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tooth in a man's head is more valuable than a diamond. -Miguel de Cervantes-
어릴 적부터 단 것을 좋아했고 밥을 천천히 먹었던 나는 이가 아주 튼튼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기 전에 다양한 치과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었고 내 치아를 생각하면 괜히 늘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성인이 된 후 지방으로 내려와서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다니던 치과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치과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주변의 수많은 치과 중에서 어느 치과를 가야 할지 늘 고민이 되었다. 이 치과에 가면 저 치과도 궁금했고 몇 번 치과를 옮겨서 진찰을 받아 보기도 했다. 어느 치과에서는 치아 상태가 괜찮으니 양치질만 잘하면 된다고 했는데 어느 치과에서는 당장 치료할 치아가 많다고 하기도 했다. 의사마다 진료 소견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치과에 대한 선택은 더 어려워졌고 헷갈리기 시작했다.
한 번은 다니던 집 옆의 치과에 내원하는 환자가 너무 많아 대기시간이 한없이 길어지고 진료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시내에 있는 큰 치과로 옮겨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어금니 쪽 하나가 조금씩 말썽을 부리고 있어서 예전에 때운 부분을 떼어 내고 새롭게 때우기 위해서였다.
처음 가 본 새로운 치과의 내부는 정말 깔끔했고 튀지 않으면서도 화려했다. 나는 새롭게 옮긴 이 치과에서 이 하나에 대한 치료를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진료 중에 갑자기 다른 치아들도 문제가 많아 보인다며 이런 제안을 하셨다.
다른 치아들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지금 치료받는 김에 한번 갈아보죠?
귀를 의심했다. 입을 한껏 벌린 상태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지만 잠깐 손을 들고 얼른 대답을 해야 했다. 좀 생각해 보겠다고 한 후 오늘은 이거 하나만 치료를 마치고 싶다고 대답을 했다. 그 후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왠지 차갑게 굳어지는 것만 같았다. 계획했던 치아 하나에 대한 치료를 무사히 모두 마치고 계산을 하려 하는데 치위생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치료는 안 하셨다면서요? 그냥 그러고 사시게요?"
이 말을 듣고 나는 적잖이 당황을 했다. "뭐라고요? 그냥 그러고 사실 거냐고 하셨나요?"라고 되물어야 했는데, 이십 대였던 나는 괜히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 뒤로 한동안 '치료를 더 받아야 하는데 그냥 나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 치과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그 후 아는 분 소개로 조금 멀리 떨어진 치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그 치과는 부부가 모두 의사 선생님이셔서 이름도 부부치과였다. 항상 괜찮다. 불편함이 없다면 괜히 건들지 말고 쓰시는 데 까지 쓰는 게 정답이라고 하시면서 마음을 안정시켜 주시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한번 갈아 보고 싶다고 했던 치아들도 전혀 문제없다고 하셔서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잘 쓰고 있다. 그때 갈아버렸다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미국에 와서도 치과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치과에 가기 싫은 마음에 더해서 코로나를 핑계로 치과 진료를 미루고 미루다 얼마 전 찾은 동네 치과로 정기 검진을 위해 가족 모두 방문을 했다. 미국의 치과는 한국과는 달리 모두 예약제였고 예약 날짜를 바로잡기 어려웠다. 기다림 끝에 치과 가는 날이 되었다. 치과 건물 앞에 도착하니 일단 체온 확인을 주차장에서 먼저 할 수 있도록 전화하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체온 확인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니 정해진 시간 동안 한 명의 치위생사가 한 명의 환자를 전담 대응하는 방식으로 진료가 이루어졌다. 치과 의사, 간호사, 직원 모두 젊은 백인 여성들이었다. 미국에서는 치과 스케일링을 '클리닝'이라고 하는데 의사가 오기 전에 치위생사가 클리닝을 먼저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옆 방에서 클리닝을 시작했고 나는 똘똘이를 한쪽 의자에 앉으라고 한 후 클리닝을 시작했다. 치위생사의 태도는 정말 친절했고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똘똘이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본인도 어린 딸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클리닝을 받는 동안 치위생사는 끊임없이 내게 이야기를 했다. 주로 한 이야기는 두 가지 내용이었다. "잘하고 있어요. 치아가 참 아름다워요."
You're doing great.
Your teeth are so beautiful.
치아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마음이 울컥했다. 치과에서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나조차도 내 치아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한 번도 해 준 적이 없었다. 순간 "정말이요?" 되물었다. "Of course. Beautiful. It's so nice." 클리닝을 하는 내내 연신 잘하고 있다, 아름답다, 괜찮냐, 불편한 데는 없냐를 반복하며 나의 기분과 상태를 물어봐 주는 치위생사가 고마웠다.
클리닝을 마치고 잠시 후 찾아온 의사 선생님. 이 분도 역시나 친절했다. 치과 오기 전에 영어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얼마나 친절하게 진료를 해주고 설명을 해 주는지 영어로 말하고 있는 것도 깜빡할 정도였다. 참 기분 좋은 클리닝 시간, 진료 시간이었다. 나의 치아를 아름답다고 해 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똘똘이 진료까지 모두 마친 후 계산을 하러 밖으로 나왔다. 충치 치료를 한 것도 아니기에 결제를 하기 전 가벼운 마음으로 계산 내역서를 받아 들었다. '잠깐만, 이게 얼마지? 이건 달라로 계산이 되어있지? 한국돈으로 그럼 얼마야. 일십백천만..." 세 가족 클리닝에 든 비용은 상상 이상이었다. '동그라미가 왜 이렇게 많지?' 하는 생각에 또다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까 진료실에서 감동받아서 울컥할 땐 분명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이상하네... 계산서를 보면서 울컥할 땐 왜 입꼬리가 점점 내려가지?' 울컥하는 기분은 상황에 따라 아주 다를 수 있었다. 그래도 내 치아를 아름답다고 해 준 말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치아는 아름답다. 사랑하는 나의 아름다운 치아들아! 오래오래 건강하자.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