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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Aug 29. 2022

낙락장송(落落長松), 그 소나무 아래에서


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냥 죄송하고, 가슴 아프고, 안타깝고, 아쉽고, 연민에 휩싸이고 또 고맙고, 감사하고, 그립다. 인생은 그 자체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는데 마치 아버지를 두고 하신 말씀 같다. 인생 백 년도 못 사는 세상에 와서 꼭 이렇게 살다 가셔야 했는지 그것이 안타까웠고 - 아버지는 현재의 삶에서 벗어날 길이 쉽지 않음을 잘 아시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가를 늘 고민하셨다 - 직장이라는 핑계로 가까이하지 못해 그 아픔과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안타까움을 더하게 한다. 누군들 자식이 되어 부모에게 좋은 것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으며, 부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공감하지 않는 자식이 있으랴마는, 남겨진 아버지의 일기는 아들들에게는 그 고난의 속살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오롯이 당신의 비밀의 화원에 조용히 그 상처를 남긴 유일한 기록이 되었다. 그래서 아들들은 그 수첩 앞에서 그저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위암이라는 중병을 만났지만 다행히 초기에 잡아 완치가 되었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위장 관리를 잘하신 편이었다. 그런데 연세가 들면서 허리디스크가 생겼고 그것도 서울의 유명 병원에서 치료를 잘 받으셨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재발이 돼 팔다리 마비를 가져오기도 했다. 주로 밤에 주무실 때 다리에 쥐가 많이 났지만, 낮에는 또 별 이상이 없어서 식이요법 등의 치료로 대체하신 것 같다. 사실은 그렇지 않아도 아들들에겐 자신의 건강함을 늘 강조하셨다. 그래야 아들들로부터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여느 부모처럼 당신의 몸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아들들의 염려와 걱정이었다.          


 

간밤에 많이 앓았다. 사지가 마비가 되고 무릎과 다리가 수축이 되어 견딜 수가 없다. 매실액을 마시고 밖으로 나가 땀을 식히며 몸을 간추렸다. 사람이 급속도로 기력이 떨어진다. 고통을 겪다 매실액의 효과인가 다리와 발등이 풀린다. 밤잠을 잘 잤다. 안사람은 딸기 정식하러 갔다. 네 번째 동 수박 넝쿨, 짚 등을 경운기에 싣고 나와 물을 뿌려 짓밟아 두엄을 만들었다. 먼저 모아놓은 짚더미 위에 길게 연결된 호스로 물을 막 뿌렸다. 물이 골고루 스며들 정도로 충분하게 뿌려진 것 같다. - 간밤에 많이 앓았다. 2014.9.12.          



하루의 피곤함을 무릅쓰고 어떻게 아버지는 일기를 쓰셨을까. 젊은 사람들도 낮 동안 몸을 쓰면 피곤해서 저녁 먹고 나면 금방 잠에 떨어지는데 그럼에도 아버지는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일기를 쓰셨다. 여든넷, 돌아가시기 전까지 쓰신 일기에는 당신의 삶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었고, 평소 만나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까지 비밀스럽게 기록해 놓으셨다. 혹시나 아들들이 나중에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하셨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가감 없이 표현된 행간에서 잘 드러난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의도적이 되고 그러면 글에서 표시가 난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이순신의 마음을 헤아려봤고 그 마음은 아버지께로 감정이입이 되었다. 이순신은 삶이 곧 벗어날 수 없는 바다였으며 그곳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달빛 희미한 밤, 사각거리며 들려오는 잎사귀 소리가 적선의 뱃머리 깃발 나부끼는 소리로 들려 밤새 식은땀을 흘려야 했던 명장은 늘 칼이 우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바다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들판은 어떤 의미였을까.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몸이 아파도 경운기를 끌고 나가야 했고, 두엄을 만들고 물을 뿌리며 생명을 잉태하게 할 준비를 해야 했기에 잠을 자면서도 생각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아버지의 넓은 바다. 그 바다는 겉은 파도가 없는 평온한 들판이었지만, 밟아도 눌러도 모든 것을 수용해 주는 흙이 가르쳐준 인생을 온몸으로 공부하다 그 운명의 바다가 부르는 길로 비밀의 수첩만을 남겨 놓고 떠나가셨다. 그 수첩 안에서 아버지 마음을 만나 함께 뒷동산 큰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있는 낙락장송(落落長松) 아래. 저 멀리 들판과 너머에 흐르는 고향의 젖줄 요천이 보인다.      


‘아버지, 그러고 보면 참 인생은 허무해요. 가져가는 것 없이 수고만 하다가 끝내 돌아가야 하는 인생을 왜 사람들은 사는 걸까요?’

‘그래, 인생이 별거 있나. 너랑 나랑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장소가 있고, 서로 함께 흐르는 마음이 있고, 조물주가 주신 이 고향 산천이 있어 그래도 살 만한 거지, 인생이.’

‘아버지, 아버지의 인생은 좀 화나지 않으세요?’

‘화나기는, 나보다 못한 인생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데, 감사해야지. 그래 감사해야지.’     



부귀도 공명도 왜 아버지에겐 없었을까. 세상이 불공평해서 기회가 박탈된 삶을 살아야 했던 아버지 인생. 가난은 그렇게 인생을 묶었고 허리를 펴지 못하게 했으며 흙 위에 머물도록 했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이순신의 바다처럼. 하지만, 아버지 인생이 부귀공명에 익숙한 사람들보다 훨씬 나았는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흙은 친구가 되어 아버지와 함께 세월을 살아왔고 결국 아버지를 품기까지 했으니 그 땅이 준 사랑과 온기를 온몸에 받았으리라. 그것은 어쩌면 흙을 모르고 세상의 공명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친구 아닌 불청객에게 비굴하게 삶을 구걸하는 뭇 사람들보단 훨씬 값진 인생을 사신 것을 아닐까. 소나무 아래 그 언덕 위에서 다정하게 내 어깨 위에 손을 얹고 토닥이는 아버지의 그 손길이 애틋하게 그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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