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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춤 Aug 15. 2023

02 첫 사람. 나봉이

D+20 인도 바라나시

Bg. 여전히 아늑해 - 규현


나봉이(가명)를 처음 만난 건 바라나시였다. 한글 메뉴가 밖에 쓰여있다는 이유로 무작정 들어간 버니카페라는 식당. 5평 남짓한 작은 음식점 겸 카페였다


- 여기 앉아도 돼요?
- 네, 그럼요!


자리가 없어 혼자 앉아있는 나연이 앞에 앉았다. 바라나시에 온 지 이틀째였다. 아침이면 갠지스강을 나아 숙소가 위치해 있는 아씨가트(강가)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라자가트까지 걸었다. 아낙네의 빨래터를, 할아버지의 욕실을 누군가의 영혼이 담겼다는 그 평온한 갠지스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면 참 좋았다. 40분 남짓 느린 내 걸음으로 걷는 그 시간이 좋아 바라나시가 이제 막 좋아지는 참이었다.

갠지스강 아침풍경
해 질 녘의 갠지스강


혼자만의 시간을 갖길 잘했어.라는 생각이 막 들쯤 그렇게 우연히 나봉이를 만났다. 나보다 한 살 어린 그녀는 꽤 어른스러웠다. 바라나시가 너무 좋아 한 달의 인도 여정 중 벌써 2주간 발이 묶여버렸다는 나봉이는 나에게 바라나시 이곳저곳 알짜배기 명소를 소개해줬다. 바라나시 초행자인 나는 그녀를 따라 영수네 가게에서 똑같은 모양의 인도 팔찌를 만들었고, 나봉이가 뚫어놓은 가게에서 같은 디자인 다른 색깔의 동전지갑을 따라 샀다. 나봉이 옆을 졸졸 따라다니면 훔쳐본 나봉이가 사는 바라나시의 삶은 너무 아늑했다. 그녀의 일상에선 여행자들도 인도 현지인들도 너무 따뜻하고 유쾌해서 혼자만의 시간이 좋다던 나는 금세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나봉인 ‘깔깔’이라고 크게 소리 내며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져 버렸다.


조금 느린 여행이 하고 싶었던 나는 나봉이와 잘 맞았다. 우리에겐 오늘 꼭 해야 할 일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오늘 하고 싶은 일만 있었을 뿐이다. 지금 아니면 안 된다고 조급해하지도 않았다. 다음에 또 인도 와서 하지 뭐. 라며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게으름과 여유가 있었다.


결국 나봉이와 나. 그리고 나봉이와 히말라야를 오르며 만났다는 다른 일행 두 명. 그렇게 우리 넷은 일행이 되어 이후의 일정을 같이하기로 했다. (인도 여행 루트는 대체로 많이 겹쳐서 한 도시에서 스쳤던 인연을 다른 도시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 나봉이는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원래 계획을 취소하고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로 기차표를 바꿨다. 우리는 나봉이와 자이살메르로 가기 위해 조금 무리해서 일정을 당겼다.


넷은 모이면 즐거웠다.  큰 형인 D오빠를 놀리기에 바빴고,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막내 나봉이에게 떠넘겼다. 한 명이 노래를 흥얼거리면 다 같이 자연스레 노래를 따라 불렀다. 드디어 핫 샤워를 할 수 있다며 작은 일에 호들갑을 떨었고, 번갈아 가며 물갈이를 해서 설사약을 나눠먹으며 서로의 쾌유를 빌어줬다. 생각보다 더럽고 지친 인도 생활에 힘든 순간은 많았지만 함께였기에 웃음이 되는 시간들이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우리

바라나시에서 나봉이와 만났던 그 첫 순간이. 식당에서 가볍게 건네었던 인사가 우리의 인연을 이렇게 질게 이끌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함께 여행했다. 그러나 각자가 정해둔 출국일정이 달랐고, 나봉이는 우리 중 가장 먼저 인도를 떠나야 했다.


헤어지는 날 아침 나는 나봉이에게 발열 양말을 받고, 흰 티셔츠를 받고, 지퍼팩도, 파스도, 마스크팩도 받았다. 자기는 떠나는 사람이라며 다 퍼줬고, 남아있는 사람이란 핑계 속에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


깔깔 웃으면서 ‘기분이가 좋아요’라는 주어가 이상한 말을 달고 살았던 나봉이는 그 애를 바래다주던 날 마지막 인사를 하는 우리 앞에서 울었다.


이게 뭐라고 우냐.
고작 일주일 남짓 함께한 우린데


정 많은 애는 울었고, 무뚝뚝한 나는 그저 안아줄 뿐이었다. 고마워 나봉아, 너처럼 정 많은 사람과 나의 사랑하는 인도를 함께 할 수 있게 해 줘서. 올여름 한국에서 다 같이 만나면, 우리가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삼겹살 먹으러 가자. 꼭 네가 공깃밥, D오빠가 고기, B가 치즈케이크, 커피는 내가 사는 걸로 하자!


영화 ‘김종욱 찾기’의 배경이 된 조드푸르. 그 속의 나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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