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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 미국은 식(食)이 중요

Food, clothing and shelter

by Olive

What do you actually need? Food, clothing, and shelter. Everything else is entertainment. -Aloe Blacc-


미국은 여러 가지로 한국과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문화가 없고 남녀노소 누구나 만날 땐 "하이!" 헤어질 땐 "바이!" 하는 모습도 실제로 경험하니 새로웠다. 나이 드신 분의 이름도 부모님 친구의 이름도 그냥 부를 땐 처음에 다소 놀라기도 했다. 미국 사람들은 남의 시선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며 개인 공간을 중요시한다. 살짝만 부딪혀도 "쏘리!"를 바로 하고, 부딪히지 않았어도 가까이 지나간다면 "익스큐즈미"를 한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에 있어서도 한국과 미국은 많이 다른 듯 싶다. 한국어로는 '의식주'라고 하며 '의'가 가장 먼저 나온다. 하지만, 미국에선 '의'보다는 '식'이 먼저다. 대개 '식의주' (food, clothing, and shelter) 또는 식주의가 통용된다. 극한 상황에서 옷은 없어도 되지만 음식이 없다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음식은 옷보다 중요할 것 같은데 왜 한국에선 '의'가 '식'보다 먼저 나오게 되었을까?


한국에서 '의'가 제일 앞에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 찾아보니 두 가지 정도의 의견이 있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정확한 이유는 없으나 발음의 편의(의식주로 할 때 발음이 가장 편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설명이 있었다. 예의와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 때문에 '의'가 가장 먼저 나오게 되었다는 내용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왠지 후자에 더 동의가 된다. 우리나라의 여러 속담에서도 옷차림을 먹는 것보다 훨씬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남의 눈을 더 의식하고 비교 문화가 더 강한 한국 사회에서 옷차림은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
: 빌어먹더라도 옷이 깨끗해야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뜻으로, 옷 차림새가 남루하면 남에게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말

하루 굶은 것은 몰라도 헐벗은 것은 안다.
: 가난하더라도 옷차림이나마 남에게 궁하게 보이지 말라는 뜻으로, 옷차림이 먹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의미

못 입어 잘난 놈 없고, 잘 입어 못난 놈 없다.
: 잘난 사람도 돈이 없어 옷을 잘 입지 못 하면 못나 보이고 못난 사람도 돈이 많아 옷을 잘 입으면 좋은 대접을 받는다는 뜻

미국에 와서 가장 신경 쓰지 않는 것 중 하나는 옷차림에 관한 것이다. 대학 교수들이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와도 아무렇지 않고 학교 선생님들도 청바지나 면바지 등의 편한 옷을 선호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매일 양복을 입고 치마를 입는 경우도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일 뿐, 누가 어떤 차림을 하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 각자의 개성에 따라 옷을 입지만 편안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어로 식의주 순서에 걸맞게 미국에서 '식'은 '의'보다 더 중요하고 더 많이 신경 쓰게 되었다. 매일 학교로 출근하며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던 한국에서의 생활에 비하면 지금은 옷차림이 훨씬 안 중요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가 무슨 옷을 입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도 큰 이유가 된다. 하지만 내게는 미국의 식생활, 식문화가 한국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큰 것 같다.


식도락을 찾아서


미국에는 식도락이 참 부족하다. 동네에서 유명한 음식은 스테이크, 햄버거 등이 전부이다. 맛집이라고 해서 가보면 늘 기대에 못 미친다. 한국사람의 입맛을 충족시켜 주기는 상당히 부족한 맛이라고 할까. 맛있는 음식은 웬만하면 튀긴 요리, 버터와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다. 워낙 큰 나라이고 다문화인 국가다 보니 더 맛있는 음식, 색다른 음식도 많다고는 하지만 꼭 근처에는 없다. 맛집에 가기 위해 몇 시간씩 운전해서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얼마 전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이라고 추천을 받아 햄버거 집에 간 적이 있다. 체인점이 아닌 이 지역에만 있는 집이라고 해서 가봤더니 역시 사람이 많았다. 햄버거 패티, 야채, 치즈 등등 하나씩 다 선택해야 했는데 따로 값이 매겨져 더해지는 방식이었다. 맛집이니까 하면서 일단 골고루 이것저것 다 넣어서 계산을 하니 햄버거 하나에 만원이 훌쩍 넘었다. 맛은? 너무 평범했다. 다 먹고 나서 든 생각은 역시 미국 햄버거는 집 근처 버거킹이 낫다는 거였다.


