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무료할 때 지구 한 바퀴 (8)
강연자들과의 사전 조사와 개인적인 대화를 통해 그들의 여정을 깊이 알아가면서, 나의 배움도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자 속한 나라와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들의 경험과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종종 역사 공부로 길이 새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럴 때마다 호기심이 깊어지며 역사가 흥미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히, 학교에서 배운 역사와 실제 역사가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새로운 시각이 열렸다.
예를 들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우리나라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로 기억될 것이다. 나 또하 그렇게 배워왔다. 하지만 피스보트의 강연자로 만난 역사학자 주밍 덕분에 이 표현이 갖는 문제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주밍은 “신대륙 발견”이라는 표현이 유럽 중심의 편향된 시각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수천 년 전부터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아메리카 대륙을 마치 유럽인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한 듯 묘사하는 것은 원주민의 존재를 지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유럽인의 시각에서 콜럼버스는 유럽에는 없는 자원을 세계화한 ‘위대한 탐험가’ 일 수 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그는 그들의 땅과 그 위의 모든 영혼을 빼앗은 약탈자일 뿐이다. 또한, 그의 항해 이후 아메리카 대륙은 대규모 노예무역의 장이 되어 흑인 역사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더욱 흥미로웠던 점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달한 첫 이방인이 아니었으며,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도착한 곳을 인도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인도 사람(Indian; 인디언)”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는 결국 역사적 오해와 편형을 반영한다. 미국에서는 이런 맥락을 반영해 “인디언”이라는 용어 대신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내가 미국에서 유학했을 당시, ‘인디언’이라는 표현이 지양된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그 이면에 이런 역사적 맥락이 있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질문이 있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왜 콜럼버스를 ‘신대륙을 발견한 영웅’으로 배웠을까? 왜 그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원을 세계화한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로 교육받았을까? 이 역사학자의 강연을 통해, 이 이야기는 결국 콜럼버스 이야기는 여러 교육 시스템에서 유럽인의 시각에서만 다룬 ‘반쪽짜리 역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신 아시아에 먼저 도착했다면, 오늘날의 우리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각 나라에서 이 역사를 어떻게 가르쳤을까?
주밍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대신 “콜럼버스의 발견”이라는 표현을 제안하며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 온 역사적 표현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던져주었다. 이 역사적 맥락을 통해 이후 강연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캐나다 퀘벡에서 거주하는 원주민의 후손인 강연자를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겪은 문화 청소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원주민들의 고군분투 역사를 배울 수 있었다. 밥 말리 후손인 강연자를 통해서는 흑인 노예 해방 운동 이후의 흑인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흑인 사회가 지금까지 겪고 있는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배우면서, 내가 배워온 지식에 대한 성찰과 비판적 시각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