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돈 쓰는 곳에 내가 있다.
처음엔 나도 PT 수업이 돈으로만 보였다. 1시간에 5만 원을 내면 내가 그 이상의 가치를 내 삶에 녹여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한번 해보고 아니면 말지 뭐 하는 단순한 생각도 살짝 있었다.
성인이 되어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접해 보았지만 일대일로 무언가를 배워보기는 처음이었다. 20대 때는 가격이 가장 중요했는데 40대가 되면서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돈 너머의 가치를 비교해 보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가치란 내가 투자한 그 이상으로 내 삶에 녹여내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어쩌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가장 쉽고 간편한 일 같기도 했다. 사랑, 배려, 감사, 용서, 응원, 칭찬, 공감 같이...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2.
돈 이상의 가치를 볼 줄 아는 사람만이 더 잘 살 수 있다. 돈을 목적으로 대하는 사람과 돈을 도구로 활용해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삶은 분명히 다르다. 처음엔 눈치 못 챌 수 있지만 몇 번만 만나 이야기해 보고 금방 알 수 있다. PT 회원을 돈으로 보는 트레이너라면 금방 들통나게 되어 있다. <끌리는 트레이너의 스피치>라는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PT 회원은 이미 잡은 물고기입니다.' 잘못 본 줄 알고 몇 번을 다시 읽었다. PT 회원에게는 작은 성취감을 자주 주는 게 중요하다 뭐 이런 내용으로 연결되기는 했지만 뜨악했다. 사람을 작은 물고기 취급하면 상대가 금방 알아채기 때문에 결국 얼마 못 가 분명 한계가 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3.
<아무튼, 피트니스>에서 류은숙 작가가 PT를 받게 된 일화가 나온다.
열 개만 잡아당기리라, 작정하고 힘을 쓰는 중이었다.
나이스(내 첫 트레이너의 자칭 별칭이다)가 다가왔다.
"지금, 뭐 하세요?"
(보면 모르냐?) "네, 그냥 뭐."
"이걸로 뭐 하시려고요?"
"네? 팔 운동 삼아 잡아당기고 있는데요?"
"회원님, 이건 등 운동하는 기구입니다."
"에?"
"이리 와 보세요."
올 것이 왔다.
몇 년 전 읽은 내용인데도 이 장면은 잊히지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장면처럼 각인되었다. 등 운동 기구로 팔 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걸 보니 아마도 랫풀다운을 당기고 있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해 보면서 말이다. 제대로 된 기구 사용법이나 근육 자극점을 모르면 충분히 누구에게라도 있었을법한 일이었다.
4.
PT 100회를 한꺼번에 끊었다며 자신이 정말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묻는 블로그 댓글이 있었다. 난 잘하셨다고 댓글 답장을 해 주었다. PT 100회를 한꺼번에 결재했다는 것은 그만큼 변화하고 싶다는 의지가 표현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행력에 박수를 보내면서 변하고 싶은 열망이 꼭 원하는 결과에 데려다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아니, 뭐 꼭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가. 인생에 한번 운동에 배팅한 경험은 나쁘지 않을 테니까.
일주일에 1~2번씩 한 시간을 투자해 인생을 변화시켜 줄 무언가가 있다면 과연 안 할 사람이 있을까? 난 아직까지 내 인생에서 PT만큼 드라마틱한 변화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인생이 지금 맘에 안 드시는 분, 무언가 변화를 추구하고 싶으신 분, 몸의 활력이 생겨 즐거운 일상을 누리고 싶으신 분. 그런 분이라면 그 어느 것보다 운동을 권하고 싶다. 지금 당장 동네 헬스장 3곳을 검색하고 네이버 예약을 통해 방문 시간을 잡았으면 좋겠다.
*관련 책 - <아무튼 피트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