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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퍼즐도사 Oct 27. 2024

반쪽짜리 역사 채우기

인생이 무료할 때 지구 한 바퀴 (8)


강연자들과의 사전 조사와 대화를 통해 그들의 여정을 깊이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 역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들의 삶과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속한 나라와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계 역사에 관심이 깊어졌다. 때로는 역사 공부에 몰두하며 길이 새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새로운 호기심이 피어나면서 역사가 점점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특히 학교에서 배운 역사와 실제 역사가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안에 새로운 시각이 열렸다.




위대한 탐험가?

예를 들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우리나라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로 기억될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배워왔다. 그러나 피스보트에서 만난 역사학자 주밍은 이 표현이 얼마나 편향적인지 일깨워 주었다.



주밍은 “신대륙 발견”이라는 표현이 유럽 중심의 시각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수천 년 전부터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아메리카 대륙을 마치 유럽인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한 듯 묘사하는 것은 원주민의 존재를 지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유럽인의 관점에서 콜럼버스는 '새로운' 자원을 세계화한 ‘위대한 탐험가’ 일 수 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그는 그들의 땅과 그 위의 모든 영혼을 빼앗은 약탈자일 뿐이다. 또한, 그의 항해 이후 아메리카 대륙은 대규모 노예무역의 장이 되어 흑인 역사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더 흥미로웠던 점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달한 첫 이방인이 아니었으며,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도착한 곳을 인도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인도 사람(Indian; 인디언)”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는 결국 역사적 오해와 편견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인디언”이라는 표현 대신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내가 미국에서 유학했을 당시, ‘인디언’이라는 표현이 지양된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그 이면에 이런 역사적 맥락이 있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다.



주밍의 강연을 들으며 떠오른 질문이 있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왜 콜럼버스를 ‘신대륙을 발견한 영웅’으로 배웠을까? 왜 그의 행적을 존경받아 마땅한 업적으로 여기는 교육을 받았을까? 나는 이 강연을 통해, 우리가 배운 콜럼버스 이야기는 유럽 중심의 시각에서만 다룬 ‘반쪽짜리 역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신 아시아에 먼저 도착했다면, 오늘날의 우리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각 나라에서 이 역사를 어떻게 가르쳤을까?



주밍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대신 “콜럼버스의 발견”이라는 표현을 제안했다. 이처럼 역사적 표현의 맥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이후 만난 강연자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캐나다 퀘벡에서 온 원주민 후손 강연자의 이야기를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겪은 문화 청소와 생존 투쟁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흑인 노예 해방 운동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준 밥 말리 후손의 강연을 통해서는 흑인 사회가 여전히 겪고 있는 현실과 그들이 만들어 온 역사를 배울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다양한 강연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배우면서, 내가 배워온 지식에 대한 성찰과 비판적 시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창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 시간이었다.



프랑스어로 '나는 기억합니다'라고 쓰여있다. 퀘벡을 미국에 잃은 프랑스를 기리는 문구. 원주민 이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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