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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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보다
내 안에 남아 있는 미련과 마주하는 일이 더 힘들었다.
이별은 그녀를 기억에서 지우는 일이 아니라
되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처음엔 그녀의 무관심을 애써 모른 척했다.
엇갈리는 시선과 낯선 침묵.
나는 그마저도 일상의 익숙함으로 덮고 외면했다.
내가 건넨 말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내가 웃을 때 그녀의 미소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사랑은 그렇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진심이면 충분할 거라 착각했다.
하지만 다시 이어 붙이려는 마음은
금이 간 도자기 위에 바람을 바르는 것만 같았다.
홀로 걷는 강변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가로등 불빛 아래 비치는 그림자는
두 개였다가 어느 순간 하나가 되었다.
발끝에 차이는 낙엽 소리가
함께 걸으며 들었던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지워가고 있었다.
나는 오늘
그 기억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떠올렸다.
그리움은 희망이 아니라
멈추지 못한 미련의 관성 같았다.
붙잡고 있던 손에도
더는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았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도
꺼져버린 불꽃을 되살리려 애써 불어보려는 덧없는 미련이었다.
되돌아갈 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건너야 했던 건 그녀의 마음이 아니라
관성처럼 남아 있는 내 안의 미련이었다.
미련은
한때 사랑이라 믿으며 나를 지탱하던
그러나 이제는 나를 더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 바람 빠진 구명조끼였다.
사랑을 붙들려할수록
붙잡히는 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 속에 길을 잃은 나였다.
이별은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져 있던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잊힌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깊이 가라앉아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가라앉은 존재의 잔해 위에
나는 다시 나를 짓기 시작했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멀어진 것은 사랑이었지만
끝내 남은 건
상처 위에 나를 다시 짓고 있는 나였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나를 되묻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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