식당에서는 팁 필수


미국 문화에서 팁은 굉장히 중요하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모든 서비스에는 팁이 붙는다. 특히,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팁을 꼭 줘야 한다. 드라이브 스루나 셀프서비스로 먹는 경우에는 팁을 안 줘도 되지만 물 한잔이라도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면 팁을 생각해야 한다. 미국 식당에서 놀랐던 점은 직원이 정말 친절하다는 점이었다. 뭐 필요한 건 없냐, 물 좀 더 줄까 등등 질문도 많이 한다. 알고 보니 이는 모두 팁을 많이 받기 위한 전략(?)이었다.


처음에 '팁은 10% 정도 주면 되겠지?' 하고 10%만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가게 문을 나올 때 뭔가 약간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팁이 적었을까? 생각을 하고 미국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최소 15%는 줘야 한다고. 요즘엔 더 올라서 20% 주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만일 식사 후 1~2시간 정도 더 머무르며 이야기하고 나왔다면 30%를 주기도 한단다. 지난주에는 동네 식당에 가서 금요일 특별 메뉴를 주문했다. 한 접시의 가격은 6.99불. 계산할 땐 세금이 더해지고 팁 20%가 더해지니 10불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국에는 없는 팁 문화, 어딜 가도 비싸게 느껴진다.


집밥, 집 도시락, 집 파티 선호


미국 사람들은 집에서 먹는 음식, 집에서 가져오는 음식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사 먹는 음식이 별로라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식당에서 팁까지 주고 사 먹느니, 팁은 없지만 기름진 패스트푸드 음식을 먹느니 집밥이 제일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 미국에서 음식 서비스 값은 비싸지만 마트의 재료 값은 비싸지 않은 편이다. 특히 계란, 우유, 과일, 야채 등은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신선한 재료를 사서 집에서 해 먹는 게 이제는 익숙해졌다.


미국에서는 점심 식사도, 사람들과의 회식도 집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점심은 집에서 싸오는 도시락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많고, 회식도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라는 이름으로 집에서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포트럭 파티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오래전부터 즐겨오던 모임의 방식이다. 장소를 제공하는 집주인은 간단한 메인 요리를 준비하고, 손님들은 각자 취향에 맞게 음식을 가져와서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포트럭 파티는 서로에게 부담도 덜하고 각자의 음식도 맛볼 수 있어 좋다.


미국에서 살면서 의생활은 자유로워졌고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좋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치마와 구두는 옷장 속에 고이 모셔놓은 지 오래다. 괜히 가지고 왔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식생활은 한국보다 어려운 점이 많다. 식도락도 없고 식당 팁도 왠지 비싸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집밥을 열심히 해 먹는 덕분에 건강식, 영양식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고, 요리 솜씨가 날로 느는 점은 좋은 점이다. 다행히 친정 엄마의 금손을 물려받았다.


원래 식탐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였는데 미국에서 살면서 먹고 싶은 음식이 가끔 생각나서 한국 가면 꼭 먹어야지 할 때가 있다. 요즘 생각나는 음식은 맛있는 물냉면! 남편은 탕수육과 짬뽕! 아무래도 몇 시간 걸려 가야 하는 한국 마트지만 빠른 시일 내로 한번 가야 할 것 같다. 한국의 진짜 맛보단 못하겠지만 한국 마트에서 재료를 사 와서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겠다. 한국 사람에게 미국의 식도락은 한국 마트와 우리 집 부엌에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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