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보다도 딜리버리!
오랫동안
지하주차장에 방치됐던
차가 너무 더러워서
셀프 세차장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은
본인의 세차 도구를 들고 와서
차를 열심히 닦는다.
사실 나는
그 정도의 열정은 없다.
타인에게 세차를
맡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내 기준에선 부지런하다.
세차에 엄청난
열정을 투자할 마음도
시간적 여유도 없으니
세차장에 있는
도구만을 가지고
세척을 한다.
물을 다 뿌리고 난 뒤
건조하는 곳으로
차를 이동시키니
사장님께서 다가오신다.
찌그러져 있는
내 차를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시더니
알 수 없는 액체를
뿌려 주신다.
"세상만사 귀찮으신 분이시니
물기 닦을 때
이것도 한 번에 닦으세요."
공짜로 액체를 뿌려주신 것을
고마워해야 하는지,
두 번 밖에 안 본 사람이
나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한 것에 대해 정색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영혼 없이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건넸다.
세차 후 망나니 같았던
나의 20대를 보듬어 주었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언니를 만나러 이천에 갔다.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런 이상한 소리는
신경 쓰지도 말라는 것이다.
손님한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며
여자가 좋은 차 끌고 와서
괜히 시비 거는 것이라고
내 편을 들어주었다.
언제나 나의 좋은 면을
더 봐주려는 사람들이 있어
든든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영원한 내 편인 엄마한테
이 이야기를 했다.
"네가 저번에 갔을 때
정리를 잘 안 하고 나왔겠지.
싸움날 것 같으니깐
다시는 거기 가지 마."
라며
엄마는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혼자 삐져서
방문을 확 닫고
들어와 버렸다.
방에 들어와서
곱씹어 보니
내가 언니한테
이야기할 때는
상처 받은 말투로
엄마한테 말할 때는
격양되어 화난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같은 스토리를
다른 방식으로 전달했던 것이
상대방에게
서로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괜히 엄마의 기분까지
망친 것 같아
급 미안해졌다.
콘텐츠보다도
딜리버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화난 것 같은 목소리로
내가 이야기를 하니
엄마는 내심
걱정이 됐을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는 내가 수틀리면
겁 대가리 없이
싸울 위인이라는 것을
잘 안다.
혹시 다음번에 갔을 때
욱해서 싸우고 오면
어쩌나 싶었을 것이다.
엄마만큼 나의 본성을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어렸을 때부터
사나웠다던 나는
동생이 처음 집에 왔을 때
질투의 화신이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동생을 더 보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게 보기 싫어
포크로 갓난아이를 찌르고,
아빠가 누워있는데
우유를 온몸에 뿌려대는
그런 아이였다고 한다.
1800년 1월 9일.
프랑스 생 세른 냉(Saint-Sernin)에서
늑대 소년이 발견됐다.
'아베롱의 야생아'로 유명한 빅터에게
세상은 '장 마르크 루소'의
‘성선설’ 사상을
입증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빅터는
도덕심이 형성되기
이전 단계의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 줄 뿐이었다.
엄마는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너무나도 잘 아는
나에 대한 전문가이다.
빅터와 같이
발달이 덜 된 미숙했던
나의 모습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광경들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화가 난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화난 목소리를 내는 순간
엄마는
내 편을 들어주는 것보다도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먼저 걱정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확실히
개과천선했다.
사실 그 사장님의 말에
어떠한 감정적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내가 세상만사 귀찮은
사람이 아니면 그만이다.
설령 화가 났다고 해도
이제 남들과 싸우고
싶지도 않다.
똥이 더러우면 피하면
그만이듯이
나와 다른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이
나를 비난하면
그 사람을
안 만나면 그만이다.
싸움은 더 큰 감정적 동요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또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처음 느꼈던 화의 몇 배가 되는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것을
알기에
애초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한다.
집에 와서 화난
목소리를 낸 것은
나도 모르게
엄마 옆에만 있으면
아직도 생떼를 부리고 싶은
늑대소녀로 둔갑해
버리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