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밖에서 당신이 느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밥 먹는 배와
빵 먹는 배가
따로 있을 정도로
나는 빵을 좋아했다.
배가 불러도
밥을 먹고 난 후,
빵을 먹는 경우가 많은
나는 ‘빵순이’ 었다.
하지만
우리의 ‘한국인 빵순이’는
밥을 먹은 후에
빵이 먹고 싶었던 것이지,
빵만 먹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여행경비를 아낀다고
슈퍼에서 싼 빵만 먹다가
기력이 쇠해졌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했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밥을 먹어야만 했다.
삼겹살에 된장찌개 먹으면
딱 기운이 돌아올 것 만 같았는데,
그 당시엔 유럽에서
한식 레스토랑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밥이 먹고 싶을 땐
일식집을 찾아 헤맸다.
하루는 지나가다가
1회용 포장용기에
초밥을 넣어 파는
식당을 발견했다.
딱 봐도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어차피 이곳은 독일인데
내가 독일어를 못하니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일본어가 통할 것 같아서
그냥 일본어로 물어봤다.
초밥 용기를 가리키며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그 찰나
독일인이
그 가게에 들어오는데
그 순간 바깥에 비치되어있던
내가 가리킨 초밥이
마치 더러워졌다는 듯이
그것을
더 이상 안 팔겠다고
빼버린다.
그러면서 환한 미소로
독일인 손님에게
초밥을 팔고 있다.
때 마침
뮌헨에 있는
다하우 나치 강제 수용소를
견학하고 나온 후였다.
나치가
유대인을 괴롭혔듯
괜히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온갖 핍박을 받았던
그들의 삶에
숙연해질 수 있었던 것은
수용소 안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초밥집
앞에서였다.
그 안에서 나치에게 학살했던
유대인들을 향해
형식적으로 묵념했기 때문에
나에게 유대인의 슬픔과 고통을
제대로 느끼라는 기회가
다시 주어졌던 것일까?
아니면
벌레 취급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괜한 나의 과민반응이었을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다하우 수용소를
견학하고 나왔는데도
나치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는
미션을 부여받은
느낌이었다.
사실,
유대인 혐오는
독일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로마제국 때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유대인을 배척했던
민족과 국가는 다양할지라도,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 비슷비슷했다.
나치 정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유대인을 학살했듯이
유대인은 여기저기에서
밥그릇 싸움의 희생양이
되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아야 하는
원리로 유대인은
오랜 시간 동안
핍박받아왔던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뮌헨의 초밥왕님께 받은
핍박 아닌 핍박이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무시였을까?
아니면
같은 아시아인으로서의
배척이었을까?
도대체 저 사람은
왜 나를 더럽게 봤을까?
등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그 사람의 행동에
기분 나빠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치 정당이 존립하기 위해서
유대인을 학살해야 했듯이,
나에게 했던 행동은
타국으로 건너와
힘겹게 초밥을
팔면서 살아가는
그 사람만의 생존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유대인들은
나치가
홀로코스트를 자행할 때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당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극복하고
현대에 와서는
유대인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