로 피해자들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스토리가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주인공에 맞서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과 불안에서 비롯된 긴장감;;;


게다가 주인공이 언데드로서의 삶에 익숙해질수록 그의 비인간성과 사악함은 점점 강화되기에,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내적 갈등 또한 점점 심화될 수밖에 없다. 관객들은 그간 정을 붙였던 주인공과 선량한 피해자들 사이에서 감정이입 혼란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작품 전체가 이세계 먼치킨물에 대한 안티테제인가 싶기도 하다.





다만 1기와 2기에서 주인공 내면의 갈등이나 심리 변화의 양상을 보다 정교하게 묘사했더라면  재미있었을 텐데 싶은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3 9 이후부터는 너무 대충 만든 원작을  나도 느낄 정도였어.  어른의 사정이 있었던 거냐? 그래도 너무 성의없이 만들어서 허탈할 정도던데, 부디 4기에서는 정신 차리길!


이전 05화 [애니]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2019 스토리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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