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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나에서 찾은 영어 선생님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

by Olive

몬태나에서 보낸 3년 6개월의 이야기

To have another language is to possess a second soul.

–Charlemagne-


한국에서 교직에 오래 있었던 나는 꽤나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매일 수업을 해야 했고, 또 매일 많은 선생님, 학생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평소 말하는 것을 좋아했고, 말을 하는 속도도 빠른 편이었다. 그동안 내 생각을 우리말로 자유롭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몬태나에 오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몬태나에 오니 영어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닌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써 꼭 필요한 언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늘 한국어가 먼저 떠오르고 이에 적절한 영어 단어, 어순 등을 짜 맞추느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이렇게 대답해야지.’라고 생각한 후 말을 하려고 하면 이미 말할 기회를 놓치거나 대화 주제는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어느새 영어로 말할 때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짓거나 간단한 말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이런 내 모습이 맘에 들 리 없었다. 4살 배기 아들도 바깥에 나가는 것보다는 엄마랑 집에서 지내고 싶어 했고 아이와 함께 집에서 삼시세끼 차려먹다 보면 하루하루가 금방 저물어 버렸다.


몬태나에 온 지 한 달째, 3월이 되었어도 종종 날씨는 어찌나 추운지... 한국의 바쁜 생활을 잠시 벗어나고 싶어 이곳에 왔는데, 꿈만 꾸면 우리말을 열심히 하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 모습이 나왔다. 집에서 아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지만 이렇게 집에서 하루 종일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행히 집 근처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은 지 두어달이 지나서야 빈자리가 났다. 오전에 비로소 시간이 생기자 나는 집에서 탈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부터 여기저기 묻고 찾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 중에 미국에 오면 영어가 잘 될 거란 생각이 있다. 물론 나도 그랬다. 몬태나에는 한국인이 적으니 미국인 만날 기회도 많아서 더욱 영어가 잘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시간을 내서 누굴 만날 기회도 찾기 힘들었고 막상 만나더라도 아는 말만 하게 되고 모르는 말은 전혀 들리지 않기에 영어는 쉽게 늘 수 없었다.


그래, 내게 필요한 사람은 다름 아닌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아니라 영어를 가르쳐 줄 선생님이었다. 내게 영어 배울 수 있는 곳을 알려주신 분은 한인회장님의 사모님이신 박교수님이시다. 박교수님께서도 한국에서 교사로 일을 하셨고 보즈만에 오신 후 무료 영어수업을 들었다고 하셨다. 그러다 우연히 수학 지도 자원봉사를 하게 되셨고 그 일이 이어져서 전문대학 교수님으로 직업을 잡으셨다. 늘 많은 격려를 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시다.


영어 선생님을 찾는 내게 박교수님께서는 보즈만 시내에 위치한 윌슨 학교에 외국인을 위한 무료 영어수업이 운영되고 있다고 알려 주셨다. 프로그램명은 ESOL (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s). 윌슨 학교는 예전에 학교 건물로 쓰였다가 지금은 외국인을 위한 영어교실, 검정고시 준비반, 시민권 인터뷰 대비반 등 시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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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OL 수업에 처음 가기 위해서는 언제 찾아가면 좋을지 예약을 해야 했다. 메일로 언제 찾아뵈면 좋을지 문의를 드린 후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박교수님께서 처음 갈 때 같이 가주신다고 하셔서 아들과 함께 윌슨 스쿨 로비에서 함께 만났다. 영어교실은 2층에 위치했다.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는 칠판이 우리를 반겼다.

조안나칠판.jpg 색칠되어 있는 부분은 이곳 보즈만 ESOL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의 나라를 나타낸다.

영어 선생님의 이름은 조안나. 밝은 미소로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나와 똘똘이를 환영해 주셨다. 마치 오랜만에 다시 만난 사이처럼 반갑게 느껴졌다. 영어 수업은 매일 초/중/고급의 3개 반으로 나누어져 운영되고 있었는데 어느 수업이든 참여가 가능하고 시간이 된다면 모두 참여해도 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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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난 후, 오전에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윌슨 학교로 향했다. 교실에는 일본, 프랑스, 중국, 멕시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브라질, 터키, 태국 등 다양한 국적의 수강생들이 함께 했다. 모두 학업, 결혼, 또는 일 등 다양한 이유로 몬태나 보즈만에 왔고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조안나 선생님이 있는 교실을 찾았다.


수강료도, 시험도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다들 즐겁게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기에 갈 때마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조안나 선생님의 열정적인 수업 운영이 참 좋았다. 영어뿐만 아니라 미국 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있는지 없는지 늘 물어봐 주고 핼러윈데이에는 호박 깎기 행사를 운영하여 가족들도 모두 모일 수 있는 행사를 운영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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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연습을 개인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미국 친구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신다. 조안나 선생님의 주선 덕분에 나는 보즈만에 있는 동안 두 명의 친구를 만났고, 한 명과는 지금까지 2년 넘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며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봄부터 조안나 선생님의 ESOL 수업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동시 운영되고 있다. 온라인 수업은 보즈만에서 함께 수업을 들었던 사람이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셨다. 수업을 통해 영어를 배우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나고 나만 영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님을 느끼며 위로도 받고 용기도 얻는다. 물론, 지금도 나는 영어가 너무 어렵고 잘 되지도 않는다. 다만 아주 조금씩 향상되고 있다고 믿을 뿐이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특히, 외국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참고 자료]

https://www.bsd7.org/teaching_and_learning/bozeman_adult_learning_center/english_language_learners__ell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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