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발레 4년 차
딱 붙는 레오타드와 쫄쫄이 스타킹에 이 비루한 몸을 구겨 넣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발린이 시절.
가장 무난해 보이던 반팔 레오타드 2벌과 스커트 1장, 천슈즈 한 켤레로 시작했던 내 취미발레는 어느새 옷장 한 칸을 모두 발레복으로 채우는 것으로 발전했다. (실력은 그만큼 안 늘었다는 게 함정)
참고로 나는 본래 옷 욕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옷은 물론 구두도, 가방도, 액세서리도 일절 관심이 없고, 재택근무 6년 차가 되니 오피스룩 쇼핑 따위도 필요 없어진 지 오래. 그런데 이상하게 발레복만 보면 왜 이렇게 자꾸 지름신이 내리는지.
지난 몇 년에 걸쳐 캐미솔부터 반팔, 7부 등 계절에 따라 입을 수 있도록 다양한 스타일의 레오타드를 구매했고, 색깔도 검정, 네이비, 인디핑크, 발레핑크, 커피, 퍼플 등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골라 입고 갈 수 있도록 하나씩 사들였다.
새로운 레오타드에 맞춰 입을 스커트도 하나씩 늘어났고, 날이 추워지면 꼭 필요한 워머도 상의, 하의, 전신, 다리 등 부위별로 다양하게도 장만했다.
요가매트는 벌써 3개째, 올해는 큰맘 먹고 루루레몬 요가매트를 장만했다. 매트만 루루레몬이면 섭섭하니 사는 김에 폼롤러까지 세트로 장만.
두 개 합쳐 20만 원 가까이하는 비싼 애들이라, 요가매트에 행여나 땀자국이라도 날까 고이 모셔가며 쓰고 있다. 참내, 이게 맞는 거야?
천슈즈는 또 어찌나 구멍이 잘 나는지, 발톱이 짧을수록 구멍이 덜 쉽게 난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깨닫고 발톱은 늘 바짝 깎는 것으로 슈즈값을 아끼고는 있으나 그래도 늘 한두 켤레 정도씩은 여분으로 사놓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해 토슈즈를 신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에 맞는 발보호용품도 다양하게 필요해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뭣에 쓰는 물건인고" 싶을 만한 아이템들로, 토슈즈 안에 필수로 신어줘야 하는 패드와 발가락 보호용품, 발 포인트 모양을 도와주는 기구와 밴드 등이 그것이다.
4년 전 성인발레에 처음 입문하던 그날, 이 '발레'라는 요물이 이렇게 통장을 텅장으로 만드는 주범이 될 줄 알았다면 그때 겁도 없이 덜컥 시작할 수 있었을까.
매달 나가는 레슨비만 커버하면 될 줄 알았지. 툭하면 구멍 나는 슈즈와 발보호용품, 지름신이 강림할 때마다 늘어나는 레오타드, "어머 이건 사야 해!"를 외치며 데려오는 각종 아이템 쇼핑도 모자라, 심지어 이렇게 떡하니 발레바까지 들여놓게 될 줄 내가 알았나.
몰랐어서 다행이다.
덕분에 내 단조로운 일상에 설렘과 즐거움을 더해주는 기특한 취미생활 하나 잘 키울 수 있었다.
고맙다.
잘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올해는 그만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