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작은 어느 월요일이었다. 단식 시간을 카운트해 주는 어플을 켜고 한 20시간 가까이 참았나 보다. 어느덧 오후 5시, 퇴근 시간을 향했고 내 안에서는 강한 반발심이 일었다. 아니, 월.요.일인데. 무려 월요일인데 단식은 스스로를 학대하는 거 아닌가? 9시간 근무 자체로 화딱지가 나는데? 화를 참지 못하고 순대를 사 왔다. 떡볶이나 튀김 없이 순대만 사 왔다. 그래서일까, 화요일에 자 이제 시작이라며 다시 단식앱을 켜고 몇 시간이 지나자 아니 어제 무려 20시간을 쫄쫄 굶고 고작 순대나 5천 원 치 먹은 게 전부인데. 갑자기 이대로 단식이라니. 뭣 좀 배부르게 먹고 시작해야 심리적으로 납득이 가면서 단식을 해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퇴근하기가 무섭게 매운 어묵을 포장해 집에 와서 삶은 반숙란 몇 개와 면 사리 추가, 우삼겹까지 토핑으로 얹어 먹었다. 이렇게 폭주의 나날이 이어지면서 어느 날은 초복 중복에 닭 구경도 못했다며(아마도 했을 것) 돌연 치킨을 시키기도 했고 건강하게 먹자며 직접 만들어둔 치아바타를 도우로 사용해 소세지, 새우, 버섯과 치즈를 쏟아지도록 올려 피자를 굽기도 했다. 재택 근무를 하니 냉장고가, 망원 시장이, 마트가 너무 가까워서. 그리고 체력이 남아돌아서. 그래서 그랬다. 그러다 며칠이 뒤 엉겁결에 사무실에 3-4일간 출근하게 되었고, 비로소 나는 단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서양 사람인가 싶을 만큼 밥을 멀리하고 있다
전날 저녁 6시에 먹은 비빔밥을 마지막으로 단식앱을 켰다. 그날은 삼시 세끼를 바지런히도 챙겨 먹었기 때문에 비록 채식 비빔밥이었지만 반발심이 그닥 들지 않았고, 다음날은 회사 출근이었기에 지옥철에 대한 부담을 가득 안은채 비교적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벌써 단식 13시간째. 잠만 잤을 뿐인데 꽁으로 단식 시간을 번 기분이었다. 당연히 배는 고팠지만 출근에 대한 의무감으로 꾸역꾸역 준비를 하고 사무실에 갔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개인주의가 강한 편이라 혼자 밥을 먹어도 친한 동료들이 아닌 이상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휴게실에 가서 커튼을 치고 드러누웠다가 업무에 복귀했다. 무난히 오후 시간이 지나고 집에 돌아와 소금물을 타먹고(단식 중 체내 수분량 유지를 위해 나트륨 섭취가 필요하다고 한다) 강아지 산책 후 요가를 한 뒤 잠들었다. 단식 1일 차가 허무하리만치 쉽게 지나갔다. 3년 전 뇌가 음식에 대한 욕구에 절여져 생전 잘 먹지도 원하지도 않던 해파리냉채까지 찾아보며 침을 질질 흘렸던 지난 단식에 비하면 놀랍도록 음식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3년 전에는 오로지 물만 마셨고 제로 음료를 비롯 아메리카노조차 마시지 않았으며 당시 백수였기에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는데, 이번엔 단식 기간 내내 사무실 출근이 예정되어 있어 그에 대한 작고 소중한 보상으로 아메리카노와 히비스커스, 둥굴레차, 제로 음료까지는 허용했다는 것. 카페인이 어쩌고 하는 것이 몇몇 단식하는 사람들의 딜레마인 것 같으나 그것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1리터에 15칼로리 남짓한 음료들을 가지고 골머리 썩고 싶지 않았달까. 나는 평소 대충 살자를 지향하는 편이다.
