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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춤 Aug 18. 2023

03 도비가트 빨래터에서 춤을

D+30 인도 뭄바이

대도시 뭄바이는 지금껏 보지 못한 인도의 모습이었다. 높이 솟아있는 초고층 빌딩들, 화이트 셔츠를 입고 깔끔한 거리를 다니는 비지니스맨들. 그리고 mahalaxmi staion 바로 옆에는 인도 최대의 빨래터, 도비가트가 있다.


여기서 도비왈라들은 손빨래를 한다. 전에 무한도전에 나온 것을 봤는데, 이곳은 엄밀히 말하면 빈민가이고 그들은 인도에서 이미 없어진 계급사회에서 직업으로서 하층민임을 드러낸다. 4단계의 카스트제도에도 속하지도 못했던 그 밑의 계급 중 하나가 바로 이 빨래하는 도비왈라다. 가이드북엔 누군가의 생활이 투어 장소가 되는 건 불편한 일이라며, 가급적 사진촬영을 삼가는 것이 좋다고 쓰여있었다.


대도시 뭄바이의 모습. 사람들도 세련된 느낌
처음타본 인도의 지하철. 손잡이가 많다


다음 도시인 함피로 가는 버스는 밤이었고, 시간이 꽤 남은 나는 조심히 도비가트로 입성했다. 들어서는 입구에선 '마담, 유 원트 투어? 투어?' 하며 나 같은 외국인들을 또 돈벌이 삼아 일하는 자가 있다. 이들은 사진을 찍히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나 투어리스트예요, 여기 관광 왔습니다.’라고 티 내고 싶지 않았기에 몇 번이나 부르는 그에게 '노 잉글리시'라고 말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한 5분쯤 돌아다녔을까. 수북이 쌓여있는 빨래들. 힘차게 이불을 빠는 혹은 다림질하는 사람들. 왠지 가이드북의 글이 자꾸 맘을 어지럽혔다. 그 좁은 길을 돌아다니는 것이 마치 누군가의 치부를 이리저리 들쑤시고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괜히 죄지은 마음이라 간간이 받는 밝은 인사도 양심에 찔렸다.

도비가트 빨래터


그러다 5살쯤 돼 보이는 아이를 만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가가 하이,하며 인사를 건네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애들과 친해지는 법은 간단하다. 카메라를 들어서 셀카모드로 놓고 같이 찰칵찰칵 찍는다. 신기해한다. 내친김에 아이 목에 아예 카메라를 걸어주며 찍는 법도 알려줬다.


그렇게 도비가트 어느 구석 빨래터에 앉은 내 주위엔 삼삼오오 아이들이 몰렸고, 돌멩이 5개로 자연스럽게 공기놀이가 시작됐다. 인도에도 공기놀이가 있다니. 세계어딜가든 노는 모습이 비슷한가 보다. 조금 있다가는 한 아이가 줄넘기를 가져와 줄넘기 내기가 시작됐다. 뒤로 넘기. 한 발로 넘기. 꼬아서 넘기. 놀거리가 별로 없는 여기는 줄넘기 하나를 가지고 넘는 방법이 20가지쯤 되는 것 같다.


인도에 와서 처음이었다. 그들의 하루에 내가 들어가 버렸다. 낯선 외국인에게 이렇게 마음을 열어줄 수 있을까. 칼로 찢긴 내 가방을 보고 다들 걱정해 줬고, 배가 고프지 않냐며 오로지 나를 위해 집밥을 해줬다. 10분이면 보고 나올 줄 알았는데 4시간을 거기서 보냈다.

아이들끼리 서로 찍어주던 사진 중
대장처럼 끝까지 날 배웅해준 형제들

나는 뭐라도 주고 싶었지만 최소한의 짐만 가진 배낭 여행자였다. 대일밴드 하나와 비상용으로 가져온 내 증명사진 2장을 주었다. 사진을 받고 서로 가지려고 너무 좋아해 줘서 되려 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호위하듯 졸졸 따라 나와 나를 역까지 데려다주고 멀리서 손까지 흔들어주고서야 날 보내줬다. 영어도 거의 안 되는 그들과 손짓 발짓으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말을 못 알아들어 답답해하면서도 웃었고. 자기들이 한 밥을 먹는 나를 보며 좋아해 줬다.


실은 오늘이 모든 동행들과 헤어지고 처음으로 온전히 혼자가 된 하루였다. 그동안 다니면서 크게 나쁜 일, 불쾌한 일, 무서운 일 한번 당한 적 없는 나는 조금은 두려웠다. 다들 인도를 혼자 다니면 조심할 일이 많다고 했다. 마음 한편에 조심을 넘어서 불신의 씨앗이 생길 즈음 나에게 또 그들은 이렇게 한 발자국 다가와줬다.


내가 어떻게 인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먹은 인도 가정식 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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