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뭐가 그렇게 아쉬웠던지 가을에게 좀체 자리를 양보하려 하지 않던 이번 여름은 한 달짜리 2시간 따릉이 이용권을 결제한 당일 고작 1번 이용에 그치게 만들었다. 핑계는 아닐까 싶어 지난날을 짧게 되뇌어 보니 자전거는커녕 200m 거리의 집 앞 마트에 가는 것조차 숙고의 숙고를 거쳤던 지난 한 달이었기에 영 핑계는 아닌 듯싶다. 기억하는 한 가장 더웠던 추석이 지나고 어느덧 가계부를 리셋하는 25일이 다가오자 월의 시작을 가계부 리셋으로 삼는 내 습성으로 짐작하건대 아무래도 따릉이 정기권을 구매한 날짜 역시 지난달 25일이었음이 분명했고 역시 그랬다.
금, 토 양일동안 연이은 폭우로 마침 기온이 놀랍도록 떨어진 참이었다. 아무래도 한 달짜리 이용권을 한 번만 쓰긴 아쉬울 터. 기한 만료 전 한 번이라도 더 쓰고자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집을 나섰다. 종종 사람들은 나를 얼리버드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주말 아침 이른 기상은 평일 기상 시간에 어쩔 수 없이 몸이 적응해버린 직장인의 숙명이거니와 알 수 없는 이유로 건물의 방음 기능을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일요일 오전 6시 30분부터 집 대청소를 시작한 아랫집 세입자에게 공을 돌리는 것이 맞겠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위치한 따릉이 대여소에서 개중 상태가 퍽 괜찮아 보이는 따릉이를 대여해 홍제천으로 향했다. 홍제천자전거길을 따라 나들이 나온 기분으로 슬슬 달리다 난지 쪽 한강자전거길로 향할 계획이었다. 서울에 1n째 거주 중임이 무색하게 늘 거주지 근처 혹은 직장 근처에서만 주로 시간을 보냈다 보니 난지 한강공원은 서울 어딘가에 존재함을 알고만 있는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속도를 빨리 내지 않는 나는 필요시 얼마든 추월해 가도록 도로의 오른편에 바짝 붙어 페달을 밟으며 미지의 장소 중 하나, 난지로 향했다. 이것은 어느새 일상 속 익숙함에 자리 잡은 관성에 도전하는 내 작은 세계의 확장.
퍽 많이도 내린 비에 한강 물이 꽤나 불어있었다. 느릿느릿 자전거를 타며 처음 와 보는 난지 한강공원을 이리저리 구경하다 강아지와 슬슬 걸어보고자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멈춘 지점 왼켠으로 한강변을 향해 작게 길이 나 있었다. 땅을 밟아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살랑이는 강아지와 함께 슬며시 길을 따라 걸으니 이윽고 늘어진 나무 한 그루와 은은하게 넘실대는 한강이 보였다. 이런 모습의 한강은 처음이지, 아마. 무심코 베트남 호이안의 히든 비치가 떠올랐다. 히든 비치의 백사장은 없지만, 들어가는 길목이 꽤나 닮았다. 그날도 자전거를 타고 갔었는데. 찾아가면 왠지 숨겨진 절경이라도 있을 것만 같은 비밀스러운 이름에 괜스레 호기심이 생겨 열심히도 페달을 밟았었다. 찾아가 보니 에게, 별다를 게 없어 조금은 실망을 안고 돌아섰지만 이런 보잘것없는 기억들이 가끔은 오래 잔상이 남는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호이안 작은 어촌마을의 기억을 좇는 사이 강아지는 어느새 헥헥대기 시작했다. 비가 왔어도 기온이 떨어졌어도 아직 털북숭이에게는 더운 날씨임이 분명했다. 다시 강아지를 자전거에 태우고 다시 느릿느릿 페달을 밟았다. 서울 보트/요트 조종 면허 시험장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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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업무가 고되어 퇴근 후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겠노라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퇴근하고 나니 만사가 귀찮아 난데없이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다 잠이 들었다. 연초면 항상 다짐하는 한국사 자격증 취득에 대한 욕구가 이렇게 세계로 확장되는가 싶었으나 결국엔 잠이 들었으니 그것까진 아닌가 보다. 자기 전 왠지 내일은 금요일이니까, 오후에 비가 온다니까 오늘 못 탄 자전거를 아침 일찍 타고만 싶었다. 아침 7시 10분 알람이 울리자마자 일어났다. 혼술을 끊으니 매일 아침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부랴부랴 스트레칭을 하고, 내 세수는 건너뛸지언정 강아지 눈곱을 떼주고 회사 컴퓨터 세팅을 미리 마친 뒤 자전거를 타고 홍제천으로 향했다.