화이트롤에 잠시 미쳤던 나(진행형일수도)
둘째, 셋째 날도 첫째 날과 다름없이 지나갔다. 어떤 날은 6시 반에 일어나 강아지 산책을 하고 어떤 날은 일정 때문에 조금 더 걷고 하는 미묘한 차이만 있었을 뿐, 출퇴근을 했고 점심시간에는 드러누웠고 귀가 후에는 소금물을 타 먹었고 자기 전엔 요가를 했다. 대단히 많이 있지도 않은 근육이, 대단히 많이 있지도 않아서 은근히 근손실이 걱정되었으나 차마 근력 운동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럴만한 컨디션도 받쳐주지 않았거니와 1인 가구이기 때문에 무리하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고독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오바 보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식 3일 차 까지는 음식 생각이 거의 없어 비록 자기 전 파스타 먹방 같은 것을 종종 틀긴 했으나 놀랍게도 와, 먹고 싶다 하는 욕구에는 도달하지 않았다. 다시 음식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것은 4일, 5일 차 밤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갖가지 음식들을 배민과 마켓컬리에 검색하며 장바구니에 담고 또 담다 잠들었다. 뿌팟퐁 커리 만들 때 주로 사용하는 소프트 쉘 크랩까지 라면이나 파스타에 넣어 먹겠다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애초 3일, 72시간으로 계획했던 단식은 하다 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대단히 죽을만치 힘들지는 않았기에 조금 더 연장해 6일, 143시간으로 마무리짓게 되었다. 144시간이 아닌 이유는 4라는 숫자가 2번이나 들어가는 마무리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는 것은 핑계고 꽉 채운 6일 단식을 마지막 2시간 앞두고 도저히 더는 못하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143시간이라는 숫자를 단식앱에서 확인하기가 무섭게 사골 국물에 닭가슴살, 두부, 캔 참치 약간을 먹었다. 6일간 제로 음료와 아메리카노, 차들을 제외한 그 어떤 음식물도 입 속에 담지 않았기 때문에 소금 간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단식은 6일이었지만 조미료와 함께 살아온 인생은 3n 년이다. 고작 6일로 입이 초기화되지는 않아 소금을 조금은 넣어 먹었다. 혼밥 할 때면 주로 유튜브를 보지만 이번에는 핸드폰을 만지지 않고 최대한 천천히 꼭꼭 씹어 음식 자체를 느끼며 24분간 감사히 먹었다.
심심해서 별안간 스콘을 굽기도 했던 지난 날
이번 단식은 3년 전 단식에 비해 확실히 수월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쉬운 6일은 아니었다. 수월하다 느꼈던 이유로는 우선 사무실에 출근하느라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지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크게 없었다는 것과 이에 대한 보상심리로 제로 음료와 아메리카노 정도는 허용했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사무실 출근으로 인해 하루 평균 채 5천보를 걷지 않는 평소와 달리 매일 약 8000-8500보를 걷게 되었는데, 단식 기간이 길어질수록 걸음 속도가 점점 느려져 나중에는 70대 노인의 체력이 이쯤 되려나 싶을 정도로 걸음 속도가 느려졌고 계단을 20개 정도만 올라도 숨이 가빠와 호흡을 조절하며 천천히 올라야만 했다. 출퇴근길 2호선 환승역에서 나로 인해 복장이 터졌을 수도 있는 내 뒤로 계단을 올랐던 통근자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내 나름의 최선이었음을. 또한 말수가 적어지고 목소리 또한 크게 내기가 힘들었다. 갸릉갸릉한 목소리로 해야 할 말 만을 짧게 하고, 화장실에 갈 때면 휘적휘적 몹시도 천천히 걸어가는 나를 보고 몇몇 동료들은 아픈 건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악몽 아닌 악몽을 꾸기도 했는데, 휘핑크림이 몽글하게 올라간 아이스 라떼를 시원하게 마시다가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쉽게 포기한 거냐고 좌절하거나 구운 닭고기에 해쉬브라운을 곁들여 신나게 칼질을 하다 허탈함에 일순간 온 몸에 힘이 풀리는 꿈을 이틀 연속 꾸었다.
살면서 단식을 다시 할 일이 있을까 3년 전에 생각했다. 그리고 복부 비만 판정을 받은 3년 뒤 현재의 나는 과거를 답습하게 되는데, 지난 6일 동안 복부 비만도 비만이지만 늘상 음식 생각만 하는 뇌에 조금이나마 충격을 주고 싶었다. 아무리 여자들이 한 달에 한 번 호르몬의 노예가 된다지만 나는 정도가 심하다 느꼈고 생활비에서 식비의 지분이 거의 7-80 퍼센트에 달하는 내 자신에게 점차 질리는 한편 스스로 음식, 특히 빵 생각을 놓기가 힘들어 돌파구가 한 번쯤은 필요했다. 망원에 거주하는 이상, 이미 맛도리 빵집들을 알아버린 이상 빵을 아예 외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번 단식을 계기로 조금이나마 음식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있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고백하건대 지금 이 순간 메론 크림빵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