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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Sep 05. 2022

관리 잘하자.

병원을 가는 날이다. 오늘은 안과와 신경외과 두 곳을 들려야 한다. 진료를 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대기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하루를 다 써야 한다. 병원을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있다. 30대 중반까지는 병원 다녀오는 일이 힘들진 않았는데 이젠 꽤나 힘들다. 확실히 나이가 들어가고 몸은 노쇄해져 간다. 


진료를 보기 전에 혈압을 먼저 재야 하는데 오늘 부여된 바코드를 찍고 혈압을 재야 교수님 컴퓨터로 자료가 넘어간다. 혈압을 재고 나서 보니 빈자리가 없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공기도 답답하고 덥다. 저쪽에서 아내가 이리로 오라며 손짓을 한다. 표정이 뭔가 의기양양하다. 창가 쪽에 공기 순환장치가 있는데 거기서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그 위에 걸터앉아 티셔츠로 바람이 들어가게 자리를 잡으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아내의 이유 있는 의기양양함!! 매력적이다. 


몸의 더위가 어느 정도 가시고 나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나의 눈을 사로잡는 장면이 나타났다. 얼핏 봐도 눈이 좋지 않으시구나를 느낄 수 있는 두꺼운 렌즈의 안경과 관절에 문제가 있음을 짐작하게 만드는 느릿하고 위태한 걸음걸이, 연세를 가늠할 수 있는 거의 백발이 되어버린 머리카락, 편찮으셔서 그런지 몰라도 비대해져 있는 상체는 더 위태로워 보인다. 장 볼 때나 쓸법한 짐수레와 짐수레 손잡이에 꼬아서 고정해놓은 허름한 검은색 가방은 보호자가 없이 혼자 오셨음을 짐작하게 해 주었다. 한 손으로 짐수레를 지지대 삼아 느릿하게 혈압을 재러 걸어오신다. 잰걸음 걸이가 느리다 못해 위태위태하다. 의자에 앉으시고는 바코드를 찍지 않고 혈압을 재시려 한다. 옆에서 주시하고 있던 다른 환자의 보호자가 바코드를 찍어야 한다고 알려 준다. 그런데 귀도 잘 안 들리시나 보다. 천사 같은 그분의 도움으로 혈압을 재신 할머니께서는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신다. 목소리에서 몸이 얼마나 불편한지 느껴질 정도다. 그냥 울부짖는 듯하다. 그러고는 짐수레와 가방을 끌고 진료실 앞으로 가신다. 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가 이렇게나 길고 멀까…… 그런데 자리가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천사 같은 분이 자리를 양보해 드린다. 할머니는 또 그렇게 감사의 인사를 하신다. 몸을 돌려 자리에 앉으면 되는데 몸을 돌리고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는 그마저도 한참이 걸린다. 그러고는 환자 번호가 찍혀있는 영수증 같은 종이와 종이뭉치를 한 손에 꼭 쥐고는 대기화면과 종이를 계속해서 번갈아 보신다. 눈도 귀도 안 좋으시니 혹시나 순서를 놓칠까 봐……


옆에 있는 아내를 본다. 한 손에는 환자 번호 바코드가 찍혀있는 영수증 같은 종이와 다른 한 손에는 병원 영수증과 서류들이 들어있는 천가방을 들고 뭔가 검색을 하며 대기순서가 나오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보호자와 함께 병원을 다닐 수 있는 나는 정말 운이 좋다. 아내가 없었으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녔을지도 모른다. 


장인어른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장모님보다 삼일만 더 살고 싶다고 하셨다. 장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르고 뒷정리를 다하고 나서 떠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장모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내와 내가 같은 시간에 세상을 떠나지 않는 한 혼자 남은 이는 저렇게 힘들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장인어른처럼 나도 아내를 끝까지 잘 챙겨주고 가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더 나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올 수 있을 정도의 체력관리를 잘해야겠다. 


요즘 운동과 걷는 연습을 잘해서 그런지 한적한 길에서는 아내의 도움 없이도 잘 걷는다. 물론 조금만 복잡해도 어지러워 아내에게 기대야 하지만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조금은 좋아졌다는 사실이 꽤나 기쁘다. 아내는 좋아진다고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지금은 많은 부분을 아내에게 의지하고 있지만 아내가 힘들어졌을 때 기댈 수 있는 남편이 되고 싶다.  

관리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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