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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링 Mar 06. 2021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피리 부는 여자들>  스포 있는 독후감

















<피리 부는 여자들>

여성 간의 생활, 섹슈얼리티, 친밀성

권사랑, 서한나 이민경

보슈(BOSHU)





열아홉 살, 3학년,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1년이자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는 나는 2020년이 끝날 즈음부터 고민이 많아졌다. 다만 망상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원하는 미래를 그리는 즐거운 상상도 자주 한다. 어떤 대학교에 갈지,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는다면 무얼 하면서 살지,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디서 살고 싶은지, 또 누구와 살고 싶은지. 나는 혼자 살고 싶다가도 매번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나의 친구들, 동료들과 함께 산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내 상상 속에서 웃고 있는 친구들, 동료들은 모두 여성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혈연이 아닌 타인과 가족을 맺을 수 있는 방법이 혼인과 입양뿐이다. 친구나 동료와 함께 살면서는 가족으로써 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흐름으로 나는 여성끼리의 삶과 생활동반자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시작이었던 이 책 <피리 부는 여자들>은 나의 행복한 상상을 구체화하고 확장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권사랑의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를 읽으며 글쓴이가 비슷한 또래의 여성 동료와 같이 살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동거의 장단점을 설명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보다 조금 먼저 사회에 나간 선배와 카페에서 마주 앉아 그의 경험담을 가지고 질문과 답을 하며 수다를 떠는 느낌이었다. 아주 먼 나중의 일 같다가도 나와 아주 가까운 이야기라고 받아들여졌다. 친구와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막연한 욕구가 왜 들었던 것인지,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게 해준 글이다. 글쓴이가 nn년간 부모님과 살았던 집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글쓴이의 어머니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너 결혼할 때 혼수로 주려고 사둔’ 냄비세트를 가져갈 테니 달라는 글쓴이의 요구를 어머니가 거절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씁쓸해졌다. 젊은 여성의 안온한 미래에는 꼭 결혼이 있을 거라는,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생각이 아직 보편적이라는 점이 안타까웠다. 우리 모부님이 나에게 결혼을 하라고 강요하신 적은 없기 때문에 같은 경험이 없는데도 글쓴이의 심정이 유추되었고 내 마음까지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직접적으로 모부님에게 강요받지는 않았지만 사회 분위기에서 내가 나조차 알게 모르게 그러한 압박을 느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게 된다.


글쓴이가 여성 둘이서 살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도 인상 깊었다. 부동산에서 이상하다는 시선을 느껴야 하고, 공동명의로 집을 사거나 빌릴 수 없고, 큰 액수의 보증금을 구할 수 없어 결국 부모의 도움을 받게 되는 그런 것들. 경제적으로 가난한 청년들이 살 곳을 구하기란 정말 어렵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한편 그렇기 때문에 월세며 생활비를 반씩 나눠서 부담할 수 있다는 점이 동거의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때 메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 혼자 사는 집에 비해 보다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점 등등 장점이 많지만 무엇보다 가장 와 닿고 부러웠던 건 심리적인 부분에서였다. 내가 아플 때 도와줄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안정감,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 내가 아는 사람과 같이 살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동거뿐만 아니라 근처에 사는 여성들과 관계 맺고 있을 때에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어느 정도의 자유와 어느 정도의 안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혈연 가족들과 함께 사는 건 안정적이지만 가끔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껴진다. 내 의지로 선택한 사람들이 아니니까. 나중에 언젠가는 내가 선택한 믿을만한 사람들과 함께 삶을 꾸려보고 싶다.


서한나의 <끝나지 않는 춤을 추고>는 여성과 여성 간의 사랑 이야기이다. 글쓴이의 이야기인지 픽션이 섞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애 소설을 읽을 때처럼 감정이입이 되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감사하게도, 세상에 동성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우고 접하고, 퀴어를 존중하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종종 동성애자를 싫어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이미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성소수자를 배척하고 이성애자와 다른 사람으로 취급하는 혐오자들의 시선이 더욱 낯설어졌다. <끝나지 않는 춤을 추고>에서 화자가 마지막일 줄 알았던 첫사랑을 하고 결국 끝내고, 다시는 못 만날 것 같던 사랑을 또 만나고 끝내고, 새로운 사람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화자의 연인들은 화자의 삶과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내 성적 지향과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나는 여성 간의 인간관계를 겪거나 바라볼 때 그 형태가 연인 관계이든 다른 관계이든 단순한 끌림을 넘어선 어떤 끈끈함을 느낀다. 길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화자가 설렘을 느낄 때 나도 설레고, 화자가 이별할 때 나도 공허함을 느끼며 몰입해서 읽게 된 이유에는 내가 글 속 인물들 사이의 끈끈함을 응원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앞으로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사랑을 하게 될까’ 하고 몰래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해준 글이다.


여성 간이 연대가 그려지는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는 90%의 확률로 웃음 혹은 눈물이 나온다. <피리 부는 여자들>을 읽으면서는 웃음이 나왔다. 생판 모르는 사이지만 나는 저자들과 나 사이도 이어져 있다고 느낀다. 이들의 피리 소리를 따라가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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