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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Jun 10. 2021

타투 작업실 계약하기

원샷 원킬


드디어 타투 작업실을 계약했다! 타투 수강은 5월 중순에 마무리되었고, 그 후 바로 작업실을 구해야 하나 아니면 아무래도 연습을 좀 더 하고 구해야 하나 고민하며 시간을 질질 끌다가 집에서 연습을 더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나름 9-6으로 시간을 정해두고 열심히 연습하자며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집이라는 장소의 특성과 천성적인 나의 게으름이 만나 (예고된) 환장의 콜라보가 탄생했다. 침대에서 10시에 일어나면 양반인 날들이 이어졌고, 애초에 정한 9-6가 무색하게도 연습을 몇 시간이라도 하고 난 뒤에는 이쯤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것도 아주 괜찮겠다는(전혀 괜찮지 않지만) 유혹에 수없이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럼 그렇지. 당장 작업이 없더라도, 당장 작업실 렌트비가 살짝은 부담이 되더라도 더 이상 이렇게 집에서 해이해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귀여운거 최고..!


작업실을 구한다면 아는 타투이스트들이 작업하는 합정에서 구할 생각이었다. 아예 통째로 혼자 쓰는 작업실을 빌리기에는 아직 경제적인 부분이 부담되어 작업실을 쉐어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고, 이미 아는 사람들이 터를 잡고 작업 중인 합정에서 시작하면 뭔가 더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회사까지 편도 거리 30분 이상이면 출퇴근을 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사람. 회사가 가족같아 워라밸을 챙기지 못한다면 출퇴근 시간이라도 줄여 워라밸을 어거지로라도 찾으려는 그런 사람.  혹여 환승이라도 하게 되면, 간발의 차이로 환승 차편을 놓쳐버리면(특히나 퇴근길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야식을 조져버리는 셀프 파괴적인 성향을 가진 그런 사람. 그런 내가 환승까지 해야 하는, 편도 45분이나 걸리는 합정에 출퇴근을..? 합정에 작업실을 구하겠노라고 떠들고 다니면서도 영 나는 내 말에 확신이 없었다. 그러다 sns를 서로를 맞팔 중인 또 다른 타투이스트가 우리 동네로 작업실을 옮긴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반가운 마음에 메세지를 주고받다가 엉겁결에 나는 해당 타투이스트가 최근에 옮긴, 우리 동네의 그 작업실 관리자와 미팅 약속을 잡게 되었다.



예쁜 것도 최고!


처음에 타투를 배운다고 여기저기 타투이스트들에게 컨택을 하며 미팅을 잡고 미팅 장소에 나갈 때만 해도 나는 타투이스트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다. 다들 흡사 팔토시 같은 어마 무시한 타투를 장착하고 있을 것 같았고, 심지어는 목과 손가락까지 타투를 뒤덮어 내가 바로 타투이스트다 하는 포스가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만난 타투이스트들은, 물론 일반인들에 비하면 타투가 상대적으로 많긴 했지만, 주변에서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냥 타투가 남들보다 쪼금 더 많은 프리랜서 이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눈코 뜰 새 없이 잡힌 작업실 미팅에도 아무런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라 더더욱 부담이 없었다.


미팅 장소로 가는 길, 날은 흐렸지만 왠지 느낌이 좋아 귀여운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남자친구에게 보내 줄 사진 몇 장 찍어 남기고 팔랑팔랑 안내받은 주소로 걸어갔다. 작업실은 사진으로 본 그대로였고, 마침 sns로 메세지를 주고받았던, 나에게 이 작업실을 소개해 준 타투이스트도 이른 시간부터 나와 작업 중이었다. 멋져..! 나는 우선 집에서 걸어 5분이라는 엄청난 메리트에 홀랑 넘어간 상태였는데 실제로 가보니 작업실 컨디션도 좋았고, 작업실에서 지원하는 물품들도 괜찮았고(쉐어 작업실은 대부분의 타투이스트들이 본인의 타투건과 잉크만 준비해오면 되도록 거의 대부분의 작업 물품을 지원한다) 작업실을 관리하시는 분도 너무 괜찮았다. 관리하시는 분은 게다가 동네 주민이어서 우리는 작업실 얘기에서 자연스레 동네 맛집 얘기로 넘어가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마침 그녀가 안다르 레깅스를 입고 있기에 혹시 요가하세요? 묻자 심지어 나와 같은 요가원을 다니는 것을 알게 되어 요가 수업에 대한 수다까지 떨며 계약서를 작성했다.



최근에 작업한 귀여운 반짝이 태튜


대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대충 한 번 본 작업실을 동네 맛집 얘기하며 계약서를 쓰나? 싶은 의문이 든다면 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미 sns로 대화를 나눈 타투이스트가 선택한 작업실이라는 것에 대한 신뢰감도 계약서 작성에 한몫했던 것 같고, 나는 원래 결정이라는 것 자체를 홧김에 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라섹 수술도 처음 검사한 병원에서 홧김에 해버렸고, 워홀 도시 선택도 그냥 멜버른이라는 도시 이름이 듣기에 좋아서 홧김에 멜버른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 버렸고, 운전면허도 어느 날 밤 잠들기 전 문득 일상이 무료한 느낌이 들기에 다음 날 홧김에 필기시험을 본 사람..! 그동안 이런 난데없는 결정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기에 오늘의 선택 역시 후회가 될 것 같지는 않다. 후회가 된다면 뭐, 후회하면 되는 거니까! 일단 지금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작업실에서 연습할 생각에 그저 설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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