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 하면 유명한 게 무엇일까. 이렇다 할 수식어 없이 '망원동'을 유튜브에검색해 보면 대부분의 썸네일에 음식 사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간혹 보이는 한강 사진과 함께. 약 100여 일 망원에 거주하며 느낀 것은 이사 올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서도 이곳엔 먹거리와 식당, 카페, 베이커리들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이사 온 첫날 매콤 상하이 크림 파스타 배달 주문을 시작으로 한동안 파스타에 중독되어 살던 나는 이내 망원시장으로 눈길을 돌려 고로케, 수제어묵, 돈까스, 떡갈비, 닭강정, 분식, 바베큐 치킨, 회, 닭꼬치 등 참으로 많은 먹거리들을 차근차근 섭렵했고 서울에서 이 가격이 말이 되나 싶은 식재료들 역시 왕창 구매해 더위로 불 사용이 꺼려지기 전까지 백합 파스타, 감바스, 애호박 볶음, 김치 제육볶음, 두부찌개, 간장 계란장, 가지 버섯구이 등 다양한 요리를 해 먹었다.과거 한 달간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약 세 달 동안 김밥만 먹었던 전적으로 이곳의 김밥 맛집에서 3끼를 내리 김밥만 먹은 적도 있다.
한 바가지 파스타
빵순이들은 알 것이다. 망원에몇몇 소위 빵지순례 빵집들이 있다는 걸. 나는 아직 한 시간두 시간까지 웨이팅을 해야 하는 빵집들은 엄두가 안나 캐치테이블 서비스를 제공하는 빵집과 웨이팅이 없는 빵집들만을 도전해 본 게 전부인 쪼렙이지만 그래도 이 경험들은, 특히 캐치테이블로 웨이팅을 걸고 먹어본 빵집의 크림 소금빵들은 나를 빵에 미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굳이 빵을 사러 갈 생각이 없는 날에도 빵집들의 인스타를 전전하며 그날의 라인업을 살펴보았고, 구미가 당기는 빵이 있으면 네이버 빵카페에 검색해 그 자태를 눈으로나마 감상하며 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특히나 크림빵, 푸딩, 케이크, 쿠키에 미쳤고 집에서 도보 5분 남짓한 거리의 쿠키 가게는 마침 반려 동물 입장을 허용하여 강아지 산책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종종 들어가서 황치즈 쿠키를 사 오곤 했다.황치즈 드리즐 같은 것이 뿌려진 오렌지색 꾸덕한 쿠키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황치즈에 마음을 뺏긴 그 시작... 아직도 마음은 집 나가있다
나는 매년 건강 검진을 앞두고는 대략 일주일에서 열흘 가량 건강식만 먹으며 지난 1년을 반성하는 편이다. 이번 건강 검진 때 역시 그랬으나 망원에 이사와 버린 나, 검진이 끝나자마자 그간의 짧은 반성이 무색하도록 곧장 빵집으로 달려가 몇 만 원어치 빵을 사들고 나와 반성 기간 동안 나름대로 깨끗해진 몸과 1-2 키로 남짓 줄었던 체중을 하루 만에 원상복귀 시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내 남은 마음마저 가지세요 거절은 없다
제목에 단식이라 적어두고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얘기인가 싶다면, 지금까지의 글은 이토록 성실히 차곡차곡 쌓아온 100일간의 뱃살 연대기,그리하여 검진 전10일간의 회개로도 피할 수 없었던 복부비만 진단과그럼에도 쿠키니 소금빵이니 하는 아이들 생각을 멈출 수 없어 하다못해 단식을 마음먹은 이유인 것이다.
브런치에 발행한 글 중 72시간 단식 이야기가 있다. 나는 한 3년 전에 72시간인가 80시간 단식에 성공한 적이 있다. 말이 단식이지 그야말로 음식 생각을 뇌에서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었던 미저리 같은 80시간이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성공은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하자, 단식! 하면 그래, 하자! 라며 내 몸과 간단명료한 합의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이렇게나 나를 모른다. 지난 100일간 네이버 지도에 음식점/카페/베이커리 또는 냉면/피자/튀김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며 새로운 장소를 찾아 즐겨찾기에 추가하는 일을 취미마냥해 와 놓고, 식단이랍시고 조리된 닭가슴살을 주문한 뒤 파스타나 피자에 토핑으로 얹어 먹어놓고, 갑자기 저탄고지핑계를 대며 우삼겹 1kg을 주문해 구워 먹어놓고 갑자기 단식을 한다면 한다라니.그게 될 리가 있겠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