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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양푼이 Sep 22. 2021

뽕삐두 센터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

아직도 나는 답답하다.

유럽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고3 때

내 짝이

살고 있는 런던이었다.


런던에서 신세를 지기로 한

친구에게 도착 일정을

전달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찾는다.


오랜 시간 혼자 타지에서

아무 말 없이 다니다 보니

친구와의 통화가

너무나 반가웠나 보다.


파리에 있는 뽕삐두 센터에서

나도 모르게

랩을 하고 있다.


할 말은 많은데

국제 전화였기 때문에

금방 끊길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린다.


목소리가 다소

 커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에 주의를 주는

손짓인 것 같았다.


목소리를 줄이며

돌아봤더니

뒤에 있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른다.


깜짝 놀라 런던에 있는

친구를 뒤로 하고

또다시 내 목소리는

뽕삐두 센터에서

메아리친다.


 고2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이곳에서

만난 것이다.


이 친구랑은

대학교 동문이기도 했다.


교류를 끊임없이 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가

유럽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행을 떠나기 전

유럽에서 돌아오면

바로 한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었는데

우리의 만남은

이곳 뽕삐두 센터에서

성사된 것이었다.


만날 사람은

그 장소가 어디가 됐든 간에

만나기 마련인가 보다.




그다음 날엔 독일 민박집에서

다 같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오빠들과

루브르 박물관에서

딱 마주쳤다.


그때부터

그들과 여행 메이트가 되어

파리 이곳저곳을

함께 누볐다.


 혼자 다니다가

여러 명이 함께하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우리는 34도가 넘는

파리 폭염 속에서

걷다 지쳐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앉아 있었다.


우리들 앞으로

한국인 여자 둘이

지나간다.


 "우와! 저 남자 진짜 잘생기지 않았엉??
너무 내 스타일이양.
저 사람이랑 같이 사진 찍고 싶당!"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한 여자의 눈엔

하트가 넘쳐흐른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너무 명확히 이해가 돼서

오히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더 모르겠는 기분을 느껴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리 세 명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한국말을 하는 순간

저 여성분이

너무 민망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궁금하다.


우리가 어떤 나라 사람처럼 보였던 것일까?


 한 오빠는 지나가는 여자한테

저런 극찬을 받을 정도로

 잘생겼었고

한 오빠는

어찌나 유쾌하던지

끊임없이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과 안 맞는 부분도 없었고

그들이 나를 불편하게

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

함께 웃고 떠드는

즐거움 속에서

점점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 지고

군중 속에 파묻혀 있다 보면

너무나도

혼자 있고 싶어 진다.


하지만

전자보다

후자의 마음이

더 크게 작동하는

나는 뼛속 깊이

 '나 홀로 배낭족'이었다.


 뽕삐두 센터에서 만난 친구는

유럽에서 돌아와

2년 후 결혼식을 올렸다.


상대는 알프스 정상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들에게

 '사랑의 오작교 역할'을

한 사람은

내 친구와 유럽여행을

같이 갔던 대학 동기였다.


그 둘은 멀고 먼

유럽을 함께 여행할 정도로

대학 입학 후

급속도로 친해졌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은

유럽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잘 맞았던 친구였는데

유럽에 오니

상극이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뽕삐두센터에서

나에게 짧게나마

그 여행 스트레스를 토로했었는데

다행히

알프스 왕자님께서

 그 스트레스를

완전히 날려주었던 것이다.


 유럽여행을 다녀온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친구는

유럽에서 평생의 짝을 만나

아들 둘을 낳고

아주 잘 살고 있다.


나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뽕삐두 센터에서

친구로부터 깨달은 바를

지금까지도

아주 잘 실천하고 있다.


 '합이 맞지 않는 여행 동반자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바엔
외롭게 홀로 여행하는 것이 낫다'


 나는


 "너랑 만날 바엔
평생 혼자 외롭게
늙어 가는 게 더 낫겠다!"


라는 말과 함께


2년 반 동안 잡고 있었던

누군가의 손을 놓아 버린 적이 있다.


 '나 홀로 배낭족' 이
그렇게 외롭지 않다는 것을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뽕삐두 센터에서

목소리 크기를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친구들과의 대화에

홀딱 빠져버리는 사람인데

왜 또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는 것일까?


 그렇다.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누군가와의 만남도 즐겁다.


하지만

너는 나에게

그런 시간을

단 한 번도

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에겐 외롭지 않아서

오히려 더 숨 막혔던

우리 만남의 패턴을

현명하게 바꿀

능력조차 없었다.


우리가 그렇게

가차 없이 서로의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 답답함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지

나는 오늘도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을 뿐이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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