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그 엉망진창의 기록
“00씨, 본인이 일 되게 못하는 거 알아요?”
스무 살, 어렵게 구한 첫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들은 말이었다.
경험도 경력도 없는, 이제 갓 미성년자 딱지를 뗀 스무 살에게 선뜻 일자리를 내어주는 가게는 생각보다 훨씬 더 적었다. 스무 곳 넘게 지원했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오는 곳조차 가뭄에 콩 나듯 했고, 그중에서 나를 받아준 단 한 곳인 이 곱창집에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일주일 만에 별안간 주방으로 불려가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코로나 여파로 가게에 손님은 많지 않았고 걱정과 달리 홀서빙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큰 실수 없이 가르쳐 준 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얼 그리도 잘못했던 걸까.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머릿속에 스쳤다.
“저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납득하기 힘든 마음에 우물쭈물 이렇게 여쭤봤지만
“그냥 다.”
매니저님은 딱 잘라 말했다.
처음에는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드는게 아닐까, 이런 원망에 찬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매니저님의 말이 옳았다는걸 깨닫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 정말 내 문제는 ‘그냥 다’였다. 행동 하나하나 다른 아르바이트생보다 굼떴고, 그다지 꼼꼼한 편도 아니었다. 말주변도 없는 탓에 손님 응대는 어딘가 어설펐고 전화라도 오면 완전히 얼어버렸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모든 문제들이 나아질 기미도 없이 다음 아르바이트, 다다음 아르바이트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일머리가 없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에도 그리 머리가 좋은 학생은 아니었다. 낮은 효율을 시간으로 메꿔보고자 오로지 엉덩이 힘으로 공부했고, 그래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서울 상위권 대학에 합격했다. 슬프게도 사장님들은 전부 내 학교를 보고 기대에 차서 뽑으셨다가 막상 일을 시켜보고는 실망하곤 하셨다.
“00씨는 학교 다닐 때 진짜 공부만 열심히 했나보다~”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도 들었더랬다.
나도 알아서 척척 잘하는 아르바이트생이고 싶었다.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센스 있고 빠릿빠릿한 아르바이트생 정도는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처럼 잘 안 됐다. 사회에 나와 첫 경험이라고 할 수 있었던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악덕 사장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텃세도, 진상 고객도 아닌 일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나 같은 사람을 쓰려고 하는 고용주는 어디에도 없겠지, 이래서 앞으로는 어떡하나, 직장생활은 또 어떻게 하나,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성적으로 나 자신을 증명해내야 하는 고등학생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과 꿈을 가지고 있는지, 그 모든 것들이 성적표에 찍힌 시험 점수와 등급으로 대변된다는 사실이 때로는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졌지만 차라리 그런 종류의 시험이 나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 나서 깨달았다. 그때는 적어도 공부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얼마든지 틀려도 괜찮은 수많은 연습문제와 연습시험이 존재했으니까 말이다.
살다 보니 나이 앞자리가 바뀐 것뿐인데, 순식간에 그 모든 ‘틀려도 괜찮은’ 기회들이 사라지고 실전만 남은 느낌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바로 낙인 찍혀 버리는, 심지어 철저한 주관식에 채점 기준도 모호한 그런 시험 말이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데, 다들 무슨 수로 그렇게 척척 잘 살아내는걸까? 시험공부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인생 공부는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흔한 성장 소설이나 소년 만화의 주인공처럼 나도 닥쳐오는 고난을 멋지게 딛고 일어나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면, 이 시련을 담보로 확실한 성장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인생은 만화처럼 늘 해피엔딩이란 보장이 없고, 나는 어쩌다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덜컥 주인공 역을 맡아버린 것이다. 아직은 계속 욕먹고 깨지는 전개인가보다. 한창 이리저리 구르며 상처 입고 무뎌지는 중이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련뿐인 것을. 어쩌면 꽃이 피기 위해서는 봉오리를 흔드는 세찬 바람이 필요하고, 정답을 맞추기 위해서는 수많은 오답이 필요하듯, 인생도 틀리고 아프면서 배워나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그 사실이 유난히도 가혹하게 느껴지는 스무 살의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