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fferent language is a different vision of life. -Federico Fellini-
몬태나 보즈만의 WLI-MT(World Language Initiative-Montana)에서 나는 처음으로 한국어 코치가 되었다. 하지만 자원봉사 교사였기 때문에 내가 할 임무가 있거나, 한국어 수업이 바로 주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월드 랭귀지로 일선 학교 및 문화센터에 수업이 개설된 언어는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아랍어, 그리고 중국어였다. 당연히 한국어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난 다른 코치들이 실제로 어떻게 수업을 하고 있는지, 어떤 수업내용을 다루고 있는지가 참 궁금했다. 마침 아들 똘똘이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에 일주일에 한 번 4~5학년 대상으로 금요일 중국어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똘똘이네 학교는 몬태나주립대 바로 앞에 있는 학교로 무려 30%에 달하는 학생이 외국에서 온 학생이다. 그래서 이 초등학교에서는 다문화 교육 차원으로 WLI의 지원을 받아 세계 언어문화 수업을 정규 수업으로 하고 있었다.
유치원부터 5학년까지 전 학년 모두 하교시간이 똑같지만 금요일은 4~5학년이 한 교시를 더 하는 것으로 교육과정이 이루어진다. 이 마지막 교시 때 HOE(Hour of Enrichment)라는 이름으로 세계 언어문화 수업을 시행했다. 이번 학년도(2018년 가을~2019년 봄)에는 중국어, 아랍어, 프랑스어 이렇게 3개의 언어반을 편성했다. 어느 반으로 갈지는 학생들의 희망 순위를 받아 가급적 원하는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배정했다. 아랍어는 아랍어 협회와 보즈만 교육청 협약으로 선생님과 교육비를 지원받는 프로그램이었다.
금요일 똘똘이의 하교 시간은 오후 1시 50분이었고 4~5학년이 참여하는 HOE 프로그램은 2시부터 2시 50분까지 진행되었다. WLI를 운영하고 있는 엘리자베스와는 같은 학교 학부모라서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각 반에 보조교사가 늘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만일 남편이 1시간 정도 똘똘이를 봐줄 수 있다면 나는 중국반 보조교사를 자청하고 싶었다. 다른 언어보다도 우리나라 바로 옆에 있는 중국, 중국반의 수업 내용이 더 궁금했다.
다행히도 남편은 금요일 오후에는 그리 바쁘지 않으니 똘똘이 픽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똘똘이를 픽업한 후 사무실에서 한 시간 정도는 돌보며 같이 있을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2018년 가을부터 2019년 봄까지 중국반의 보조교사로 수업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보조교사의 역할은 수업 준비를 돕고, 유인물을 나눠주고, 수업 사진을 찍어주고, 수업 후 뒷정리를 도와주고 하는 것들이었다.
중국반 수업을 맡은 선생님은 30대 초반의 젊은 여선생님인 린이었다. 린은 대만에서 영어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외국 생활을 10년 가까이했으며 남편도 미국 사람이기에 영어를 아주 잘했다. 현재 몬테소리 유치원 정교사로 일을 하면서 WLI의 중국어 코치를 두 번째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미국의 직장생활은 유연한 편이라 평일 오후에도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린은 영어도 잘했지만 수업 아이디어도 많았다. 매 수업마다 남편도 같이 와서 수업을 도왔다. 아이가 아직 없는 린 부부는 매번 수업 때마다 함께 왔다. 아무리 린이 영어를 잘한다 하더라도 원어민은 아니었기 때문에 중간중간 미국 사람인 남편이 보충설명도 해주고 유머도 던지면서 수업 분위기를 좋게 만들곤 했다. 중국반의 수업은 크게 4가지의 주제로 구성이 되었다. 글과 그림, 가족 및 숫자, 게임과 놀이 활동, 음식 만들기로 이루어졌다.
중국반 첫 시간에는 영어 이름을 중국어로 바꾸는 활동을 했다. 한글과는 달리 한자는 소리 나는 대로 글자를 표현하는 게 불가능하다. 때문에 린이 생각해 낸 방법은 현재 중국에서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한자(형용사, 명사)를 여러 개 뽑아서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한자를 골라 이름을 만드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영어 이름이 'James'라 하더라도 이와는 무관하게 형용사 중에서 빼어날 수(秀)와 명사 중에서 용 룡(龍)를 골랐다면 중국 이름은 '수룡'으로 빼어난 용, 멋진 용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 수업내용을 보면서 한글의 장점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한글로는 영어 이름 'James'를 발음 그대로 '제임스'라고 쓸 수 있으므로 얼마나 좋은가! 또한 한글은 쓰기가 정말 쉽다. 몇 획이면 한 글자 한 글자를 금세 쓸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새롭게 만든 중국 이름을 쓰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 보였다. 예를 든 秀龍을 보더라도 정말 많은 획 수가 필요하다.
