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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의 사기꾼 Jan 01. 2020

너의 생존을 확인하는 순간

내가 고양이 사료를 사게 될 줄은 몰랐다. <고양이 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길고양이를 돌보게 된 감독이 “내가 고양이 사료를 사게 될 줄은 몰랐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헉! 방금 내가 말한 거야? 


고양이파냐, 개파냐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개파였다.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사람을 향해 펄쩍 뛰어오르는 개의 재롱을 보고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나. 반면 고양이는 무서웠다. 날카롭게 번쩍이는 눈동자와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헙! 하며 뒷걸음질을 치곤 했다.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친구의 권유(?)로 고양이의 발바닥 젤리를 처음 만져보았을 때, 그 말랑하고 귀여운 젤리 사이에서 날카롭게 휘어진 발톱이 부웅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세상에 그 통통하고 귀여운 양말 속에 그토록 무서운 것이 숨겨져 있다니! 


한때 나는, 내가 모든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물론 모든 동물을 사랑하지만 그에 앞서 나와 다른 개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언어가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른 존재와 소통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것들과 마주해야 한다. 나는 개를 키우고 나름대로 개를 잘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키우는 개나 낯선 개를 만나면 일단은 긴장한다. 우리 개는 나와 오랫동안 소통하고 교류한 이력이 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특히 길고양이들을 만나면 멀찍이 떨어져서 ‘어머 고양이네’ 하며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기술을 발휘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곤 했다. 익숙하고 친근한 동물도 처음 만나면 긴장을 하는데, 고양이는 내게 무서운 동물인 데다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는 길고양이는 더 무서웠으니 어쩔 수 없었다. 


사람도 지쳐 나자빠질 듯한 폭염이 계속되던 날이었다. 우연히 트위터에서 무더위에 힘들어하는 길고양이들을 위해 물이라도 한 컵 놔달라는 트윗을 봤다. 집에서 에어컨 바람 팡팡 쐬다가 선선한 저녁이면 똥산책을 나가는 일일이의 삶을 생각하니 길고양이들의 여름은 너무 혹독할 것 같았다. 개 산책을 하며 플라스틱 그릇에 물을 담아 공원 구석에 두고 오면서 나는 더위에 지친 길고양이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길고양이를 생각하니 정말 길고양이가 보였다! 갑자기 눈앞에 엄마 고양이와 애기냥이들이 잔뜩 나타난 것이다. 물을 한 컵 따라주니 허겁지겁 먹는 고양이를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데 자꾸만 뒤통수가 뜨거워졌다. 비쩍 말라서 쏙 들어간 배를 끌며 물을 먹던 엄마 고양이가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물만으로 될까. 돌봐야 하는 애기냥이들이 여럿이던데. 그냥 이대로 돌아서도 되는 걸까. 저 아이들은 공원에서 뭘 먹고 살아가고 있을까. 새끼가 있으면 사람에 대한 경계가 더 심해지고 극도로 예민한 상태일 텐데, 그럼에도 애옹 하고 나를 부른 것은 절박하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결국 편의점으로 달려가 급하게 고양이 사료 한 봉지를 샀다. 그리고 다시 고양이 가족들에게 돌아가 사료를 한 움큼 부어줬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나를 경계하던 애기냥이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오늘의 허기를 이렇게 채워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된 이상,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나는 다음날부터 해가 지면 고양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물과 사료를 주는 일을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작업실로 들어가 컴퓨터를 켜기도 전에 전날 놔둔 밥그릇과 물그릇을 확인하고, 남은 밥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치우고 그릇을 씻었다. 해가 지면 사료와 물통을 가방에 넣고 고양이들의 은신처로 달려나갔다. 


길고양이와 관련된 카페를 찾아 회원가입을 하고 모르는 것을 트위터에 물어보면서 고양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는 무엇이든 입덕(?)할 때는 책으로 배우려 드는 편집자였으므로 길고양이에 대한 책도 잔뜩 사서 읽었다. 고양이, 특히 길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의 습성이나 행동언어를 우선 알아야 했다. 경계한다, 화가 났다, 기분이 좋다 같은 감정 표현을 이해하고 싶었다. 또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하고 밥 주는 사람과 주민들 간의 갈등도 뉴스를 통해 자주 접했으므로 이들과의 충돌에도 대비해야 했다. 


그렇게 물과 사료를 갖다 나르다가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길고양이를 만났다. 이제 겨우 엄마 품을 벗어나 독립을 한 것 같은 치즈냥이 혼자 쓰레기 분리수거장 옆에서 애옹애옹 울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하악질을 해대면서도 부스럭거리는 사료 봉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게 너무 귀엽고 안쓰럽다. 네 이름은 이제 국수야. 국수처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해. 이모가 맛있는 거 많이 줄 테니까 쓰레기봉투 뜯지 말고. (다음 날 밥을 주러 새벽같이 나가보니 쓰레기봉투를 찢어 수박껍질을 먹고 있었다. 왜 이제 왔냐고 시위하는 건가…) 


대용량 사료를 한 포대 사고, 츄르와 고양이 참치캔을 사고, 비 오는 날 사료가 젖지 않게 우천용 박스를 마련하고, 밥그릇에 개미나 벌레가 꼬이지 않게 하는 법을 찾아내고, TNR 신청방법을 알아보고, 한국고양이보호협회에 정기후원을 시작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과 사료를 나른다. 국수가 보이지 않으면 이름을 부르며 주차장을 돈다. 국수야, 국수야 부르면 차 밑에서 애옹 소리를 내며 고개를 내미는 국수가 보인다. 그렇게 매일 생존을 확인할 때마다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믿을 수 없게도, 그렇게 나는 캣맘이 되었다.


일러스트: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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