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는 답답하다.
유럽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고3 때
내 짝이
살고 있는 런던이었다.
런던에서 신세를 지기로 한
친구에게 도착 일정을
전달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찾는다.
오랜 시간 혼자 타지에서
아무 말 없이 다니다 보니
친구와의 통화가
너무나 반가웠나 보다.
파리에 있는 뽕삐두 센터에서
나도 모르게
랩을 하고 있다.
할 말은 많은데
국제 전화였기 때문에
금방 끊길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린다.
목소리가 다소
커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에 주의를 주는
손짓인 것 같았다.
목소리를 줄이며
돌아봤더니
뒤에 있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른다.
깜짝 놀라 런던에 있는
친구를 뒤로 하고
또다시 내 목소리는
뽕삐두 센터에서
메아리친다.
고2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이곳에서
만난 것이다.
이 친구랑은
대학교 동문이기도 했다.
교류를 끊임없이 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가
유럽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행을 떠나기 전
유럽에서 돌아오면
바로 한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었는데
우리의 만남은
이곳 뽕삐두 센터에서
성사된 것이었다.
만날 사람은
그 장소가 어디가 됐든 간에
만나기 마련인가 보다.
그다음 날엔 독일 민박집에서
다 같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오빠들과
루브르 박물관에서
딱 마주쳤다.
그때부터
그들과 여행 메이트가 되어
파리 이곳저곳을
함께 누볐다.
혼자 다니다가
여러 명이 함께하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우리는 34도가 넘는
파리 폭염 속에서
걷다 지쳐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앉아 있었다.
우리들 앞으로
한국인 여자 둘이
지나간다.
"우와! 저 남자 진짜 잘생기지 않았엉??
너무 내 스타일이양.
저 사람이랑 같이 사진 찍고 싶당!"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한 여자의 눈엔
하트가 넘쳐흐른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너무 명확히 이해가 돼서
오히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더 모르겠는 기분을 느껴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리 세 명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한국말을 하는 순간
저 여성분이
너무 민망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궁금하다.
우리가 어떤 나라 사람처럼 보였던 것일까?
한 오빠는 지나가는 여자한테
저런 극찬을 받을 정도로
잘생겼었고
한 오빠는
어찌나 유쾌하던지
끊임없이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과 안 맞는 부분도 없었고
그들이 나를 불편하게
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
함께 웃고 떠드는
즐거움 속에서
점점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 지고
군중 속에 파묻혀 있다 보면
너무나도
혼자 있고 싶어 진다.
하지만
전자보다
후자의 마음이
더 크게 작동하는
나는 뼛속 깊이
'나 홀로 배낭족'이었다.
뽕삐두 센터에서 만난 친구는
유럽에서 돌아와
2년 후 결혼식을 올렸다.
상대는 알프스 정상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들에게
'사랑의 오작교 역할'을
한 사람은
내 친구와 유럽여행을
같이 갔던 대학 동기였다.
그 둘은 멀고 먼
유럽을 함께 여행할 정도로
대학 입학 후
급속도로 친해졌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은
유럽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잘 맞았던 친구였는데
유럽에 오니
상극이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뽕삐두센터에서
나에게 짧게나마
그 여행 스트레스를 토로했었는데
다행히
알프스 왕자님께서
그 스트레스를
완전히 날려주었던 것이다.
유럽여행을 다녀온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친구는
유럽에서 평생의 짝을 만나
아들 둘을 낳고
아주 잘 살고 있다.
나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뽕삐두 센터에서
친구로부터 깨달은 바를
지금까지도
아주 잘 실천하고 있다.
'합이 맞지 않는 여행 동반자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바엔
외롭게 홀로 여행하는 것이 낫다'
나는
"너랑 만날 바엔
평생 혼자 외롭게
늙어 가는 게 더 낫겠다!"
라는 말과 함께
2년 반 동안 잡고 있었던
누군가의 손을 놓아 버린 적이 있다.
'나 홀로 배낭족' 이
그렇게 외롭지 않다는 것을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뽕삐두 센터에서
목소리 크기를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친구들과의 대화에
홀딱 빠져버리는 사람인데
왜 또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는 것일까?
그렇다.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누군가와의 만남도 즐겁다.
하지만
너는 나에게
그런 시간을
단 한 번도
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에겐 외롭지 않아서
오히려 더 숨 막혔던
우리 만남의 패턴을
현명하게 바꿀
능력조차 없었다.
우리가 그렇게
가차 없이 서로의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 답답함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지
나는 오늘도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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