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무료할 때 지구 한 바퀴 (9)
유럽의 한 교육 연구소에서 역사 교과서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에카이드의 강연은 내게 큰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그의 강연은 내가 얼마나 ‘반쪽짜리 역사’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주었으며, 이는 역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세계대전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독일과 일본, 두 전범국의 역사적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에카이드의 새로운 시각은 내가 알고 있던 세계대전의 역사뿐 아니라, 내가 갖고 있던 역사 인식 자체를 뒤흔들었다.
에카이드는 유대인 학살이 가장 많이 일어난 폴란드의 상황에 집중했다. 일반적으로 폴란드는 ‘전쟁 피해국’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그 이면에는 폴란드가 유대인을 색출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폴란드에서 발생한 많은 사상자는 단순히 피해자의 수치로만 읽힐 수 없는 이유였다. ‘가해자’는 독일에만 존재하지 않았으며, 당시 유럽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또 독일에는 ‘가해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양심과 인간애에 따라 유대인들을 돕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다가 처형당한 인물들도 많았다.
이와 같은 복잡한 역사적 사실들은 ‘전범국’과 ‘피해국’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 속에서는 쉽게 간과된다. 에카이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와 이해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교과서도 논문처럼 피어리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을 촉진하는 중요한 메시지였다.
그동안 여러 강연자들의 다양한 역사에 관한 강연을 들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배운 역사적 사실들이 얼마나 편향적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역사라는 복잡한 맥락 속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는 종종 사라져 왔다. 이러한 시각의 단편성은 내 역사 인식의 깊이를 제한했음을 깨달았다.
에카이드 강연 즈음, 피스보트에서 원폭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행사를 주최했다. 그곳에서 원폭 피해 당사자와 그의 후손들을 만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들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중 한 분은 원폭 피해 4세인 한국인이었다. 한국에 원폭 피해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원폭피해는 일본 고유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직원용 컴퓨터로 원폭 피해자에 대한 조사를 했다. 나의 반쪽짜리 역사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 내가 받은 교육으로는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는 세계대전을 끝내고, 일본을 패배시켜 우리가 광복할 수 있었던 긍정적인 역사 사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역사적 사건이 그저 한쪽의 승리에 불과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통과 희생이 무시되었다는 점에서, 그간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역사관이 얼마나 편향적이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로 강제 동원되어 원폭 피해를 입은 조선인만 몇 만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본 다음으로 원폭 피해자가 가장 많은 나라였다. 슬픔이 지나자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너무 늦게 이들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음에. 일본의 패망만 집중하라 이들의 이야기는 가르치지 않은 우리 교육 시스템에. 우리는 왜곡된 역사를 퍼뜨리는 일본을 손가락질하지만, 과연 우리는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가?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중요성을 깨닫고, 앞으로의 여정에서 보다 폭넓고 깊은 이해를 추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역사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와 경험의 집합체임을 명심하겠다고 결심했다. 이제는 여러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며,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나의 책임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