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부리 Mar 04. 2021

식품영양학과, 졸업하면 어때?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2)

[글을 읽으시기 전, 함께 곁들이면 좋을 bgm입니다. 어젯밤 이야기-아이유]




본 편의 이전 이야기 '탈영양사 계획 1탄'



나는 그렇게 은둔의 영어 고수들에게 패배함으로 22년 인생 처음 실패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복학’이라는 현실을 선물해 주었다.


‘그래, 학교로 돌아가서 장학금이라도 타보자.’


살면서 어디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되는 기회들이 종종 있어 왔는데, 아마 이때도 조금 깨달은 것 같다.


그렇게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1, 2학년 때는 떠날 학교라고 생각해서 정 붙일 이유도 여유도 없었지만, 복학한 이후로는 다른 것 보다도 장학금을 타기 위해 열심히 대학생활을 해나갔다. 또한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아야 하니 한 달 단위 목표를 잡고 한 줄씩 '스펙'을 쌓기도 했다.


그렇게 좋든 싫든 머리로만 열심히 공부한 덕에 4.5만점이라는 학점도 받아보고 장학금도 탔다.


그리고 4학년 2학기가 되었다. '막 학기'가 되자 친구들 사이에서도 진로가 나뉘었다. 같은 시기에 휴학을 했던 친한 친구 4명 중 한 명(일명 '박주')은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연구실을 들어갔다. 빠른 결정을 하고 연구실 생활을 하던 박주는 학기가 끝나기 전 식품 관련 국가 연구기관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3명은 단체급식 영양사로 취직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 친구들과 한 대기업에 같이 지원을 하게 되었는데, '최소'가 한 번에 최종 합격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취직이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으니 참 대단한 친구라고 생각된다. 원 샷 원 킬이라니..!


아무튼 '최소'와 '박주'는 취직을 했으니 시험을 볼 때 빼고는 학교를 거의 나오지 않았다. '롱'이와 나는 친구들이 학교를 안 나온다는 것이 참 부러웠는데, 오히려 취직한 친구들은 학교를 나오는 우리를 부러워하곤 했다.


최소 : “아~ 나도 학교 다니고 싶다, 다시.”

롱 : “최소~ 우린 네가 얼마나 부러운데. 그런소릴하다니!”

최소 : “휴. 직딩의 삶과 학생의 삶이 갭 차이가 너무 크다~”

새부리 : “그래도 돈 벌잖아~ 그게 제일 부러워.”

최소 : “그걸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너네랑 강의실에서 쉬는 시간에 수다 떨고 싶다야.”

박주 : "그래, 대학생이 최고 좋은 것 같아. 하~ 내일 출근하기 싫다!"


그때는 뒤쳐져있다는 생각에 우리보다 한 발 먼저 사회에 나간 친구들의 투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나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서울 라이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취직을 하기 위한 첫 단계. 바로 서류 통과다.

그때만 해도 이력서에 잘 나온 증명사진이 합격의 당락을 결정하는데 일조를 했던 시기이기에 '승무원 스타일'로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스튜디오에 '헤어, 메이크업'과 '촬영을 예약'해 거금을 주고 증명사진을 찍으러 갔다.


"고생하셨고, 이제 사진 셀렉하고 포토샵 할게요~"

"제가 지금 찍은 것 중에 괜찮은 사진이 있는 건가요? 너무 다 이상할 거 같은데.."

"있죠~ 걱정 마세요. 이 정도면 다 나온 겁니다. 제 뽀샵 실력을 믿으시고, 한번 골라보세요."

"윽.. 그나마.. 이게 좀.. 나은 것 같은데.. 정말 괜찮은 거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청난 속도의 마우스 클릭 소리와 키보드 단축키 소리가 들렸다.


"자, 끝났습니다. 비포-(악~!), 애프터(오~). 어때요?" (딸깍딸깍)

"자꾸 비포랑 비교해서 보여주지 마세요~!! 근데 턱 좀 더 쳐내도.. 아, 헤어라인도 정리를.. 입꼬리 좀 더 올리면 어떨까요?"

 

선생님, 제가 온 곳이 성형외과인가요? 그렇게 나는 얼굴 전체 견적 2천만 원짜리는 될 것 같은 대0항0 스타일 증명사진을 얻게 되었다.