애기 때부터 자전거 탈 때마다 자주 태우고 다녀서 이제 자전거 탑승은 베테랑인 강아지가 된 줄 알았는데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비 내리기 전 꾸리꾸리한 하늘이 맘에 안 들어서인지 강아지의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요즘 제일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킨 뒤 홍제천과 이어진 불광자전거길로 빠졌다. 평소 강아지 산책할 때 이 길로 향하는 자전거를 많이 본 터라 라이딩하기 좋은 길인가 싶어 막연히 궁금해왔던 길. 그런데 지도상에는 보였던 불광자전거길 옆 작은 천이 전부 공사 중이었다. 천을 따라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유유자적 페달을 밟고 싶었는데 보이는 건 오직 회색 길 뿐이었다. 강아지는 자전거 탑승에 슬슬 적응이 된 듯 귀를 팔랑이며 바람을 즐기고 있었으나 이제는 내 심기가 불편해질랑말랑 했다. 아침부터 회색 길에서 그저 페달만 밟고자 나온 것은 아니었다. 유턴을 해 난지 쪽으로 향했다. 날은 꾸물꾸물할지언정 탁 트인 한강이 보이니 좋았다.
자전거를 타는 것과 함께 비 오기 전 강아지 산책까지 완료하고픈 내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늦어도 8시 40분까지는 집에 돌아가야 했기에 세월아 네월아 눈앞에 보이는 것은 강물이요 나를 빠르게도 느리게도 하는 것은 바람뿐이다 할 수는 없어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며 페달을 밟았고 강아지와 걷기에 완벽해 보이는 자그마한 난지 한강숲을 발견해 자전거를 세웠다. 입구에 이곳에는 꽝꽝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꽝꽝. 어쩌다가 나무에 의성어가 붙은 이름이 지어졌을까?
꽝꽝나무(학명: Ilex crenata)는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 넓은잎 나무이다. 주로 남부 지방의 해안에서 자란다. 암수딴그루이다. 잎이 두껍고 살이 많아서 불에 태우면 꽝꽝 소리가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기도 하며, 단단하다는 뜻의 전라도 방언 깡깡하다에서 유래 되었다는 설도 있다.
꽝꽝나무는 무엇일까
단단하고 옹골찬 나무구나, 꽝꽝. 나도 강아지도 꽝꽝한 생명체가 되길. 걷다 보니 꽝꽝나무와 이름 모를 나무들 사이로 작은 오솔길이 나왔다. 오른편엔 자그마한 나무 의자가 있었고 까치 한 마리가 오솔길 위를 분주하게 종종거렸다. 곧 다가올 출근만 아니었다면 의자에 앉아 멍하니 플레이리스트 속 노래가 몇 곡이고 흘러가도록 두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전거를 끌고 길 좌우로 설치된 조각상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한강 조각으로 빚다' 전시가 진행 중이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전시의 일부인지 모를 버섯 모양의 집과 개미 조형물이 보였다. 개미와 베짱이 동화 속에 들어온 걸까. 그렇다면 곧 개미가 될 운명의 나는 잠시나마 영원히 베짱이이고 싶었다.
남은 시간 약 10분, 현실로 돌아와 망원 한강공원을 향해 달렸다. 언제 봐도 그럭저럭 반가운 성산대교를 뒤로하고 강아지와 함께 걸었다. 아침부터 산책 나온 강아지와 집사들이 많이 보였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구나 싶으면서도 연차를 썼을까 아님 나처럼 곧 근무 시작일까 궁금해졌다. 시간은 다소 촉박했지만 금요일이라 왠지 모르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망원 지하보도 차도를 지나는데 이어폰에서 Finn gruva - Back to you가 흘러나왔다. 바삐 부지런을 떤 오늘 아침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 이런 기분이라면 9시간 근무쯤이야 끄떡없을 것이었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 집 근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포장하고, 집에 도착해 강아지 발을 씻기고 나도 씻고 사과와 땅콩버터, 아메리카노를 업무용 책상에 가져다 둔 뒤 젖은 머리를 말릴 선풍기까지 틀었다. 그제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소 정신없지만 만족스러운 금요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