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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형준 Nov 19. 2021

서핑 일기_3

잡아타다.

파도를 잡아탔다. 말 그대로 파도를 잡아타는 순간이었다.

어거지가 아니었다. 쑤욱 들어가는 자연스러움에 이어 파도가 밀어주는 느낌이 좋았다.

이상하게 전보다 체력 소모가 덜했다. 1시간 반을 열심히 탄 건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되새겼다. "1시간 반에 모든 걸 쏟아붓는다는 생각으로 하세요. 돈 아깝잖아요?"  이 날은 초보운전자와 같은 '점시야'로부터 조금 해방되는 날이었다. 테이크오프를 할 때 좌우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렇다면 나는 그 전에는 얼마나 많은 '악의 없는' 드랍을 했던 것인가? 소름이 돋는다. 뭐 어차피 많이 잡아타지도 못했으니 별로 드랍하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이 날은 나보다 레벨이 높은 서퍼 분들과 함께 PT를 받았다. PT 받을 때는 열심히 잡아타느라 몰랐는데, 비디오 분석할 때 보니 확실히 경험 많은 서퍼들이었다. 기가 죽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테이크오프 자세가 '와~' 소리가 나올 정도로 훈련이 잘 되어있었다. 나는 테이크 오프 할 때 허리가 너무 늘어지는 점과 일어날 때 '딱'하고 일어나지 못하고 질질 끄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반면, 파도를 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서있는 자세가 좋다고 계속 칭찬받았다. 확실히 허리가 가래떡처럼 늘어지면서 게으르게 팝업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 날 최고의 이득은, 나보다 잘하는 서퍼들과 함께 듣다 보니 나는 생각조차 안 했던 '사이드 타기'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고, 나도 곧 가능하겠구나라고 느낀 점이다. 파도를 하나 잡아타고 나아가려는데 갑자기 앞에 한 서퍼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의도치 않게 턴을 시도할 수 있었다. 앞사람을 치지 않기 위해^^. 양 발의 각도가 잘못되었다는 지적도 매우 중요한 포인트였다. 왜냐하면 발 각도는 곧 나아가 기술을 쓰는 것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 외에 파도를 읽는 법이라던지, 파도가 깨지는 포인트에서 어떻게 위치해야 하는지 등등을 지난번보다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일어서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잘 안되니까^^) 파도가 밀어줄 때의 느낌에도 집중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늦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었나 보다. 조금 더 일찍 발딱 일어나도 좋다는 티칭을 들었다. 그래도 이 날은 PT 때 쏟아부어서 그런지 바로 바다에 들어가 연습하려니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바로 나와서 잠깐 끼니를 때우고는 해변에 가만히 맨발로 앉아 백 지퍼를 내리고선 시원한 등 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선생님이 서핑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이 날은 중요한 날이다. 일어서지 못해 한이 맺힌 서린이에서, 이제는 점시야도 탈출하고 나아가 사이드를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운 날이었기 때문이다. 사이드를 타는 서퍼들을 보면 나와 다른 영역대구나 하고 느꼈었다. 그런데 이 날은 나는 왜 사이드를 못 타지? 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파도가 굴러가고, 꿈에서 파도를 타는 날도 생겼다. 꿈에서 깨선 위치를 잘못 잡았네, 어쨌네 하는 나만의 작은 후회. 바닷가에 사는 로컬 서퍼들이 가진 '내 곁의 바다'가 부러워진다. 매일 바다에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텀벙 텀벙 흔들흔들거리는 불균형 감이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또 다음 PT일정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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