그래도 이 증명사진은 나름 효과적인 투자였던 것이 사진을 바꾸자마자 최소, 롱이와 함께 지원해 서류 단계에서 광탈했던 그 회사에 서류가 통과되었다.(사진을 본 다는 것이 여기서 증명된 것 같다.)


새부리 : "서류 붙었어~! 대박이다!"

최소 : "오~ 축하축하! 새부리랑 롱이 둘 다 붙어서 우리 회사 와라, 제발! 같이 다니자~"

박주 : "셋이 같이 다니면 재밌겠다~"

최소 : "그래 나 너네 오면 진짜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꼭 붙어야 해!"

롱 : "그럼 진짜 좋겠다. 면접 준비 열심히 하자! 새부리~"

새부리 : "그래! 이번에 같이 붙어버리자! 취뽀!"


롱이와 나는 함께 면접 스터디를 하며 열심히 준비를 했고 드디어 1차 면접 날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안내드리겠습니다. 면접은 다대다 형식이고, 한 조에 7명씩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면접에 앞서 다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요. 이 식사에 대해 질문을 하실 거예요. 염두에 두시고 식사하시면 되겠습니다. 자, 이동하겠습니다!"


'와.. 맛있겠다.'가 아니고 먹고 체하라는 건가.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티를 못 벗은 예비 영양사들이 우르르 구내식당에 들어갔다.


'(두리번두리번) 무엇을 물어볼 줄 모르니 눈에 다 담아간다!'


그 날 메뉴는 돼지김치찌개와 돈가스가 메인이었다. 내가 앉은 식탁 위에 전등이 나가 깜빡깜빡거리고 있었다. 긴장은 했지만 내가 젤 좋아하는 돼지김치찌개라니 어쩔 수 없이 식사가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자가 많을수록 순서가 앞일 때 유리한데, 7명의 지원자 중 내 순서는 2번째였다.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자기소개는 생략하고 바로 첫 질문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읽으신 신문기사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고 거기에 댓글을 단다면 어떤 식으로 쓸 건지도 이야기해주세요."


다른 면접자들은 당황한 듯 보였지만 난 이 질문이 준비가 돼있었다. 먼저 합격한 최소가 준비하라고 귀띔해주어서 오는 길에 베스트 뉴스를 읽어 두었기 때문이다.


"저는 면접을 보러 오는 길에 기사를 하나 보았습니다.  내용은 택시에 핸드폰이나 지갑을 두고 내릴 경우 찾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안내를 해주는 기사였습니다. 제가 이 기사에 댓글을 단다면 유용한 정보의 기사를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선플을 남길 것 같습니다."


베스트 답변인지는 모르겠으나 면접관 중 몇몇은 끄덕끄덕 긍정의 수신호를 보내왔다.

그리고 대망의 그 순간이 찾아왔다.


"오늘 식사 잘하셨죠? 각자 오늘 먹었던 식사의 부족한 점이나 개선할 점에 대해 한 마디씩 해주세요. 1번부터 시작할게요."


그리고 내 차례가 되자 난 이렇게 답했다.


"저는 제가 앉은자리에 위에 전등이 깜빡거려서 교체해주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후.. 정말 저렇게 말했다. 내가 순서가 앞이라 아는 대로 모두 말하면 뒤에 지원자들이 말할 것이 없을 테니 그들을 배려해야겠다고 그 짧은 순간 결정을 한 것이다. 지금도 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네.. 다음 분?"


‘이거 뭔가 잘 못 된 것 같은데..’ 면접관의 반응을 알아채고 깨달은 순간은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다음 지원자의 답변은 이러했다.


"돼지김치찌개와 돈가스가 나왔는데, 둘 다 돼지고기가 들어가서 식재료의 중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배추김치 대신 깍두기를 제공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차 싶었다. '나 영양사 지원해서 왔었지? 근데 식재료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했네.. 왓.. 더..'

뒤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1차 면접에서 광탈해 버렸다. 하하하.


그 이후로도 롱이와 함께 여기저기 지원을 해보았지만 희한하게 운이 없던 건지, 실력이 부족했던 건지 나는 결국 취업이 되지 않아 고향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참고로 롱이는 면접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대기업에 합격하여 먼저 사회로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나는 고향에 내려가 다시 서울 상경을 꿈꾸며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영양사 아닌데, 영양사는 맞아요'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사진 출처 : pinterest photoshoot ideas with books @eveningpins·eveningpins@gmail.com]

이전 01화 탈영양사 계획 1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