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소한 걸로 글을 써도 될까?'
'글감이 너무 하찮은 거 아닐까?'
'이건 쫌 자랑 같은데 글로 풀어도 되나?'
글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기 검열부터 하게 됩니다.
저도 한동안 그랬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러고 있고요.
그럴 때면 이 2개의 문장을 다시 떠올려 주곤 합니다.
1.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
2. 오늘 턱 하고 걸린 일이 오늘의 글감이다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쓰기의 말들>을 쓴 은유 작가님 글에는 자주 등장하는 글감이 있습니다.
바로 밥인데요.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날마다 밥상을 차리고 아이를 먹이는 일이 작가님을 굉장히 짓눌렀다고 합니다. 그 이유인즉슨 보통 어떤 일을 안 하면 그냥 욕먹거나 불이익을 받는 등 감당을 스스로 하면 되는데, 아이들 밥 먹이는 일을 안 하면 한 생명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밥 때는 매일 세 번씩 돌아오고 몸이 힘들거나 하기 싫을 때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 참 괴로웠다고 합니다.
누구나 밥을 먹기 위해 밥상을 차려 먹지만 밥이 글감인 경우는 드물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해요. 먹는 즐거움은 글이 되어도 밥 하는 괴로움은 글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엔 밥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이 어색했지만 굴하지 않고 써 나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어딘가에서 밥하는 일로 힘들고 고통받는 분들이 우르르 나타나서 공감했다며 같이 눈물을 흘려주었다고 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블로그에 2년 동안 1일 1 포스팅을 했지만 매일 어딘가에 글을 쓴다는건 조금은 버거운 순간들이 있었는데요. 매일 글감이 짠~하고 떠오르진 않으니까요. 아무리 쥐어짜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던 어느 날, 오늘은 도저히 쓸 글감이 없어서 못 쓰겠다는 내용을 글을 썼거든요.
그랬더니 그 글에
'저도 그랬어요~'
'오늘 나도 그랬는데...'
하면서 공감 댓글이 다른 날보다 더 많이 달리는 신기한 경험했어요. 그날 이후 글감이 없다는 것조차도 글감이 되는구나를 깨달았고요~
오늘 턱 하고 걸린 일이 오늘의 글감입니다.
퇴근 후 알라딘 중고서점엘 들릴 일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출장에 챙겨가야 하는 책이 있었거든요.
다행히 필요한 책을 바로 발견해서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하려는데 카운터에 있는 직원이 오늘따라 유달리 친절한 겁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엘 제가 오랜만에 방문해서 그런 건지 직원 태도가 아주 많이 변해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교대를 하고 바뀐 다음 직원까지 매뉴얼에 맞춘 듯 친절한 걸 보고서야 아~ 알라딘의 방침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친절한 직원을 마주하는 제 느낌은 좀 씁쓸했습니다. 아니, 친절하면 무조건 좋은 거 아닌가요? 대체 저는 왜 그 순간 친절한 응대를 받으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을까요?
한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친절이 아닌 정교하게 짜인 매뉴얼을 읊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였을까요? 책을 계산하고 나와서 길을 건너가기 위해 육교 위를 지나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친절이 왜? 대체 너 뭐가 문젠데? 친절해도 불만이야?'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말이죠...
대체 이 사회는 어느 수준까지의 친절을 요구하는 것인지..
그 친절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꼭 필요한 것은 아닐는지..
잘 짜인 친절 매뉴얼이 서로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는지..
'그래~ 그런 의도라면 나쁘지 않겠는걸?'이라는 생각에 다다르며
'그래~그래~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집에 가서 얼릉 책이나 읽자' 하고 육교를 마저 건너왔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친절이 턱하고 걸린 부분은 꼬옥 글로 풀어보고 자자..하면서 말이죠..
오늘 턱하고 걸린 일이 '오늘의 글감'인걸 보면 제가 글감을 고른다기보다는 글감이 저를 선택해 준 것은 아니었을까요?
여러분의 오늘 하루 중
턱~! 하고 걸린 일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