글과 그림 시간에는 엄청나게 많은 붓과 서예용구, 물로 쓰는 서예지를 다 챙겨 와서 놀랐다. 분명 이 많은 재료를 학교나 WLI에서 사줄리는 없었다. 물어보니 몬태나주립대학교 중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님이 후원해 주셨다고 했다. 몬태나주립대에 중국어, 일본어 수업은 있지만 한국어 수업은 없다. 중국어 교수님이 정부 지원으로 붓글씨 용품을 모두 지원받아 행사를 개최했었고 이후 본인에게 나눠주셨다고 했다. 한국어 교수님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너무 부러울 따름이었다.
아이들이 무엇보다도 좋아한 수업 내용은 음식 만들기 시간이었다. 린은 음식 만들기 시간에 버블티 만들기, 덤플링(만두) 만들기를 했다. 버블티 수업은 린이 집에서 만들어 온 반죽을 손가락으로 굴려 작게 만들고 집에 가져가도록 했다. 학생들이 각자 만든 버블은 크기나 모양이 달라 삶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시음해 볼 음료의 버블은 선생님이 만들어 온 것으로 대신했다. 린은 버블티 음료, 버블 반죽 모두를 집에서 만들어 왔다.
만두 수업은 린이 만들어 온 만두소를 한 숟가락 씩 나눠주고, 만두피로 각자 만두를 만들어 보도록 했다. 음식 제한 또는 음식 알레르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를 미리 조사해서 음식 수업을 해야 했다. 한 학생이 채식주의자라서 그 학생의 만두소는 닭고기 대신 두부를 넣어 준비를 해 왔다. 찜기에 넣을 때 자기가 만든 만두 모양과 넣은 위치를 정확히 기억해서 찐 후에 자기 만두를 시식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음식 수업은 정말 쉽지 않아 보였다. 사전에 수업 준비가 더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했고 선생님의 노력과 수고도 훨씬 더 요구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음식 수업 때 아이들의 수업 집중도는 더 높았고 눈동자는 더 초롱초롱하게 빛이 났다.
중국반의 보조교사 활동은 여름캠프 때도 이어졌다. 이번 중국반 캠프는 린 선생님과 미국인 선생님이 함께 맡았다. 미국인 선생님은 대만에서 몇 년간 산 경험이 있었다. 캠프 보조교사를 할 의무도 없고 하라는 사람도 없었지만 중국반 선생님들께 보조교사로 함께 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을 하니 너무 좋다, 감사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중국반의 수업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나중에 한국반을 운영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참고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WLI에서는 매년 여름 몇 가지 언어를 중심으로 1~2주 간의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2019년 여름에는 보즈만에서 가장 유명한 집으로 꼽히는 스토리 맨션에서 캠프를 진행했다. 스토리 맨션은 넓은 실내공간과 잔디밭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고택으로 원래 개인의 소유였으나 지금은 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대중을 위한 가족 행사나 연주회 등의 장소로 쓰이고 있는데 이번 여름에는 시의 후원을 받아서 WLI 여름캠프 장소가 되었다.
여름캠프 중국반의 내용은 초등학교 중국반의 내용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달랐다. 좀 더 놀이 중심, 활동 중심으로 내용이 꾸며졌다. 역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수업은 음식 수업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는 시간이었다. 밀가루 반죽을 선생님과 함께 만들고 아이들에게 조금씩 덩어리를 나누어 준 후 손가락으로 길게 밀어 손국수를 만들었다. 이후 국수를 모아서 끓이고 삶아진 국수에 간장, 설탕, 참기름을 뿌려 젓가락으로 먹게 했다. 간단한 양념이었는데도 아이들은 "Yummy!"를 계속 외치며 먹었다.
잔디밭에서 한 놀이 중에서 기억에 남는 놀이는 모두 한국의 놀이와 똑같았다. 어쩜 이렇게 똑같은 놀이가 있을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놀라기도 했다. 3가지 놀이가 기억에 남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수건 돌리기, 얼음땡 놀이였다. 중국반의 수업내용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매번 보조교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면 내가 나중에 한국반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찼다.
중국반에서 보조교사로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교사로서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중국반의 수업 내용은 모두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 선생님들의 노력과 정성도 많이 들어갔고 수업 준비물도 풍부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수업을 통해 과연 아이들이 중국어를 얼마나 학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한자는 보기에도 참 복잡하고 쓰기도 어렵게 느껴졌다.
한자와는 달리 한글은 소리 나는 대로 표기가 가능하고 쓰기도 쉽다. 영어 이름 'James'를 한자로는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할 수 없어 전혀 다른 말로 대체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글로는 발음 그대로 '제임스'라고 쉽게 쓸 수 있다. 말소리를 기호로 나타낸 표음문자 중에서 한글은 가장 훌륭한 문자로 인정받고 있다. 표의문자(한자)인 중국어보다 표음문자(한글)인 한국어가 학생들에게 더 쉽게, 더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2018년 가을부터 2019년 봄까지, 일 년 동안 중국반 보조교사로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한 시간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WLI으로부터 2019년 가을부터 초등학교 한국반 수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물론 대답은? Absolutely! I'm already SO exci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